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이 끝나고 다시 조용한 나날이 이어졌다. 결혼식이 엄마의 병을 기적적으로 낫게 하거나 아니면 엄마가 풍선처럼 허공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는데, 막상 결혼식이 끝나고 나니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똑같은 병, 똑같은 증상, 똑같은 약, 똑같이 고요한 집. 모든 게 그대로였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 곁에 가만히 누워 엄마 손을 잡고 텔레비전만 봤다. 이제 집안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날이 갈수록 기력이 떨어져 우리가 별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엄마는 잠을 더 자주 잤고 말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호스피스가 병원용 침대를 가져와 안방에 놓았지만 우리는 엄마를 그 침대로 옮기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너무 우울해질 것 같아서였다.
아빠는 부엌에서 컴퓨터를 했고, 엄마와 나는 침대에 누워 〈인사이드 디 액터스 스튜디오〉*를 시청했다. 〈법과 질서〉**에 출연하는 마리스카 하지테이가 게스트로 나왔다. 진행자 제임스 립튼은 이 배우에게 어머니의 때 이른 죽음에 대해 물었다. 우리는 아름답고 냉정한 성인 여자가 곧장 눈물 터뜨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얼추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엄마라는 말 한마디의 파급력은 그 정도였던 것이다. 나는 몇 년 뒤에 똑같은 감정과 맞닥뜨릴 내 모습을 상상했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벌에 쏘이는 그 순간부터, 나란 존재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남은 평생을 벌침이 박힌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내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엄마도 울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서로의 티셔츠에 얼굴을 파묻고 한바탕 서럽게 흐느꼈다. 우리는 둘 다 〈법과 질서〉를 본 적이 없고 이 배우가 누군지조차 몰랐지만 마치 나의 미래를, 평생 내 안에 가지고 다닐 고통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통증이 곧 지나갈 거라고 안심시키는 말을 하고 또 하면서 엄마를 붙들고 있는 몇 분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엄마가 깊은 잠에 빠졌다. 엄마를 사이에 두고 아빠와 같이 셋이 나란히 누워 있자니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의사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다. 의사는 엄마가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게 하겠다고, 그게 자기가 하는 일이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는데…… 엄마 눈을 똑바로 보며 그렇게 철석같이 약속을 했건만, 그 약속은 이토록 허무하게 깨져버렸다. 엄마의 마지막 말은고통이었다.
엄마가 죽은듯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다가 아빠와 나는 갑자기 무언가에 이끌리듯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생전 열어보지도 않던 서랍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을 검정 쓰레기봉투에 마구 쓸어 담았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할 일을 미리 해버리려는 것처럼. 엄마가 진짜로 죽고 나면 그 일이 더 크고 무거워질 걸 아는 것처럼.
아빠는 서럽게 울다가 엄마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보통 때였다면 그 말에 충격을 받았겠지만 나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나는 아빠를 원망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엄마의 임종을 못 지킬까봐 우리는 며칠째 집밖을 나가지 않고 있었다. 나는 아빠가 밤에 잠은 어떻게 자는지 궁금했다. "엄마가 아니라 내가 암에 걸렸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 다 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는 아빠의 등에 손을 얹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 생각 안 해요." 사실 내 추악한 마음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빠여야 했다. 엄마가 아빠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가는 건 생각조차 못했다. 엄마와 나는 진지하게 그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시면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재혼을 할지. 아니면 우리끼리 같이 살지.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아빠와 이야기 나눠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럴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으니까.
나는 마지막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무엇이건 고통이 아닌 다른 말을. 호스피스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죽어가는 사람이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경우도 있다고, 마지막 순간에 잠깐 정신이 확 돌아와 내 눈을 보고 마지막 이별의 말 같은 걸 할 수도 있다고. 혹시라도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내가 계속 옆에 있어야 했다. "엄마, 거기 있어?" 내가 속삭였다. "내 말 들려?"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려 엄마의 파자마 위로 뚝뚝 떨어졌다. "엄마, 제발 눈 좀 떠봐." 나는 엄마를 깨울 작정이라도 한 듯이 소리쳤다. "나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제발, 엄마. 나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엄마! 엄마!" 나는 엄마의 언어로, 모국어로 절규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뱉은 단어를. 자동차에 깔린 아이를 구하려고 차를 번쩍 들어올릴 만큼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하는 엄마처럼, 어쩌면 우리 엄마도 아기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번쩍 눈뜰지도 몰랐다. 아주 잠깐이라도 눈을 번쩍 뜨고 내게 작별인사를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다 잘될 거라는 말을 전할지도 몰랐다. 무엇보다도 엄마의 마지막 말이고통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것만 아니라면 무슨 말이든 다 좋았다. 엄마! 엄마!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가 반복해서 외치던 그 말. 목구멍 깊은 데서 터져나오는 원초적인 한국식 흐느낌. 한국 영화와 연속극에서 듣던 바로 그 소리. 엄마가 자기 엄마와 동생을 위해 울면서 냈던 그 소리. 고통에 찬 비브라토로 시작해 점점 스타카토로 이어지다 나중에는 작은 돌기에 통통 부딪히며 떨어지듯이 끝나는 그 소리. 하지만 엄마는 눈을 뜨지 않았다.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무거운 숨만 몰아쉬었고, 들숨소리는 갈수록 뜨문뜨문해졌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가만히 반듯하게 누운 엄마는 지난 며칠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아빠도 방문을 등지고 엄마를 향해 모로 누워 있었다. 나는 침대 발치를 돌아서 반대쪽에 누웠다. 시계는 새벽 다섯시를 가리켰다. 바깥에서는 숲에서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하루가 우리를 위협하듯 시작되고 있었다.
얼굴을 향해 달려든 햇살에 나는 눈을 찡그렸다. 꼭 약을 한 기분이었다. 방금 일어난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혹시 내 얼굴에 다 쓰여 있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을 땐 어쩐지 그 역시 잘못된 것 같았다.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다시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미소를 짓고 웃고 먹는다면 그것도 잘못된 일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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