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연히‘ 왔다. 하지만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뭔가를 간절히 원해서 발견한 것이라면 그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의 필사적인 소원이 필연적으로 그곳으로 이끈 것이다.

"아뇨. 그저 듣는 걸 좋아합니다. 하지만 오직 당신의 연주처럼 거침없는 음악, 듣고 있자면 한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잡아흔든다고 느끼게 해주는 음악만요. 그런 음악을 즐겨 듣는 이유는, 그것이 도덕과 무관해서일 겁니다. 온갖 것들이 다 도덕적이라서, 그렇지 않은 걸 찾고 있거든요. 도덕성이라는 것에 항상 억눌렸달까요. 정확히 표현할 수가 없는데, 그러니까 혹시 당신도 신인 동시에 악마인 하나의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전 그러한 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우리의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내게 완전히 새롭거나 놀라운 내용은 드물었다. 그런데도 모든 대화가, 심지어 아주 평범한 이야기들까지도 내 안의 같은 지점을 부드럽게, 그러나 끈질기게 망치질해댔다. 모든 대화가 나의 형성을 도왔다. 허물을 벗고 껍질을 깨뜨리게 도와서, 매번 나는 머리를 조금씩 더 높고더 자유롭게 치켜들었고, 마침내 내 황금빛 새가 아름다운 머리를 산산이 부수어진 세계의 껍질 밖으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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