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고발 - 착한 남자, 안전한 결혼, 나쁜 가부장제
사월날씨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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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는 내게 당연히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시가와 관련된 일이라면 내가 언제 어디에 존재해야 하는지를 자신들이 결정해버린다. 나의 개인적인 공간을 넘나들고, 내게 다른어떤 것보다 우선하여 시가를 위해 할애할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고 여긴다. - P48

시부모는 며느리에게 묻고 있을 때조차, 묻지 않고 요구한다. - P50

내가 언제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를 결정하는 건 오로지 나 자신이어야 한다. 나의 몸, 나의 의지, 나의 판단이다. 나에게는 권리가 있다. 나를 결정할 권리, 자유로울 권리. 이러한 권리가 없다면 나를 독립된 개인이라 여길 근거가 없다. - P50

고통을 참으라는 요구와
아쉬움을 참으라는 요구 중
어느 것이 더 폭력적일까. - P52

우리 집 비밀번호를 아는 게 당신들이 존중받는 증거라 여긴다. 시가는 종종 우리 집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것처럼 주장하고 우리 집에 대해 우리와 당신들이 같은 권리를 갖는다고 여긴다. - P55

집안에 며느리가 생기면 갑자기 가부장적 행사가 시작되는 현상.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재치 있는 사람들이 ‘시가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P61

약간의 자기주장만으로도 여자는 너무 쉽게 고집 세고 피곤한 여자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아니까. 나는 누구에게든 그런 안상을 주지 않으려 애써왔고 시부모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 P65

똑똑하다는 말은 일종의 무기 같다. 나를 설득할 논리적 근거가 없을 때 나를 조종하기 위해 무기를 들이대듯 똑똑함을 건드리는 것 같다.
며느리의 똑똑함은 왜 비난의 소재이자 전제가 될까. 똑똑한 며느리라는 말 뒤에는 공통적으로 부정적인 말이 따라붙는다. - P67

똑똑한 며느리의 반대는 똑똑하지 않은 며느리가 아니라 착한 며느리다.
똑똑한 며느리는 곧 고분고분하지 않은 며느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 P68

그래서 ‘딸 같은 며느리‘는 이중역할노동을 요구하는 잔인한 개념이다. 며느리에 더해 추가적으로 딸로서의 노동까지 바라는 것이다. 딸 ‘같은‘ 며느리가 아니라 딸‘이자‘ 며느리이길 바라는 것. 며느리가 시가에 돌봄노동을 제공하고 시가의 무례를 참아넘기는 정서노동까지 수행하길 바라는 욕구가 숨어 있다.
며느리에 대한 무리한 기대를 가족주의로 교묘하게 포장하는 것이다. - P71

시모가 나를 김장에 부르지 않는 것에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지 않다.
권력자의 배려로 유지되는 아슬아슬한 평화가 아니라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로서 내 손으로 내 일상을 선택하고 싶은 것이다.
배려가 쌓일수록 찜찜함도 쌓여간다. - P75

나는 혼란스럽다. 분명 내게 가해지는 게 억압이 맞는데도 상대의 삶과 인격을 자꾸만 헤아리게 된다. 마음껏 미워할 수도 마음껏 좋아할 수도 없어 어정쩡하게 서성인다.
이해하다가도 이해하고 싶지 않고 마음이 짠하다가도 역시 안 되겠다 싶다. 이해하고 넘어간다면 편견은 계속 될 것이고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내가 며느리 역할을 소홀히 한다면 언제든 거둬질 수 있는 배려라는 걸 안다. - P75

가부장제를 전제로 한 시가의 배려는 언제나 찜찜하고 얼마간 모멸적이다. 완전한 배려인 적이 없고, 그러려고 한들 그럴 수가 없다. - P76

시부모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은 결코 만날 수 없다.
우리가 서로 원하는 것에는 교집합이 없다. 시부모가 원하는 관계에서 나는 언제나 모멸감을 견뎌야만 한다. 그것이 가부장 문화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시부모와 며느리의 관계다.
가부장 문화를 벗어나지 않는 한우리 모두에게 가능한 평화는 없다. - P78

가끔은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효과적일 때도 있다.(중략)
그러나 모든 틀의 위계가 같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 P79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혐오가 약자에 대한 강자의 지배수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나는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통제당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를 통제할 것이다. 철저히 나라는 사람으로 살 것이다.
자유로워질 것이다. 언젠가는 지금처럼 애써 다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 - P80

관계에서 더 노력해야 할 사람,
더 적은 노력으로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자식보다는 부모, 학생보다 교수, 직원보다 사장,
가부장제에서는 며느리보다 남편과 시가일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라고 외쳐야 할 방향은
아래가 아니라 위라고 믿는다.

약자들은 이미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들의 안녕과 생존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 P159

여자 간의 갈등인 것처럼 말하지만 고부 갈등의 본질은 ‘며느리 찍어 누르기’와 ‘남성의 책임 회피‘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전형적인 여성혐오 프레임을 빌어다가 남성의 책임을 교묘하게 은폐하며 원래 목적인 가부장제 질서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고부 갈등이란 단어는 그 자체로 부조리하다. 흡사 ‘남녀갈등’이나 ‘성대결‘같은 단어를 만들어,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가리고 여성이 받는 억압을 지우는 현상과 비슷하다. - P161

엄마 앞에서는 엄마 편을 들어 아내를 소외시키고 아내와 둘이 있을 때 아내 마음을 풀어주는 것을 적절한 대응으로 쳐주는 건 너무도 관대하지 않은가. 그저 골치 아픈 갈등에서 발을 빼고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결국 피라미드 제일 아래인 아내에게 고통을 떠넘기고 아내만 고통을 속으로 삭이도록 만드는 것은 비겁하지 않은가. - P162

시가와 우리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고민할 사람도 해결해야 할 사람도 며느리가 아니다. 고부 갈등은 애초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프레임이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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