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판단한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지, 잘 살아가고 있는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지, 지금의 선택이 내게 최선인지. 그러나 대개는 그 판단이 맞는지 바로 알 수 없다.
지금의 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옳은 선택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결코 알 수 없다. 그러니 그저 당장 원하거나, 혹은 옳다고 생각하는 바에 매진하면 된다. 잘되든 못되든 그것은 자책하고 후회할일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수많은 생각들이 희망과 긍정의 가능성을 논리로 압도해서 고민이라면 원래 비관이 ‘매력적인 오답‘임을 기억하면 좋겠다. 앞서 설명했듯이 본디 비관적인 생각이 이성적으로는 설득력이 있다. 우리의 마음은 본능적으로 새로운 행복을 지향하기 보다는 ‘적어도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경향이 강하며 이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이 더욱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나의 삶이 더 행복해지는지를 떠올려 보았으면 한다. 오늘의 당신을 웃게 하는 것이 무엇일지 십 년 전의 당신이 상상할 수 없었듯, 먼 훗날의 당신은 지금의 당신이 그리지 못하는 모습으로 행벅할 것이기 때문이다.
삶을 신중하고 깊이 있게 성찰하는 일은 분명 필요하다. 다만 그러한 생각에만 매달리면 오히려 삶과 현실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인생의 답을 내리기 위해 과도하게 생각에 몰두하는 것고민이라면, 답이 내려지지 않는 그 불편함을 일상의 일부로 안은 채 ‘그냥‘ 살아보기를 권한다.
PTSD의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지극히 현재에 존재한다. 기억회로에 과거로 통합되지 못한 상처들이 오늘, 지금, 여기에서 지나간 아픔을 재생시킨다. 끝없는 고통의 당사자가 택할 수 있는 길은 회피뿐이다. 외상의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은 두려움을 유발하고 과거의 기억을 지금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일이라면 무엇이든 피하고 싶어 한다.
아름다운 추억만 앨범에 남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통스럽고 힘든 기억일수록 ‘지나간 경험‘이라는 앨범 속에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픔을 돌아보고 이를 글로 남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때로는 내가 왜 이렇게 다시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화가 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이 용기를 내보면 좋겠다. 이미 수많은 사람의 아픔을 치유한, 쓰기가 주는 위로가 당신에게도 닿았으면 좋겠다. 쓰는 과정에서 되살아나는 아픔, 공포, 초조함, 눈물이 지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되는 오래된 것임을 자각하고, 나는 그때와는 다른 현재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껴보기를 바란다. 지난 시간을 바꿀 순 없지만, 늘 마음속에서 도드라져 있던 ‘그때‘의 기억이 다른 기억들처럼 바래질 때의 평온함을 당신이 느낄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지우고 싶은 기억만 깨끗이 끄집어내 없애는 방법, 그 일이 없었던 이전의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없다. 과거의 상처를 지우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그 상처에 연연하는 마음을 먼저 내려놓고 그걸 깨끗이 없앨 방법은 없음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잊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지우고 싶은 기억을 한 번 더 떠올리는 것이 우리 마음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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