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연도나 사건, 사람 이름을 외워야 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참 고통스럽죠. 재미없는 것은 당연하고요. 저는 접근법을 바꿔 과거 그 시대 사람들을 만나보기를 권합니다. 그 시대에 나랑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떤 절망이 있고 어떤 희망이 있었을까? 한번 생각해보는 거예요. 과거의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해보는 거죠.
역사학자 E.H. 카의 유명한 말처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미리 벽을 세워버려요. 역사 속 인물은 과거의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이름을 외우고 업적을 외우는 게 끝이죠. 하지만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면 과거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이순신은 싸워서 이기는 장수가 아니에요. 이겨놓고 싸우는 장수입니다. 빈틈없이 전략 전술을 세워놓고 백 퍼센트 확신이 들어야 움직이는 완벽주의자예요. 23전 23승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조정에서 하라는 싸움은 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이순신은 조정에서 입수했다는 정보가 거짓임을 눈치채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맞고 틀리고를 떠나 이순신은 군인이에요. 조정의 입장에서 보면 이순신의 행동은 명령 불복종이 되는 겁니다. 당연히 쫓겨나게 되죠. 이순신의 자리를 대신하는 사람이 원균입니다. 원균도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이순신이 왜 그랬는지 말입니다. 일본의 정보가 거짓인 것도 알고 패배도 예감했어요. 심지어 처음에는 이순신처럼 좀 버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칠천량으로 갑니다. 군인이니까 명령을 받았으면 가야 한다고 생각했겠죠. 그리고 일본에 대패합니다. 그때까지 남아 있던 조선 수군이 완전히 궤멸해요. 원균을 옹호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역사 속 인물의 선택에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뜻이죠. 우리는 역사를 공부할 때 눈앞에 보이는 글자만 읽고 말아요. 죽어 있는 텍스트로 접합니다. 그러지 말고 역사 속에 들어가서 인물들과 만나보면 좋겠어요. 그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보세요. 꿈이 뭐예요? 왜 그런 일을 했어요? 그 선택에 후회는 없나요? 꿈이 이뤄진 것 같나요? 이렇게 물어보고 답을 상상해보는 겁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고 내 삶에 대입시켜서 답해보는 거죠. 그러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얻지 못했던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역사는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는 공부입니다. 고대부터 근현대까지의 긴 시간 안에 엄청나게 많은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어요. 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절로 가슴이 뜁니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았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고민과 선택과 행동에 깊이 감정을 이입했기 때문이죠. 그런 사람들을 계속 만나다 보면 좀 더 의미 있게 살기 위한 고민, 역사의 구경꾼으로 남지 않기 위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아무리 힘든 세상에서도 자신의 삶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법을 배우게 될 테죠. 그게 바로 역사의 힘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 저는 여러분이 역사를 그렇게 대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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