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섬’이라는 뜻을 지닌 지명이지만 바닷가에 거무스름한 바위들이 있는 한적한 곳이라서 ‘검은 섬’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 섬은 아니다.
네루다가 원래 수집벽이 있어 갖가지 물건을 소장하고 있었던 데다 돈이 생길 때마다 시인다운 상상력을 가미해 집을 계속 증축하면서 이슬라 네그라 집은 일약 명소가 되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변해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마을 자체도 조그만 휴양지로 변했다. 네루다가 197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민중 시인으로 이름이 높고 그의 무덤이 집 앞,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있다는 점도 이슬라 네그라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스카르메타의 삶은 그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우선 소설과 시나리오 창작을 병행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몸이 근질근질해 한 가지 일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데다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 부조리를 진지하고 침울하게 성찰하고 고발하는 데 주력한 당시 칠레 문학과는 달리, 첫 단편집 『열정』을 썼을 때부터 생의 활력을 바탕으로 사회와 인생을 조망하는 문학을 지향했다. 문학은 엄숙하고 진지하기만 하기보다는 ‘가벼움’과 ‘무거움’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것이니, 삶의 활력과 즐거움도 문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가벼운’ 네루다 이미지는 분명 파격이었다. 네루다의 인생 역정이나 작품은 그에게 ‘무거운’ 이미지를 고착시켰다. 스페인 내전 이래의 반파시스트 운동, 공산당 입당 및 상원 의원으로서의 정치 활동, 정치적 탄압으로 인한 망명 경험 등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고,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사회를 조망한 초유의 대서사시 『모두의 노래(Canto General)』(1950)를 쓴 네루다에게 투사의 이미지가 고착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스카르메타가 내세운 친근한 이미지의 네루다가 사실을 왜곡한 것은 아니다.
좀 더 찬찬히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들여다보면, 마리오가 시를 통해 세계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정도로 네루다에게 영향받았음을 알게 된다. 작중의 네루다가 메타포의 뜻을 가르쳐 주기 위해 비를 하늘이 우는 것이라 비유해서 설명하고, 바다를 관찰하면 메타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하자, 마리오는 뜻밖의 질문을 던진다.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따분한 일상 혹은 평범한 삶을 시적으로 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준 네루다야말로 진정한 시인임을 시사한 대목이다. 이처럼 세계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을 때 마리오는 ‘말’을 할 줄 아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마리오가 시인으로 변신하는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네루다가 파리에서 병이 들어 이슬라 네그라가 그립다는 편지를 보내자, 마리오는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따스한 위로를 담아 송가 한 편을 지어 보낸다. 네루다가 민중 시인으로 변신하면서 삶의 지표로 삼았던, 인간들끼리의 진정한 연대가 이 시 한 편을 통해 성취된 것이다.
이슬라 네그라의 소리가 그립다는 네루다의 부탁에 따라 마리오가 한 녹음은 가히 이 소설의 백미다. 그 녹음에는 종소리,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 벌집의 윙윙거림 등 네루다에게 시상을 떠올려 주던 자연의 소리가 주로 담겨 있다. 그리고 원하는 소리를 얻지 못해 성질을 부리는 마리오의 소리도 담겨 있다. 상스러운 욕지거리지만 그것은 분명 아름다운 소리다. 네루다와의 우정을 지키려고 아등바등하는 인간미 넘치는 소음이기 때문이다. 이 녹음은 네루다가 파리에 간 뒤 태어난 마리오 아들의 울음소리로 막을 내린다. 네루다의 시가 사랑의 씨앗을 뿌리더니, 새 생명이라는 열매까지 맺었다는 설정이야말로 한 시인에게 표할 수 있는 최고의 경의일 것이다. 시가 문학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삶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여운이 남는 이런 감동 때문에 스카르메타 스스로도 오랫동안 남을 작품이라고 꼽는 것일 테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잔잔하면서 진한 감동 외에도 재치 넘치는 묘사와 대화, 해학적인 성 묘사, 순수함이 빚어낸 각종 일화 등으로 해서 소설을 읽는 재미 또한 그만이다.
다만 ‘열광적으로 시작해서 침울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작품의 성격이 번역에서도 느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음을 밝혀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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