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노동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이상하리만치 꾸밈없는 명랑함이었다. 세상에, 참 이상도 하지. 나는 여기 들어온 후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소리를 속으로 뇌까렸는지 모른다. 한창 예쁜 옷과 재미난 일을 탐하고 이성에 이끌리고 행복한 가정을 꿈꿀 나이였다. 좀 특별한 능력이나 야망이 있다고 해도 이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 안에서 노력을 하든지 팔짝팔짝 뛰는 걸 정상으로 보는 게 내 상식의 한계였다.
내가 극도로 감정적일 때 될 수 있는 대로 이성적인 방법으로 신을 제시해보려는 게 역시 수녀님다웠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분을 믿기 위해서 한번 크게 건너뛰는 일은 내 소관이지 누가 도와줘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견딜 수 없는 느낌이 도질 것 같았다. 그럼 지금은 견딜 만한가? 적어도 내 몸이 곧 죽어져 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믿지는 않게 되었다. 따라 죽을 수 있으리라는 것도 교만이요, 환상이라는 걸 받아들일 채비를 하고 있었다. 결국은 살 궁리인가? 역겹고 비참하지만 자신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그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걸 어쩌랴.
어려서 무서운 꿈을 꾸다가 흐느끼며 깨어난 적이 있었다. 꿈이었다는 걸 알고 안심하고 다시 잠들려면 옆에서 어머니가 부드러운 소리로 말씀하셨다. "얘야 돌아눕거라, 그래야 다시 못된 꿈을 안 꾼단다." 돌아누움, 뒤집어 생각하기, 사고의 전환, 바로 그거였어. 앞으로 노력하고 힘써야 할 지표가 생긴 기분이었다. 나는 내 속에 생긴 희미한 희망 같은 것을 보듬어안고 그들이 헤어지기 전에 먼저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막상 혼자가 되고 나니 그게 아니었다. 바로 거기서 거기 같던 사고의 차이가 나로서는 절벽 끝에서 다른 절벽 끝을 향해 심연을 건너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세상엔 남의 불행이 위안이 되는 고통이 얼마든지 있다. 세상사람들이 예서제서 자기들의 근심이나 걱정을 위로받으려고 내 불행을 예로 들어가며 쑥덕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남의 고통에 쓸 약으로서의 내 고통, 생각만 해도 끔찍한 치욕이었다. 주여, 어찌하여 나를 이다지도 미천하게 만드시나이까. 나는 마음으로 무릎을 꺾으며 이렇게 탄식했다.
그 애를 잃고도 죽지 못하고 살아가야 할 앞날이 얼마나 치욕스러우리라는 게 눈에 보이는 듯했다. 나는 거러지만도 못하게 헐벗은 마음으로 오래도록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 애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 후 이렇게까지 수치스럽고 피폐한 심정이 되어보긴 처음인 것 같았다. 이곳을 떠나기로 속으로 정해놓고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수녀가 될 수 없는 바에야 세속으로 돌아갈 준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내 최소한의 염치였다.
하느님이 인간을 당신 모상대로 지어내셨다는 말씀이 믿기지 않았다. 그런 인간이 어떻게 그다지도 잔인하고 천박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정말 왜 이 모양일까? 어쩌자고 고통에 있어서조차 교만하고 싶어하는가? 내가 왜 주님을 느낄 수가 없는지 알 것 같았다. 주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 나는 주의 눈 밖에 날 밉상만 고루 갖추고 있으니까.
얼마 만이었을까, 한 생각이 떠올랐다. 텅 빈 머리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어서인지 그건 내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라기보다는 계시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미사시간에도 기도시간에도 산책하면서도 긴긴 밤 잠 못 이루면서도 신에 대한 내 물음은 딱 한 가지였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그렇게 크게 잘못했기에 이런 무서운 벌을 받아야 하느냐는, 질문이라기보다는 포악이요 항의였다. 그러니까 내가 신의 부당함을 항의하고 내가 억울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나는 그닥 죄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죄가 있다면 어디 말해보시지 하는 신에 대한 일종의 시험이었다. 십자가 밑에서 밤새도록 몸부림치며 구해도 얻어낼 수 없었던 응답이 하필 변기 앞에 무릎 꿇고 앉았을 때 들려올 게 뭐였을까? 그때 계시처럼 떠오른 나의 죄는 이러했다.
