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물건들을 살 때는 우유부단해서 답답하기 이를 데 없어도, 유독 책만큼은 덥석덥석 챙긴 뒤 카드를 긁지요.

책에 관한 한, 저는 허영투성이입니다. 이미 구입한 책들을 미처 다 읽지 못했는데도 계속 사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어나가는 속도보다 사들이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할까요

밤에 홀로 뭔가에 몰두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낮 동안의 자신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음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이 책에도 묘사되어 있듯, 신데렐라가 부엌데기 하녀에서 신비로운 차림의 공주로 변신하려면 밤이 되어야만 했지요. 피터 팬은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는 야행성 인간이었구요. 그리고 피노키오에게 생명을 선물하는 파란 요정은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서 내려옵니다.
말하자면 밤은 치열한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부드러운 동화가 시작되는 시간일 거예요. 괘종시계가 열두 번을 치고 나면 저마다의 가슴속에 숨어 있던 소년과 소녀가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밤에 쓴 편지를 낮에 부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낮의 어른은 밤의 아이를 부끄러워하니까요. 하지만 밤의 아이 역시 낮의 어른을 동경하지는 않을 겁니다.

여전히 저는 책 읽는 속도가 특별히 빠르지는 않습니다. 빨리 습득하기는커녕, 심지어 메모를 하고 줄까지 쳐가면서 공들여 읽은 책인데도 몇 달 지나면 대강의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책읽기가 허무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삶에서 변화란 원래 그렇게 아주 작은 것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찾아오는 게 아닐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