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부터 고려 시대까지는 상업이 활발했다. 위만조선이 중국과 한반도 사이에서 중계 무역을 시도한 것. 삼국은 물론 발해까지 중국과 북방 민족, 일본 등과 활발히 교류했다는 기록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가 되면 대외 무역은 더 활발해진다. 통일신라는 울산항, 고려는 벽란도에서 이슬람 상인들과 교역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시기까지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산업의 중심은 농업이었고 대부분 사치 품목 위주로 상업이 이루어졌다.
조선 시대가 되면 이러한 역동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조선이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채택했고 유학 사상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천시했기 때문이다. 상업은노력하지 않고 이득을 취하는 나쁜 노동으로 인식됐기 때문에 오랜 기간 중농주의 정책으로 일관했다. 다만 왕실과 양반 사대부의 생활에 부응하기 위해 종로에시절 상인이 활동하고 제한적 범위에서 중국, 일본과 무역을 벌이는 정도였다.
하지만 조선 후기가 되면 여러 변화가 나타난다. 생산력의 증가에 따라 무허가상인인 난전상인이 등장했고 선박을 동원해 운송업으로 큰 이윤을 내는 선상 포구에서 도매를 하고 은행의 역할까지 담당하는 객주, 여각 등이 나타났다. 또 특정물품을 매점매석하는 독점 상인 도고가 등장했다. 지방에서는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물건을 파는 보부상이 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