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 명문장/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명나라 장수 가운데서도 장세작이란 자는 특히 앞장서 철군을 주장했다. 우리가 물러나지 않자 그는 화가 난 표정으로 순변사 이빈에게 발길질까지 해댔다. (・・・) 나(류성룡)는 다시 한 번 청했다. "병사들이 한번 물러나면 왜적의 기세는 더욱 등등해질 것이고, 주위의 백성들 또한 놀라 흩어지게 되면 임진강 북쪽도 지키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부디 좀 더 주둔하면서 형세를 판단한 후에 움직이도록 하십시오." 이에 (명나라) 제독도 그러고 했으나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물러 나오자 제독은 곧 개성으로 돌아갔고, 뒤이어 여러 부대도 개성으로물러갔다. 이제 임진강을 지키는 부대는 부총병 사대수와 유격 관승선의 병사수백 명밖에 없었다. 그대로 동파에 머물고 있던 나는 날마다 사람을 보내 다시 진격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면 제독은 이렇게 말하며 시간만 끌었다. "날씨가 좋아져서 길이 마르면 당연히 진격할 것이오." (・・・) 하루는 명나라 장수들이 군량이 바닥났다는 것을 핑계 삼아 제독에게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그러자 제독은 화를 내며 호조판서 이성중, 경기 좌감사 이정형을 불러들였다. (군량 부족을 문제 삼아) 뜰아래 우리를 꿇어앉히고는큰소리로 문책하는 것이었다. 나는 우선 사죄하면서 제독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나라의 모습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 류성룡, 《징비록》 중
류성룡(1542년~1607년)은 임진왜란 당시 좌의정과 병조판서를 겸했고, 후에는 도체찰사가 되어 군사 업무를 담당했으며, 이후에는 영의정, 훈련도감 제조 등을 맡아서 국난을 극복하고자 큰 노력을 기울였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원조는 육전에서 전세를 만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평양성 수복 후 벽제관에서패배를 당하자 명나라 군대는 진격을 거부하고 어설픈 화의를 도모하는 등 임진왜란이 장기화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스스로 나라를 지키지 못했던 조선의 답답한 처지가 반영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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