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자연의 삶을 동경했던 폴 고갱
태어나자마자 파리가 아닌 페루로 가 ‘페루의 소년’이 된 고갱.
6년 동안 그곳에서 살며 뜨거운 태양과 야생 그대로의 자연에 익숙해진다. 그러던 중 친할아버지의 사망으로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프랑스로 돌아가는데 자연이 익숙한 소년은 파리라는 대도시는 불편하기만 했다.
파리에서 방황하던 고갱은 선원이 되어 5년을 바다 위에서 세계 곳곳을 누비며 마음의 고향 페루를 그리워하고 갈망했던 것일까?

배에 몸을 싣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 프랑스로 돌아간다. 어머니의 사망에 깊은 충격을 받은건지 다시 바다로 떠나지 않았고 어머니의 친구이자 후견인이 된 분의 소개로 증권중개소에서 일을 시작한다. 예상외로 그곳에서 페루 생활로 타국어에 능통했던 점이 증권업무에 큰 장점이 되어 증권맨으로 능력을 발휘한다. 수입도 어느 정도 되고 사회생활에 적응도 하고 결혼하게 된다. 고갱을 증권맨으로 만들어준 사람이 아마추어 화가이자 사진작가였다. 그래서 미술을 접하게 된다. 이 때만 해도 고갱은 미술을 재테크 정도로만 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갱은 재테크만이 아닌 매력에 이끌려 그림를 그리기 시작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말이다.
평일에는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는 파리 근교로 나가 그림 그리기에 빠져 미술을 향한 애정은 커져만 가고 빠져 나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진신된 마음으로 후배를 발굴하고 키우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는 화가 피사로롤 소개받는다.
고갱의 열정을 눈여겨 본 피사로는 인상주의전에 작품을 전시하게 도움을 주고 결국 고갱은 인상주의자들에게도 인정받는다.

당시 고갱은 ‘화가의 길’과 ‘직장인의 길’ 사이에서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삶에 큰 변화를 줄 사건이 발생한다. 급격한 경기 불황으로 증권회사에서 해고를 당하는데 고갱은 기뻐한다.
퇴사 후 승승장구할 것 같았지만 그야말로 찌질하고도 처절한 신인작가 고갱의 인생이 시작된다. 세상은 물론이고 가족들도 이해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고갱이 기댈 곳은 오직 그림 뿐이었기 때문에 오기로 버틴다.

고갱은 스스로 선택한 길을 그저 묵묵히 걸어간다. 그가 간절히 원했던 꿈은 무엇일까? 돈을 많이 버는 것? 그랬다면 증권맨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계에서 빨리 인정받는 것? 그랬다면 유행하던 화풍을 따랐을 것이다. 아쉽게도 둘다 아니다.
그가 진정 원했던 꿈은 ‘고갱만의 예술 세계 발견’,‘이것은 고갱이다’라는 예술의 영역을 간절히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꿈을 이뤘다. ’원시와 야생’이라는 콘셉을 찾은 것이다.

‘원시와 야생’이라는 가야 할 길이 명료해진 고갱.
원시와 야생을 간직한 곳으로 그림을 그릴 목적으로 떠난다.
자연을 찾으러 갔다가 또 다시 문명을 만난 ‘어쩌다 문명인’ 고갱은 그 곳을 탈출해 근처 섬으로 간다. 자금은 바닥나고 비위생적인 곳에서 고갱은 결국 선원일을 하겠다는 명분으로 겨우 도망치듯 섬을 빠져 나온다.

문명의 나라 프랑스에 도착했지만 비문명인이 되고 싶은 고갱.
이제 프랑스에 자신이 발 디딜 곳은 없다고 느끼고 ‘원시와 야생’이 살아있을 최후의 공간을 물색하는데…현실은 너덜너덜했다.

태초의 원시성을 간직한, 순수성에 도달하고자 했던 고갱은 인상주의의 짧은 붓 터치를 거부하고, 사물에 진한 윤곽을 그리고 그 안에 강렬하고 대담하게 색면을 칠해 단순화를 시켰다고 한다.

삶을 보는 관점과 삶을 사는 방식은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하지만 정답은 없다고 한다. 각자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삶의 빛’이 있을 뿐.

"예술가의 삶은 기나긴 고난의 길이다! 우리를 살게 만드는 것도 바로그런 길이리라. 정열은 생명의 원천이고, 더 이상 정열이 솟아나지 않을때 우리는 죽게 될 것이다. 가시덤불이 가득한 길로 떠나자. 그 길은 야생의 시를 간직하고 있다." - P163

"우리의 모든 르네상스는 <올랭피아>에서 시작되었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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