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 학문•철학/신라의 왕

신라의 신분제는 복잡하다. 한반도의 고대 국가 형성기, 삼국의 쟁패기 그리고 통일신라로 이어지는 기간이 무려 천 년에 달하고 이 기간 동안 한반도의 역사가 매우 역동적이었기 때문이다.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등 건국 설화가 세 개나 있고, 박 · 석 · 김씨의 세 성씨가 돌아가면서 권력을 행사할 정도로 후진적인 사회였으니 그만큼 왕권이 약하고 권력 관계가 복잡했다. 왕위 명칭도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박혁거세는 ‘거서간‘이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귀인‘이라는 의미다. 통상 부족장이나 군장 정도로 해석한다. 박혁거세의 뒤를 남해차차웅이 이었는데 차차웅은 ‘무당‘이라는 뜻이다.
여전히 제정일치적인 신권 통치의 힘이 강했음을 알 수 있다. 그다음이 유리이사금인데 이사금은 ‘이빨이 많다‘라는 뜻이다. 남해차차웅의 아들이 유리이사금이었고 사위가 석탈해였는데 ‘덕이 많은 사람은 이빨이 많다‘라고 하면서 떡을 물어 왕위 계승을 정했다는 데서 나온 명칭이다. 결국 유리이사금이 왕이 되고 그가 죽은후 석탈해가 이사금이 됐으니 아직까지는 왕권이 약하고 연맹 왕국 단계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