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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ㅣ 총총 시리즈
황선우.김혼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평점 :
판매중지
여둘톡의 황선우 작가와 ‘아무튼, 술’의 김혼비 두 작가가 1년에 걸쳐 주고 받은 편지로 만든 에세이다.
아니, 이 분들 종합예술인들 아니신가? 글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축구, 수영, 탁구 등 운동이면 운동, 입담까지…팔방미인으로도 대체가능하시겠다.
결론은 웃다, 먹먹하다보니 단숨에 읽어 버렸다.
최선을 다 하고 싶지만 현재의 난 저승사자도 두 손 들고 갈 저 세상 텐션이라는 거;; 죽진 않겠군 ㅎㅎ
[“가마~~~ 있으므 마, 한개도 안 듭다.”
제가 나고 자란 경상도 남부 지역 사투리로 ‘가만히 있으면 하나도 안 덥다’는 뜻이에요. ‘가만히’의 뒷발음을 닫아 마무리하지 않고 길게 끄는 표현, 그리고 ‘한개도’의 앞에 가파르게 찍히는 악센트가 강조를 표현합니다. ‘마’는 분위기를 거드는 부사인데요, 단독으로는 ‘그냥’, 뒤의 부정어인 ‘한개도’와 결합해서는 ‘전혀’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 본문 26p 수평 자세로 가마 누워 보는 세상, 김혼비
난 경상도와는 관련이 거의 없는지라 그 지역 언어는 단어와 억양의 조합만으로도 당췌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겠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신기방기다.
저렇게 친절히 설명해주니 마치 귀에 들리는 것도 같다. 아하하
[번-번-번-번- 타들어가다가 올여름에 ‘아웃’이 되어 나가떨어지고서야 받아들였어요. 번아웃이 맞구나. 사흘이면 끝낼 일을 열흘 걸릴 때부터 이미 그랬구나. 이게 뭐라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을까요.]
- 본문 55p 번-번-번- 타들어가는 날들, 황선우
사실 요즘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지 않을만큼 들려오긴 하지만 번-번-번에서 번아웃의 파장이 느껴지시는가?
더러 멘탈이 강한 사람들은 무슨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으나 이미 겪어본 사람들은 충분히 동감하리라 생각된다.
사는 게 야구경기도 아니고 아웃과 인이 따로 있나.. 사는 건 한 번 뿐인 반면에 야구는 새 경기를 뛸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쩜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55p
번아웃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번아웃이 일 효율을 깡그리 앗아가는 통에 한 번 붙든 일이 끝나질 않아 마음놓고 놀거나 쉴 시간까지 사라지는 게 가장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휴식과 저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다리마저 불태워 없애버리는 게 번아웃이더군요.
60p
짐작이라 말하는 건 그때 나에게 벌어지는 일이 뭔지 당시에는 스스로 잘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험들은 한창 그 가운데 있을 때는 진행중이라는 게 보이지 않다가 지나가고 나서야 그 시간이 뭐였는지, 그때 내가 어땠는지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64p
좀 이상한 말이지만 오래 지속하기 위해선 언제든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65p
부디 적극적으로 더 많은 일을 거절하는 데 성공하기를, 잘 먹고 잘 자는 생활을 쟁취해내기를, 그래서 마침내 더 많은 쉼을 사수하기를 바랍니다. 언제든 멈출 수 있어야 더 오래 좋은 글들을 쓸 수 있을 테니까요.
82p
부디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것들을 곁에 두고 단단히 붙드시길 바랍니다.
99p
우리는 아주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아주 많은 슬픔과 분노를 겪어낸 뒤겠지요. 많은 기억을 잊어버리고 또 어떤 기억은 선명한 채로, 그럼에도 자주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09p
상가를 나설 때마다 늘 마주하게 되는 진실도 마음에 다시 새겨봅니다. 나도, 내 주변 사람들도, 죽음을 품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 것. 가슴 한켠에 저마다 깊은 슬픔을 묻고 사는 존재라는 것도.
124p
세상에는 덩크처럼 ‘애초부터’ 불가능한 게 훨씬 더 많다는 차가운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144p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좋고, 어진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저는 정말이지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물론 『논어』에서 공자님은 ‘지’나 ‘인’이 ‘용’에 우선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고, 저 역시 일견 동감하는 바이지만, 그래도 공자님이 21세기 한국에서 임산부로 환생한다면 생각이 바뀌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연사, 오늘의 편지를 마무리하며 소리 높여 외쳐봅니다. 우리에게는 군자비추, 공자에게는 임신강추.
153p
정신이 신체를 지배하는가, 신체가 정신을 지배하는가에 대한 오랜 논란이 있죠. 제가 볼 때는 아무래도 더 아픈 쪽이 덜 아픈 쪽을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153p
아픈 뒤로 뭔가가 달라진 것 같아요. 한의사 선생님의 말대로라면 몸에 생긴 ‘꺾임’이 매사에 어떤 과속방지턱 같은 걸 만들어놓은 것 같습니다. 일할 때 속도가 잘 나지 않고, 집안일을 조금 하고 나면 금세 눕고 싶고, 운동할 때 일정 심박수 이상으로는 격렬해지지 않아요.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하기도 합니다. 좀처럼 아프지 않으면서 타인에게도 굳세기만 할 것을 요구하는 강인함과는 다르게, 이런 꺾임을 여러 번 반복해본 사람이 갖게 되는 내면의 단단함도 있지 않을까요? 내가 아프지 않을 때도 언제든 아플 수 있음을 알고, 어딘가 아픈 사람이 존재함을 알면 좋겠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잘 알아채고 도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같이 위와 장이 튼튼한 사람에게는 꽤나 어려운 일이지만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임신을 해보지 않아도 임신이 힘든 일이라는 걸 아는 것이, 사람다움일 테니까요.
162p
이렇게 어떤 마음과 마음을 장난스레 이어붙여 세상이 가끔씩 툭툭 던지는 유쾌한 농담들이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이왕이면 선하고 어진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꿈을 계속 꾸게 만들어요. 그래서 누가 오해받기 쉬운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왜 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술은 언제나 저를 조금 허술하게 만드는데, 허술한 사람에게 세상이 좀더 농담을 잘 던져서 그렇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