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대가 먹은 음식이 내일의 그대가 된다’는 말처럼, 오늘 그대가 돌본 마음이 내일의 그대가 될 것입니다. 그 시작은 낫고 싶다는 마음, 더 나아지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세월이 약이다.
Dies tempusque lenit iras. 디에스 템푸스퀘 레니트 이라스.
이 문장을 말 그대로 옮기면 "날과 시간이 분노를 가라앉힌다"는 뜻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아픔도, 기쁨도, 영광도?감각은 의지를 스쳐지나갑니다. 기억도 그렇게 스쳐지나갑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간신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삶의 질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가 가른다.
Qualitas vitae non nomina 콸리타스 비태 논 노미나 sed adiectiva dividit. 세드 아디엑티바 디비디트.
저는 인생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를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삶’은 명사 자체로 있을 때는 그냥 삶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어떠한 형용사가 붙느냐에 따라 그 삶은 ‘행복한 삶’일 수도 있고 ‘불행한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당시의 상황과 불안에 휩싸인 내 기준의 최선이 아니라 인생 단위에서의 최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합니다. 그대가 사랑해야 할 것을 선택하십시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과 공부에 이르기 위해서는 혼자 견디는 태도인 고독, ‘솔리투도Solitudo’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Sic habeas somnium, 시크 하베아스 솜니움, ut vivas in sempiternum. 우트 비바스 인 셈피테르눔. Sic enim vivas, ut cras moriaris! 시크 에님 비바스, 우트 크라스 모리아리스!
이루어진 것에는 못다 한 일이 남아 있을 수 없다.
Quod factum est, 쿼드 팍툼 에스트, infectum manere impossibile est. 인펙툼 마네레 임포씨빌레 에스트.
뻔한 것을 매일 하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이루었다면, 못다 한 아쉬운 일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매일 해온 뻔한 일, 그 안에 무엇이든 이루는 힘이 있습니다.
의지란 무언가를 이성에 따라 열망하는 것이다.
Voluntas est quae quid cum 볼룬타스 에스트 퀘 퀴드 쿰 ratione desiderat. 라티오네 데시데라트.
때로는 명문이 아니라 선인들의 탄식이 위로를 건넬 때가 있습니다. 우리보다 앞선 시간을 살아갔던 그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을 달래줍니다. 그러나 이렇게 위로받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시공간을 거슬러 모든 사람과 사물로부터 위로받되, 냉철한 머리와 굳건한 다리로 스스로 일어서야만 합니다. 금 가고 깨진 부분은 남의 위로로 메워지지 않습니다. 더 나은 삶으로 움직여 가겠다는 스스로의 열망과 의지만이 결국 나 자신을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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