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은 나이가 되었지만 저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여전히 고민합니다. 하나의 생각이 사회 전체를 지배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맞았던 것이 지금은 틀리고, 내게 옳은 것이 누군가에게는 틀린 것이 될 수도 있죠. 그래서 가끔은 무엇을 긍정하고, 무엇을 부정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더군요. 삶의 방향을 정하고 저만의 가치관을 찾는 일에 더욱 매달리는 것은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역사가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것은 착각이고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강조합니다. 역사는 나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예요. 역사를 공부했음에도 살아가는 데 어떠한 영감도 받지 못했다면 역사를 제대로 공부했다고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모든 수업의 1강을 ‘역사는 왜 배우는가’에 할애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시험을 앞두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는 역사적 사실을 빨리, 많이 외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죠. 그런데 문제는 시험이 끝나면 열심히 암기했던 사실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 역사 공부의 허망함을 토로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러면 저는 다 잊어도 괜찮다고, 다만 역사를 배우면서 느꼈던 감정만 잊지 않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굳이 시간을 되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무수히 많은 선택과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어요. 세상에 이보다 더 쓸모 있는 학문이 있을까요? 제가 이 책에 ‘역사의 쓸모’라는 제목을 붙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역사의 실용적인 측면만 너무 강조하는 것 같아 조금은 조심스럽기도 합니다만 역사 연구를 업으로 삼지 않은 일반인에게 역사를 학문적인 관점으로 대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역사의 ‘쓸모’보다 역사의 ‘실체’를 강조하는 접근은 역사로부터 대중을 멀어지게 할 뿐입니다. 흘러간 가요의 제목처럼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는 거죠.
역사를 연구하는 일은 역사학자에게 맡기고 저는 학자들이 잠을 줄여가며 연구한 소중한 역사 속의 ‘사람’에게 집중하려 합니다. 대중 강연에서 인물 이야기를 주로 하는 것도 저에게 감동을 선사해준 그들의 삶을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이 책에서도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고 삶의 방향을 바로잡게 하는 인물을 여럿 다루었어요. 그들과 만나면서 재미와 감동이 있는 그들의 삶을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기를 권합니다. 역사 속 인물들에게 ‘왜’라고 묻고, 가슴으로 대화해보세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도 고민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을 사는 동안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 수 없기에 그때마다 막막하고 불안하지요. 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살아간 역사 속 인물들은 이미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의 선택을 들여다보면 어떤 길이 나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역사.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주는 역사. 그래서 궁극적으로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게 하는 역사.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본다는 말은 결코 거짓이나 과장이 아닙니다. 이 책을 펼친 독자 여러분도 역사의 쓸모를 발견하고 역사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 속에 이 ‘쓸데없다’는 것만 찾아 모은 분이 계세요. 바로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입니다. ‘유遺’라는 한자에는 ‘버리다, 유기하다’라는 뜻이 있어요. ‘유사遺事’라는 건 말 그대로 ‘버려진 것들을 모은 역사’입니다. 버려졌다는 말은 곧 이미 무언가를 취했다는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선택된 것은 무엇이냐? 바로 『삼국사기』입니다.
저는 『삼국유사』에도 그리스 신화, 로마 신화처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정말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우리가 시험을 위한 공부로 『삼국유사』를 접했기 때문에 몰랐을 뿐이죠.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를 비교하며 차이점을 표로 그리면서 외우느라 정작 그 이야기에는 소홀했던 겁니다. 기전체의 관찬 사서, 기사본말체의 사찬 사서 등 형식적인 내용을 공부하느라 이야기 자체의 재미를 놓친 것이죠. 『삼국유사』가 그리스나 로마의 신화라면, 혹은 안데르센의 동화라면 어땠을까요. 교과서나 시험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만화책으로 혹은 애니메이션으로 접했다면 그 이야기와 등장인물을 좀 더 매력적이고 낭만적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일연 스님이 안데르센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야말로 우리나라 최고의 이야기꾼이거든요. 그런데 일연 스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지나치게 고정적입니다. 어쩌면 『삼국유사』의 콘텐츠가 충분히 활용되지 않은 탓이기도 합니다. 사극영화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고,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의 이야기나 전통 의복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듯이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도 다양한 형태로 접할 수 있다면 더 친근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 부분은 우리의 숙제기도 합니다.
역사의 실용성을 말할 때 『삼국유사』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쓸데없다고 버려진 이야기들이 사실은 참 ‘쓸 데 있음’을 증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삼국유사』는 지금까지도 명맥을 유지하며 지역 문화 개발은 물론 국가 외교에도 활용되고 있어요. 계속해서 발굴되고, 쓰이고 있습니다. 김부식은 쓸데없는 요상한 이야기라고 빼버린 단군신화를 일연스님이 『삼국유사』에 실은 덕분에 일제강점기에 단군을 모시는 대종교가 창시되어 신자들이 독립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원나라 간섭기에 민족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랐던 일연 스님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이야기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한 것은 물론, 괴로운 시대를 버틸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준 것이죠. 김부식은 쓸모없다고 버렸지만, 사실은 가치가 없던 것이 아니라 가치를 못 알아봤던 것입니다.
우리는 참 재미없게 역사를 배웠습니다. ‘어떻게 역사를 공부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인가’에 집중했죠. 그래서 연도별로 일어난 사건을 외우고, 그 사건을 일으킨 사람을 외우고…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해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 기억에 남는 것도 없고, 역사를 다시 공부하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저는 역사를 알리는 사람으로서 일연 스님과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일연 스님은 휴지 조각처럼 버려진 이야기들을 주워 잘 펴서 우리에게 남겨준 분이잖아요. 저도 사람들이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역사,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 역사를 재미있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생명력을 불어넣고, 이 시대에 맞는 의미를 찾아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지요.
이 시대에 왜 역사를 배워야 할까? 그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와 답을 합니다. 역사는 아득한 시간 동안 쌓인 무수한 사건과 인물의 기록입니다.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지요.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의 삶과 그 과정에서 형성된 문화의 흥망성쇠가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새로운 대상을 접하든, 어떤 일을 벌이든 역사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없는 것은 거의 없어요. 음식도, 옷도, 우리 삶을 구성하는 주변의 모든 것이 역사 속에서 함께 발전해온 것이니까요. 역사를 골치 아픈 암기 과목이 아니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역사의 품으로 첫발을 디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제 보물이 가득 쌓여 있는 그 지도를 신나게 펼쳐보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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