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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평점 :
이 책이 눈에 띈 계기가 있다.
해마다 두번씩 있는 명절은 내게 ‘명절증후군’이라는 상상도 못했던 명찰을 달아주고야 말았다.
그 날은 언제나 오고야 말았고, 이번에도 그 날은 오고야 말테지.
몸과 마음은 이미 반응하기 시작해 컨디션은 난조였고 울컥하는 마음에 펑펑 울고 싶었다.
그래서 그날 밤 급 전자책으로 주문을 했었던…
며칠 밤을 눈물, 콧물 범벅으로 읽고 말았다.
파친코 작가 이후로 미국 출판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가 이 미셸 자우너라고 한다.
미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한인2세다. 읽기도 전부터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는 5년 사이에 이모와 엄마를 암으로 잃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H마트는 얼마나 마음이 아릴지 감히 말해본다.
그녀의 엄마는 문화적인 차이로 육아방식이나 교육방식이 미국엄마들과는 달랐으리라 여겨진다. 그런 엄마와 미셀 자우너에게도 잠시 충돌의 시기가 있었다. 바로 사춘기! 엄마와 전쟁 아닌 전쟁도 하지만 그 과정도 잘 넘기고 그녀에겐 언제나 엄마가 세상의 전부였다.
그러던 중 미셸의 엄마가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되고 엄마를 위해 온갖 몸부림을 쳤건만 결국 엄마는 세상을 뜨고 만다.
안타깝게도 엄마가 떠난 후 아빠는 엄마 대신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스스로 엄마와 엄마의 나라, 엄마 나라의 음식을 통해 위안을 찾아간다.
엄마와의 애틋함으로 인해 상실감은 몇 배나 더 크게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담담하게 자전적 에세이를 써 내려간 그녀는 뼛속부터 멋진 한국인 중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이따금씩, 출입문도 없는 방안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 정도로 깊은 슬픔에 잠길 때가 있다. 엄마가 돌아가셨단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단단한 벽에라도 부딪힌 듯한 심정이 된다. 출구도 없고 단단하기만 한 벽면에 쿵쿵 머리를 찧으면서, 앞으로 다시는 엄마를 보지 못하리라는 절대 불변의 현실만 자꾸자꾸 떠올리는 것이다. p17
나는 우리집에서 시내로 가는 길에 있는 묘지를 골랐다. 언덕을 절반쯤 내려가다보면 나오는, 철문이 있는 긴 담장으로 둘러싸인 묘지였다. 아빠는 매장을 하는 것에 두려움이 좀 있다고 고백했다. 해충 구제업자로 몇 년을 일했으니 벌레들이 앙갚음할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엄마의 재를 땅에 묻는 일은 나에게 중요했다. 꽃을 가져와 놓아둘 공간이 필요했다. 쓰러질 수 있는 땅이, 주저앉을 바닥이, 아무 철이고 와서 눈물을 흘릴 풀밭과 토양이 필요했다. 마치 은행이나 도서관에 찾아간 것처럼 진열장 앞에 똑바로 서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니라. p229
내 기억을 곪아터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내 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없게 만들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 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엄마가 가르쳐준 교훈을, 내 안에, 내 일거수일투족에 엄마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언젠가 후대에 잘 전할 수 있도록. 나는 엄마의 유산이었다. 내가 엄마와 함께 있지 못한다면 내가 엄마가 되면 될 터였다. p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