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은 전국에 고루 퍼져 있는 민족의 노래이고 민족의 문학이며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동질성을 확보해주는 언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의 정확한 유래와 말뜻은 아직껏 밝혀지지 않고 있다.
흔히 우리나라에는 3대 아리랑이 있다고 한다. 강원도의 정선아리랑, 호남의 진도아리랑, 영남의 밀양아리랑이다. 밀양아리랑은 씩씩하고, 진도아리랑은 구성지고, 정선아리랑은 유장하다. 그것은 각 지방에서 자생한 민요조와 결합하면서 생긴 현상으로 진도아리랑은 육자배기조, 밀양아리랑은 정자소리조, 정선아리랑은 메나리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리랑의 뜻과 어원에 대하여는 알영(박혁거세의 부인)설에서 의미 없는 사설이라는 설까지 십여 가지 설이 있는데 정선아리랑은 ‘(누가 내 처지를) 알아주리오’라는 뜻에서 ‘아라리’가 되었다는 전설을 갖고 있고 실제로 이곳 사람들은 ‘정선아라리’라고 부르고 있다.

황재형 작 「앰뷸런스」 | 탄광촌 사람이 아니면 지금 이 작품에서 산천초목이 떨리는 마음을 다는 읽어내지 못한다.

나는 그때 황재형이 그림을 그릴 때 왜 그렇게 강한 터치를 하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밝은 조명의 전시장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세련된 안목과 멋쟁이 관객들의 감각에 호소할 의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진실을, 있는 사실을 그렇게 담고 있었다. 나는 지물포 아저씨 앞에서 부끄러웠다. 나의 미학적 척도로 작품을 재어보려고 했던 황재형에게도 부끄러웠다. 그것은 미안함이 아니었다. 분명 부끄러움이었다.

정암사 일주문 | 사북과 고한을 지나 마음의 갈무리터로서 만나는 절집이라 정암사는 더욱 맑게만 느껴진다.

정암사의 아름다움은 공간 배치의 절묘함에 있다. 이 태백산 깊은 산골엔 사실 절집이 들어설 큰 공간이 없다. 모든 산사들이 암자가 아닌 한 계곡 속의 분지에 아늑하고 옴폭하게 때로는 호기 있게 앉아 있다. 정암사는 가파른 산자락에 자리 잡았으면서도 절묘한 공간 배치로 아늑하고, 그윽하고, 호쾌한 분위기를 두루 갖추었다. 무시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 건축가들로서는 엄두도 못 낼 공간 운영이다.

수마노탑은 전형적인 전탑 양식인데 그 재료가 전돌이 아니고 마노석으로 된 것이 특색이다. 마노석은 예부터 고급 석재다. 고구려의 담징이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사람들이 이 위대한 장공(匠工)에게 큰 맷돌을 하나 깎아달라고 준비한 돌이 마노석이었다고 한다(그래서 일본 나라의 동대사(東大寺,도다이지)서쪽 대문을 맷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탑에 물 수(水)자가 하나 더 붙어 수마노가 된 것은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귀국할 때 서해 용왕을 만났는데 그때 용왕이 무수한 마노석을 배에 실어 울진포까지 운반한 뒤 다시 신통력으로 태백산(갈래산)에 갈무리해두었다가 장차 불탑을 세울 때 쓰는 보배가 되게 하였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즉 물길을 따라온 마노석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아리랑은 지역과 세대를 불문하고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있다는 점과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고 재창조할 수 있다는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15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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