나는 남에게 뭘 준 적이 없었다. 물질도 사랑도. 내가 아낌없이 물질과 사랑을 나눈 범위는 가족과 친척 중의 극히 일부와 소수의 친구에 국한돼 있었다. 그 밖에 이웃이라 부를 수 있는 타인에게 나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위선으로 사랑한 척한 적조차 없었다. 물론 남을 해친 적도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모르고 잘못한 적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의식하고 남에게 악을 행한 적이 없다는 자신감이 내가 신에게도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대들 수 있는 유일한 도덕적 근거였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은,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야말로 크나큰 죄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벌로 나누어도 나누어도 다함이 없는 태산 같은 고통을 받았음을, 나는 명료하게 깨달았다. 하필 변기 앞에 무릎 꿇은 자세로, 나는 그 정답에 머리 숙여 승복했다. 나중에 나의 간지(奸智)가 또다시 빠져나갈 구멍을 찾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은 그건 꼼짝달싹도 할 수 없는 정답이었다. 그리고 구원이었다. 고통도 나눌 가치가 있는 거라면 나누리라.
참척을 겪은 에미는 그래 마땅했다. 살고 싶지 않은 게 거짓이 아닌 바에야 육체가 정신의 소망을 따라주는 건 당연했다. 나는 이렇게 내 식욕 없음에 체면과 자존심을 걸고 있었다. 아니 희망까지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먹기 싫으니 차츰 쇠약해지면서 죽어가겠지 하는. 그리하여 나의 식욕 없음은, 미구에 아들 뒤를 고통 없이 따라갈 수 있으리란 희망이었다.
양을 자제했기 때문에 더욱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내려오면서 나는 내 육신과 정신의 분열이 한없이 창피하고 슬퍼서 몸둘 바를 몰랐다. 할 수 있는 말은 다만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날 이후 내 배는 영락없이 끼니때만 되면 고파왔다. 그 이상 얘기한다는 것은 너무도 부끄럽고 괴로운 일이다. 참척을 겪은 기막힌 애통과 절망은 당연히 에미의 목숨을 단축시킬 줄 알았다. 살고 싶지 않은 게 조금도 거짓이 아닌 이상 육신은 의당 거기 따라주려니 했다. 그러나 내 육신은 내 마음과는 별개의 남처럼 끼니때마다 먹고 살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 나는 내 육신에 대해 하염없는 슬픔과 배신감을 느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 아들이 없는 세상에 나가서 시도해야 할 홀로서기가 한결 덜 두렵게 여겨졌다. 그래, 나에겐 딸들이 넷이나 되지 않나. 그 애들이 내 홀로서기를 힘껏 도와주리라. 나는 그 동안 딸들 생각을 너무 안했다. 어쩌면 피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외아들을 잃었다는 무서운 사실을 차마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때, 만일 딸들 중의 하나를 잃었다면 이렇게까지 비참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치밀려고 했었다.
나는 무서워서 피하던 생각과 이제 두려움 없이 직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잃은 게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다고 해도 애통이 조금이라도 덜하진 않았겠지만 남들이 나를 덜 불쌍하게 여기리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래, 그건 인정하자. 그러나 내가 나를 아들딸에 의해 더 불쌍해하거나 덜 불쌍해하지는 말자. 어디선지 모르게 그런 자신이랄까, 용기 같은 게 생겼다. 수녀님들 덕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수녀 생활을 세상일이 잘 안 풀린 여자들의 마지막 도피처쯤으로 여겨왔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여기서 수녀님들과 생활을 같이하면서 수도 생활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이 세상 밑바닥에 깔린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 못 가진 이들, 버림받아 외로운 이들과 함께 있으려는 크나큰 용기라는 걸 확연히 알 수가 있었다. 이곳 수녀님들은 내가 보기엔 더할 나위 없는 청빈과 근면과 봉사의 생활을 하면서도 여기 생활이 안일한 게 아닌가 늘 반성하는 것 같았다.
수녀원을 나와 딸네 집에서 며칠 더 유하고 나서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사이에 나는 다시 홀로서기에 자신이 없어졌다. 하루 세끼 밥을 찾아먹고 그 밥을 소화시킬 수 있을 만큼 몸이 회복됐다고 해서 살아갈 능력이나 의욕까지 회복된 건 아니었다. 우리 동네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내 아들이 없어진 동네에서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풍경과 길과 상가와 동네 사람들을 대하며 살아갈 일이 무서워서 가슴이 떨렸다. 내가 도처에서 한시도 잊지 못할 내 아들 없는 빈자리를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느끼지 않고 태연하게 히히덕대며 살아갈 게 아닌가. 그걸 참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순 어거지 같은 생각이었다.
사람 만나는 게 극도로 싫었다. 아는 사람뿐 아니라 길에 지나다니는 모르는 사람까지 꼴도 보기 싫으니까 자연 외출도 두려워하게 되었다. 딸이나 사위가 자기네 친구가 찾아오는 것까지 내 눈치를 보며 쉬쉬하기에 이르러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남의 처지나 고통을 헤아리는 마음이 마비돼 있었다.
