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 인물/전태일
흔히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역사는 전태일 열사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노동 운동 발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며,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전태일 열사가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현재 수준보다 대우받지 못하거나 대우받는 시기가 늦어졌을 것이다.
- 출처 네이버

전태일(1948년~1970년)은 대한민국 최초로 1970년에 분신자살로 노동 문제를 세상에 알린 노동 운동가다.
1960년대는 산업화에 따른 새로운 사회 문제가 발생하던 때였다. 이촌향도 혐상이 본격화됐고, 많은 이가 청계천 일대의 무허가 판자촌에서 생활했다. 젊은 여성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에 올라왔다가 속임을 당하여 염창동에 끌려가 성매매여성이 되기도 했다. 많은 여성이 공장에 취직했는데 하루 15시간 이상의 고강도노동과 열악하기 그지없는 근무환경으로 큰 고통을 당했다. 1층 건물을 반 층씩두 개로 나눠 작업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허리를 굽혀 일해야 했고, 30분인 점심시간 동안에도 일하는 자리에 앉아 밥을 먹어야 했다. 잔업수당이 있었기 때문에 잠안 오는 약을 복용하며 야근에 매달려야 했고 주말에도 일했다. 작업반장에 의한성추행이나 폭행도 일상이었다. 농촌에서는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았고 농업으로 먹고사는 것이 어렵던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이 서울로 몰려들어 힘겨운 생활을 연명했던 것이다. 도시 문제, 빈민 문제, 노동 문제, 여성 문제가 복합적으로 들끓었지만 사회적 인식이 따라오지 못했고 정치권은 관념적인 민주주의 투쟁에만 매몰돼 있었다.

막노동으로 생계를 잇던 전태일은 노동청, 서울시, 청와대 등 공공기관에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렸으나 정부도 노동자들의 편은 아니었다. 결국 전태일은 1970년11월 14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평화시장 앞에서 분신자살했다.
전태일의 죽음은 당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정치권에서 비로소 노동 문제를 인식했다. 비로소 노동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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