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은 김종직, 조광조 같은 사림파에 의해 발전하다 이황, 이이에 의해 만개한다. 성리학사에서 이황의 지위는 특별하다. 심성론(性論) 분야에서 중국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특별한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성론은 인간의 마음과 본성에 관한 문제다. 인간은 선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악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황은 선한 마음은 하늘이 준 순수한 본성에 있고, 악한 마음은 개인의 감정에 근거한다고 봤다. 이황은 우주 만물의 본질인 ‘이(理)‘ 즉, ‘도덕성의 가치‘를 절대화했는데, 사람안에도 절대적인 도덕적 본성이 있고 이를 잘 유지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황은 독실하고 경건한 삶의 태도를 강조했다. 이에 반해 이이는 ‘기(氣)‘ 즉,
‘현실 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사람의 마음과 본성은 나눌 수 없고 결국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개인적 훌륭함도 중요하지만 사회 개혁을 통해 모두가 훌륭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런 논쟁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대표적인 논쟁은 조선 후기 ‘인물성동이론‘으로 사람과 사물의 본성은 같은가, 다른가를 둔 논쟁이다. 같다는 입장을 견지한 세력이 낙론, 다르다는 입장을 주장한 세력은 호론이다. 이황과 이이의 논쟁이 사회개혁 논쟁으로 흘러간 것처럼 호론과 낙론의 논쟁은 이후 청나라 문물을 수용할 것인가, 서양 문물을 수용할 것인가로 발전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문화도 동등한 견지에서 바라볼 수 있는가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북학파, 개화파는 주로 개방적인 형태를 띠었기 때문에 낙론을 계승했다고 보고, 위정척사파 호론을 계승했다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