대표적인 한국의 독립운동가. 해방 후에는 이승만과 경쟁하며 남한의 정치를 이끌기도 했다. 김구(1876년~1949년)는 18세에 동학을 받아들였고 다음 해에는 황해도 지역에서의 봉기를 주도했다. 이때 안중근을 알게 된다. 이후 고능선이라는 유학자에게 지도를 받고 의병 활동을 했다. 21세에는 황해도 치하포에서 상인임에도 칼을 품고 다니던 쓰치다를 명성황후 시해범으로 판단하여 그를 맨손으로 처단한다. 쓰치다 처단 후 자진 신고를 했고 사형 직전에 고종이 얼마 전 설치된 전화기로 직접 집행 정지를 명하면서 목숨을 구한다. 한동안 애국계몽운동 활동에 진력하던 김구는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 경무국장(일종의 경찰청장)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임시정부는 프랑스 조계지에 있었고 프랑스가 임시정부 활동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공사와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으며 임시정부를 호위하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