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신앙으로 돌아가라
김홍만 지음 / 옛적길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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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개혁교회의 이 모토는 현재의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성경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우리에게, 성경과 다른 말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 말은 교회됨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어떻게? 교회는 항상 성경에 비추어 행동하고 말해야 한다. 성경에 비추어 잘못된 행동이 있으면 고쳐야 하다. 성경이 말하는 바와 다른 말을 하면 성경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성경에 없는 행동을 한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바를 성경이 말하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거짓된 세상 가르침을 교회 안으로 들여와 그것이 마치 성경적인 가르침인양 둔갑시키고 있다. 분별력을 상실한 교회는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변호하며 정당화시키고 있다. 잘못된 가르침과 방법을 이용하여 교회를 급속도로 타락시키고 있다. 비록 그 의도는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도리어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다.

 

 "개혁 신앙으로 돌아가라"

 

 본서는 "미국 복음주의의 영향으로 병들어가는 한국교회를 향한 외침"이다. 미국의 것이면 모두 좋은 것이라는 잘못된 사대주의의 빠져 미국교회에서 유행하는 것은 무조건 수입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생생히 보여준다. 미국에서 들여온 유행들이 한국교회를 어떻게 병들게 하고 있는지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먼저 1장에서는 한국교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잘못된 방법들을 보여주고 그 문제점을 지적한다. '열린예배', 'CCM', '능력전도', '교회성장운동' 등 이러한 유행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밝히고, 그것들이 교회를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 알린다. 2장에서는 잘못된 흐름의 시초를 찾는다. 찰스 피니와 그 이후 부흥주의의 유행, 알미니안 신학의 유행, 전통의 거부, 세속화, 실용주의 등 교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잘못된 유행의 근원을 추적한다. 그러한 유행들의 오류를 지적하고, 어떠한 위험성을 갖고 있는지 밝히다. 3장에서는 교회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 잘못된 방향을 지적하고, 그로 말미암아 미래에 일어날 문제를 예측한다. 마지막 4장에서는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지 마련한다. 그것은 '개혁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종교개혁자들이 주창한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5솔라이다. 그 5가지가 왜 중요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대안이 될 수 있는지 답을 제시한다.

 혹자는 본서의 지적사항들이 그리 달갑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열린예배', 'CCM', '교회성장운동', '알미니안 신학' 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반발이 이해는 된다. 잘 하고 있는, 분명 그 덕분에 많은 교회들이 성장 했기에 최소한 결과론적으로, 외형적으로는 전혀 문제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도리어 교회를 살찌게 하고 있으니 그것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좋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4장을 잘 읽어본다면 왜 그것들에 그토록 반대를 하는지 설령 동의는 못할지라도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러한 유행들은 외형적으로 교회를 살찌우게는 하지만 속은 썩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 교회 안에서 유행하고 있는 많은 방법론들과 신학은 교회를 교회답지 못하게 하고 성경,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들이다. 그 근거는 바로 성경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과 그분이 기뻐하시고 그분이 원하시는, 그분을 섬기는 방법은 모두 성경에 나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성경에 써 있는 대로 행할 때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온전한 교회를 세우고 유지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성경에 답이 명확히 나와 있음에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다. 성경이 아니라 그 외부에서 방법을 찾는다. (이는 아무리 부인할지라도 사실은 성경을 불신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성경에 분명히 써있기 때문에, 그 외부적 방법들은 우리 인간이 보기에 아무리 좋아 보이고 옳게 여겨져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잘못되고 악한 것들이다. 그러한 잘못된 방법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섬긴 결과로 그분의 진노하심을 받은 사례가 성경 속에 분명히 나와 있음에도 오늘의 교회는 그 죄악을 또 다시 반복하고 있다. 참으로 인간은 어리석다.

 본서는 이와 같이 어리석은 방법들은 모두 폐기하고 오직 성경에 담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그분을 섬기자는 외침이다. 이 외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다른 곳으로 나아간다면 종국에 그분을 뵈올 때 어떠한 결과를 맞이할지, 후회해도 늦게 될 것이다.

