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은 평소와 다르게 대단히 흥분했다. 하지만 곧 진정하고 미소를 짓더니 강한 말투를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그의 말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던 나의 소년 시절의 비밀을 정확히 맞췄다. 데미안이 말한 신과 악마, 공인된 신의 세계와 금지된 악마의 세계는 내 생각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두 개의 세계, 밝은 세계와 어둠의 세계에 관한 것 말이다. 내 자신의 문제가 곧 모든 인간의 문제고, 모든 삶과 생각의 근원이 되는 문제라는 인식이 갑자기 나를 뒤덮었다. 나의 개인적인 삶과 생각이 위대한 사유의 강에 포함되어 있음을 느끼자 나는 두려우면서도 경건한 심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 깨달음이 나의 존재를 증명해주고 가벼운 행복감을 주었지만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 통찰에는 가혹하고도 떫은맛이 있었다. 내 유년 시절이 끝났고,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담겼기 때문이다.

이 모습이 진짜 데미안이구나! 나와 같이 걷고 대화하던 데미안은 절반에 불과했어. 가끔나와 호흡을 맞춰서 호응해주는 역할을 맡아 연기를 한 반쪽짜리였던 거야. 진짜 데미안은 이렇게, 태곳적의 생명체처럼, 차가운 대리석처럼, 아름답지만 냉혹한 죽었으나 기막히게 멋진 생명력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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