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말보다 눈빛이 더 잔인할 때가 있습니다. 기대를 충족시키기 못했다는 이유로 받게 된 어떤 눈빛들은 말보다 절망적입니다. 특히 부모나 상사처럼, 관계 속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사인을 보내면 결국 ‘내가 부족한 탓‘으로 귀결되고 말지요. 이런 마음으로는 하는 일에 몰입하고 도전하기 어렵습니다. 또다시 실수하지 않을 정도로만 움직이게 되지요. - P176

참 좋은 것도 일방적이면 ‘강압적인 힘‘이 됩니다. 선의가 다르게 전달됩니다. 그러니 내게 힘이 있을수록 ‘나는 좋아도 너는 싫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일을 하라고 사람을 떠미는 데 힘을 사용하는 대신, 마음을 끌어오는 데 사용하세요. 그것을 위해서 나의 감정과 상황이 중요한만큼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도 중요하다는 것, 내가 선택한 방법이 정답이 아닐 수 있고,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세요. 이것들을 잊지 않을 때 힘은 올자른 방향으로 작동됩니다. - P184

우리가 존중의 대화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존중의 마음을 돌보고 싶다면, ‘보는 것‘이 바뀌어야 합니다. 보고 싶은 것 대신 봐야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하죠. - P187

존중의 대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나와 상대방이 모두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동시에 내가 옳다고 믿는 것도 타인의 관점에서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죠.
나의 감정과 상황이 중요한 만큼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내가 선택한 방식이 정답이 아닐 수 있고,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다. - P191

조망 능력이 발달한 사람은 존중의 대화를 하기에 앞서 이 세 가지 요인에 대한답을 먼저 찾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이때 ‘우리‘라는 단어에 주목했으면 좋겠습니다. 존중의 대화는 한쪽을 소외시키지 않습니다. 내가 느끼고, 믿고, 원하는 것과 상대방이 느끼고, 믿고, 원하는 것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 P198

본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시소와 같습니다. 한쪽이 ‘할 수 있다‘를 강조하면, 한쪽은 ‘할 수 없다‘에 힘을 쓰고 싶어집니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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