그때 나는 몇 날 며칠을 밤이나 낮이나 주님을 찾아 대들고 몸부림쳤었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 한 말씀만 하시라’고 애걸복걸도 해보았다. 그러나 주님은 끝내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어쩌면 나직하고 그윽하게 뭐라고 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늦게 난 철처럼 슬며시 왔다. 그래, 분명히 뭐라고 그러셨을 거야. 다만 내 귀가 독선과 아집으로 꽉 막혀 못 알아들었을 뿐인 것을. 하도 답답해서 몸소 밥이 되어 찾아오셨던 거야. 우선 먹고 살아라 하는 응답으로. 그렇지 않고서 그 지경에서 밥 냄새와 밥맛이 그렇게 감미로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여기는 우리 아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고장이다’라는 생각이 처음에는 홀가분하고 편하더니만 점점 그것도 별게 아닌 게 되었다. 내 아들의 추억과 전혀 연관지을 수 없는 이국의 풍경과 사람들은,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히히덕대며 일상을 영위하는 내 나라 사람들이 꼴 보기 싫은 것과는 다른 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외로움이라고 해도 좋았다. 별안간 악이라도 써서 구원을 청해야 할 것처럼 그 외로움은 절박했고, 집에서보다 밖에 나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을 때 한결 더했다.
신경을 곤두세워도 한두 마디 알아들을까 말까 한 것도 괴로웠지만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이질적인 리듬이었다. 그 이질감은 여기는 네가 놀 물이 아니라는 소외감을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있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만약 어떤 피치 못할 운명이 나를 이 땅에 죽을 때까지 묶어두는 일이 생긴다면, 생전 호강을 보장해준다고 해도 아들을 잃은 고통 다음 가는 고통이 되리라고.
역설적인 얘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나의 홀로서기는 내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가까이서 멀리서 나를 염려해준 여러 고마운 분들을 비롯해서 착한 딸과 사위들, 사랑스러운 손자들 덕분이다. 나만이 알고 느끼는 크나큰 도움이 또 있다. 먼저 간 남편과 아들과 서로 깊이 사랑하고 믿었던 그 좋은 추억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설사 홀로 섰다고 해도 그건 허세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는 요즈음 들어 어렴풋하고도 분명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이런 도움이야말로 신의 자비하신 숨결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주여, 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여 너무 집착하게는 마옵소서."
납득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고통 앞에 서본 이라면, 그래서 다시는 눈을 뜨지 않게 되기를 꿈꾸며 잠들었던 밤과 실눈 뜬 사이로 낯익은 천장 벽지 무늬가 보였을 때 그 새벽 햇살의 참담함을 기억하는 이라면, 아마도 쉽게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수도 없이 신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었던가를. 얼마나 자주 죽음을 꿈꾸었었던가를.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 희망이 자라나며, 죽음에의 유혹 속에서도 어떻게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는지를.
자식을 잃은 어미로서의 슬픔과 이를 감내하는 과정의 내밀한 모습들이 가식 없이 그대로 담겨 있는 고백이며, 그 고백은 독자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과 신을 향해 있다. 그 고백은 떠나간 아들에 대한 어미로서의 비통함과 절절한 그리움으로 시작하여, 아들의 빈자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그리고 다시 그토록 어처구니없이 생명을 주관하는 신을 향한 저주로 이어진다.
생때같은 아들이 사라졌는데 왜 세상은 무너지지 않느냐고, 왜 하늘은 여전히 푸른 것이냐고, 이러고도 신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냐고, 그녀의 뒤틀린 심사는 자신을 부정하게 하고 세상을 부정하게 하며 급기야 신을 부정하게 만든다. 신은 오로지 자신의 살의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이 글은 이런 살의와 분노와 회의로 가득 찬 무엄한 포악에 가깝다.
박완서 개인의 내면적 기록인, 더구나 저주와 분노와 포악으로 일관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글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리고 이 글을 박완서 문학의 중요한 일부로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이처럼 이 글이 단지 아들 잃은 어미로서의 비통함을 토로하고 기록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하여 삶과 죽음, 신의 문제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이 글은 자식 잃은 어미의 슬픔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 슬픔이 이끌어가는 생명과 존재에 대한 인식의 깊이에 있어서 우리의 주목을 요한다.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존재의 허망함에 대하여, 그 하찮은 존재 안에 불어넣어진 진한 사랑에 대하여,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는 삶의 길과 신의 부르심에 대하여, 절망의 심연 속에서도 꿈틀대는 본능적 생명의 움직임에 대하여, 신의 존재방식에 대하여, 그녀의 질문은 계속되고, 결국 이 과정에서 그녀는 죽음으로의 이끌림에서 다시 삶 속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들을 잃은 후 세상을 피해 숨어들고 다시금 세상 속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이 그대로 하 나의 놀라운 서사적 구성을 지니고 있는 셈인데, 그 끝에서 생명에의 경외를 다시금 확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글은 박완서 문학의 가식 없는 원천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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