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 명문장/강수

강수(强首)는 (・・・) 얻는 바는 높고 깊어서 우뚝 솟은 당대의 인재가 됐다. 드디어 관직에 나아가 여러 벼슬을 거쳐 당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 됐다.
강수가 일찍이 부곡(谷)의 대장장이 집 딸과 혼인 전에 정을 통했는데, 좋아하는 마음이 자못 돈독했다. 나이 20세가 되자 부모가 읍내의 처녀들 중에서 용모와 행실이 아름다운 자를 중매하여 장차 그의 아내로 삼으려고 했다.
강수는 두 번 장가들 수 없다며 사양했다. 아버지가 성내며 말하기를 "너는이 시대에 이름이 나서 너를 모르는 나라 사람들이 없다. 그런데 미천한 사람을 배우자로 삼는다면 또 수치스럽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강수가 두 번 절하고 말하기를 "가난하고 미천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도를 배우고도 그것을 실행하지 않는 것이 정말 부끄러운 것입니다. 일찍이 옛사람의 말을 들었는데 ‘조강지처는 마루에서 뜰에 내려오지 않게 하며, 가난하고 미천할 때에 사귄 친구는 잊을 수 없다‘라고 했으니 미천한 아내라고 해서 차마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 문무왕(文武王)이 말하기를 "강수는 문장을 잘 지어 능히 중국과 고구려, 백제 두 나라에 편지로 뜻을 다 전했으므로 우호를 맺음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나의 선왕이 당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한 것은 비록 군사적 공로라고 하지만 또 문장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인즉 강수의 공을 어찌 소홀히 여길 수 있겠는가?"

<삼국사기> <강수열전>에 나오는 글이다. 통일신라기 때 살았던 강수는 탁월한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나 6두품이라는 신분적 한계가 있었다. 진골귀족이 될 수없기 때문에 국가 고위직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으나 평민보다는 훨씬 지체 높은신분이었다. 당시에는 신분이 낮은 여성과 결혼하면 지탄받았고 자식의 신분은낮아졌다. 그럼에도 사랑을 선택한 강수는 우리 역사에서 보기 드문 로맨티스트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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