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인 행동은 안 된다. 욱하는 태도는 좋은 것도 아니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서둘러 결정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 낫다.
신중함과 신뢰는 함께 간다. 신중함이 없으면 우리는 재능을 낭비하고 자존감에 타격을 입는다. 신뢰가 없으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쉽게 포기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주변 상황을 활용해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신중함과 신뢰를 언제나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이 좋다.
삶은 당신에게 이미 주고자 하는 걸 모두 주었다. 마치 바다처럼.
이는 조용한 폭력이다. 타협과 무관심이 주도하는 폭력.
이런 상황을 고쳐야 한다. 부당함이 처벌받지 않고, 되레 자신은 좋은 일을 했다고 믿는 악한 사람이 처벌받지 않으면 이보다 최악은 없다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는 마녀사냥이 아니라 무법지대를 밝히는 일이다. 바다 위 해적뿐 아니라 일상 속 해적에게도.
우리도 상어처럼 살아보자. 상어처럼 살려면 단기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도덕과 양심에 따라 살며 이익의 법칙만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수동적으로 살아간다. 다시는 안 하겠다고 하면서 어느 순간 똑같은 일을 또 반복한다. 하지만 새롭게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관성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는 늘 같은 행동을 하면서 앞으로 가지 못한다. 앞으로 나아가고, 바꾸고, 숨 쉬자. 우리의 습관적이고 폐쇄적인 행동들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 일상을 살지 말자. 진짜 위험한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삶과 정신을 산산조각 내는 진짜 상어의 턱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고유한 존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홀로 떠 있는 섬처럼 우리는 누구와도 똑같을 수 없다. 내가 아닌 ‘거짓 자아’ 뒤에 숨겨진 나만의 섬을 되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 진정한 자아를 찾고 싶어야 한다. 단순히 남과 달라 보이고 튀고 싶어서 억지로 개성 있는 척을 하는 건 의미없다. 억지로 보여주는 개성은 또 다른 순응주의에 불과하다. 자신이 지닌 개성에 자발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나답게 살지 않는 일상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쓴다. 나답게 사는 데 방해가 되는 집착, 사랑 혹은 슬픔에 파묻혀 있고, 주변에서 원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추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우리는 순응하고 참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 받아들이고 조용히 입을 다물고 체념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쳇바퀴 같은 일상이 이어지면서 무엇인가에 갇힌 기분이다. 자유를 어딘가에 저당 잡힌 것 같은 기분.
우리는 답답한 삶을 살 때가 너무 많다. 무엇인가를 희망하기보다 하지 말자고 억제하는 삶을 살고, 넓게 보려고 하지 않는다.
시간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그러니 낭비해서는 안 된다. 남들에게 끌려다니고,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때문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자. 우리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자. 강렬한 설렘을 주는 것에, 진실된 것에 주목하자.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려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말자. 저 사람이 어떻게 말하고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타인에게 나를 증명하고 설명할 필요도 없다.
나르시시즘은 피곤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재미없는 행위다. 나르시시즘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뱉는 말과 같다. 그리고 나르시시즘에 빠지면 자기 자신에게만 갇혀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배우거나 다른 사람에게 놀라움을 안겨줄 수도 없다. 자아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영을 하면 자아라는 무게를 바다에 내려놓을 수 있다. 주변에 맞추고 도움이 되고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라는 자아의 명령에서 거리를 둘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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