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왜 고통을 말하는 데 설득이 필요한가요? - P4
말 한마디, 순간의 눈빛, 무심결에 나오는 행동에 나는 숨이 막혀버린다. 나는 아내, 며느리가 쉽지 않다. - P5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 차별은 드러나지 않기에 때로 더 강력하다. 보이지 않으니 없애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대개 부드러운 말로 외피를 두르고 있다. 우리 문화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가치들-정다움, 착함, 배려 깊음은 주로 누구에게 부여될까? 시가에서 참하게 과일을 깎는 며느리일까, 과일 따위 상관없이 앉아 있는 며느리일까? - P13
대부분 내 의사를 따르는 그가 편안하면서도 가끔은 그것을 우유부단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래도 자기의견만 고집하는 독불장군보다는 경청하는 말랑함이 나았다. - P17
서른다섯이라는 숫자를 특정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던 어떤 교수의 영향이었다. 서른다섯에 결혼을 하니 이미 ‘아줌마‘가 되어 있는 자신에게 아무도 간섭하지 못했단다. 시가도 자기를 어려워했으며 그 시절엔 양쪽 다 만혼이다 보니 양가 모두 자기 자식을 배우자로 맞아준데 감사하고 환영하는 마음뿐이었다고 - P19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하지 않는 게 나라는 사람이다. - P20
모두가 수행하는 과제를 빠짐없이 체크하며 넘어가야 한다는 의무감은 벗어나고 싶어도 쉽게 벗어나지지 않는 부담이었다. - P25
웨딩 산업에서만큼은 신부가 세상의 중심인 듯 대접하며 현실을 기만하는 것을 보면 심사가 뒤틀린다. - P28
여자의 말이 남자의 말과 동등한 권위를 갖는 날이 올 때까지 나는 의식적으로 여자의 말에 더 귀기울이려 한다. - P34
하지만 시부모의 기대와 요구는 항상 내가 예상하는 수준을 넘었고, 가끔 감당할 수 있다고 여겼던 일도 실제로 하고 나면 무리가 되기 일쑤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떻게 해야 내가 시부모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보다, ‘어떻게 해야 내가 시부모를 사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 P35
어떤 이에게 며느리라는 틀이 씌워지는 순간 우리는 그를 며느리로 대해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잘 아는 것처럼 여긴다. 순식간에 그를 해석하는 방식을 정한다. 시가 입장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며느리라는 틀은 더욱 강력해진다. - P37
시부모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은 며느리에게서 나온 걸로 쉽게 의심받는다. 근거는 없다.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자꾸만 허공의 며느리를 노려본다. 아들이 그러한 결정을 했을 리가 없다고 믿는다. - P38
말없는 끄덕임은 내가 받아들인 의미와 조금 달랐다. 그때 시부모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솔직하다거나 공손하다기보다는 ‘당돌’하다고 느낀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그분들이 나를 ‘똑똑한 며느리’라고 칭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 P40
‘고부 사이가 어색해진다‘는 것이 나와 시모가 서로 동등하게 어색함을 주고받는 것을 뜻할 리 없다. 그보다 시모가 며느리를 못마땅해해서 관계가 서먹해지는 경우에 가깝다. 그래서 ‘고부사이가 어색해진다‘는 시부의 말은 기만이었다. 시모(를 포함한시가)와 며느리 사이의 권력 차를 명확하게 아는 상태에서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이라는 말은 미움받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잘하라는 게 진짜 의미였다. - P41
시부는 웃으며 말했지만 도저히 웃으며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것은 농담을 가장한 위협이었고 나를 통제하기 위한 시도였다. 고부 사이가 어색해진다는 그럴 듯한 포장 안에 며느리를 미워할 거라는 칼을 숨겨놓고는 내 행동을 시가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시도였다. - P42
시부모의 생각을 바꾸는 것에 처음엔 희망적이었으나 점점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시부모의 가치체계에서는 내 말이 옳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비슷한 말을 듣는다 해도 견딜 수는 있겠지만또 그런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그분들을 만나러 가는 나를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 P42
단순히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당신들을 무시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것만 같다. - P43
그분들의 눈꺼풀을 덮고 있는 며느리라는 렌즈를 걷어내고 싶다. 제발 나라는 사람을 봐달라고 외치고 싶다. - P44
뭘 그렇게 사소한말들을 가지고 문제 삼느냐고 한다면 사소하니까 바꾸기쉽지 않겠냐고 말하겠다. 예민함이 둔하고 폭력적인 세상을 바꿀 것이다. 나는 나의 예민함을 훨씬 더 정교하고 날카롭게 가다듬고 싶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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