 

 교회의 교회됨은 성경에 나와 있다.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는 그분께서 이미 성경을 통해 말씀하셨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성경을 불충분하게 여기며 외부에서 방법을 찾고 있다. 우리 인간 편에서 보기에 그 외부적 방법들은 참으로 좋아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의 열심과 기쁨으로 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주관에, 우리 소견에 옳아 보이기에, 우리의 진심이 담겨 있기에 우리를 아끼시는 하나님께서 당연히 기뻐 받으실거라 여긴다. 그러나 이는 대단한 착각이다.

 아무리 우리의 열심으로 만들어진 고안물들이라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분을 위한 우리의 진심을 담아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겨도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가 아니면 그 마음과 전심은 헛것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은 너무 이기적인 분이라 느껴질 수 있다. 오직 당신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라면 받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인간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굉장히 무례하고, 불쾌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를 지으신 그분은 지음 받은 우리에게 당신을 섬길 방법을 요구하실 권한이 충분히 있으시다. 하물며 같은 인간끼리, 왕이 신하에게도 그러한 태도를 요구하는데 모든 것 위에 계신 만주의 주분께 그러한 권리가 없으랴!

 그럼에도 인간은 자꾸만 자기가 원하는대로 하나님을 섬기려 한다.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섬기겠다며 섬김의 자유를 요구한다. 이것은 높고 거룩하신 그분을 한낱 우상으로 다루는 대역죄라고 할 수 있다. 내 맘대로 섬기는 것은 우상에게나 적합한 것이다. 우상은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그 섬김의 방식도 우리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와 전혀 다르다. 우상과 반대로 그분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다.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당연히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그분을 섬겨야 한다. 하지만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어리석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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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란 무엇인가 ㅣ 건강한 교회 만들기 시리즈 4
그렉 길버트 지음, 김수미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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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뉴스 가운데가장 기쁜 소식이다. 어떠한 훈훈한 기사보다 더 따뜻하고 반가운 이야기이다. 그렇다. 복음은 인류 최고의 자랑이요, 희망적인 소식이다. 복음은 가히 축복 중의 축복이다. 불신자는 결코 이해 못할 희소식이다. 복음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진한 사랑의 표현이다. 복음은...

 복음은 이상과 같이 틀림없이 기쁜 소식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여 주신 사실을 말하는 복음은 분명 감격스럽고, 감사한 소식이다. 그러나 복음을 여기까지만 이해한다면 그 본질을 맛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매우 피상적인 이해에 머물게 된다. 복음이 기쁜 소식인 것은 불과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너무 한정적으로만 이해한다. 우리는 복음의 진실에 온전히 다가서지 못한 채 그저 인간 중심적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크다. 우리가 좋은대로 편향적으로 이해하곤 한다.그렇다면 복음이란 무엇일까?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일까?

 '복음이란 무엇일까?'

 본서는 복음에 대한 부족한 이해를 돕는다. 복음에 대한 무질서한 이해를 하나로 모아 복음의 중심에 이르도록 한다.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고, 그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복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도록 한다. 그러면 본서에서는 복음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몇 가지 부분을 통해 살펴보자.

 저자는 워싱턴에 있는 한 침례교회의 목사로, 복음에 대한 접근을 네 가지 구조로 시도한다. 저자는 신약 성경에 나타난, 특히 로마서 1~4장의 바울의 주장을 통해 복음 선포의 핵심과 관련한 네 가지 중요한 진리를 정리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인간, 그리스도, 반응'이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체계화한, 로마서를 비롯하여 신약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난핵심 진리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나쁜 소식 : 하나님이 당신의 심판자이며 당신은 그에게 죄를 범했다. 그런 뒤 복음 :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고 우리가 회개하고 그를 믿으면 죄사함을 받는다."(53p)

 저자는 이것을 골자로 내용을 전개해 나간다. 여기에는 분명한 사실이 담겨 있다. 저자가 정리한 '하나님, 인간, 그리스도, 반응'이라는 네 가지 핵심 사항을 따라가며 그 사실을 살펴보자.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창조자이시기에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할 권리가 있으시다. 그런데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그분의 말씀을 어겼다. 이는 창조자에 대한 반역이자 명백한 죄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는 그의 영원히 변하지 않을 완전한 의와 공의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반역으로 인해 어그러진 모든 것을 바로잡을 계획을 갖고 계셨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기 위해 오셨고,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 위해서 대신 죽어 그들의 죄의 용서를 확보하고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간은 죄에 대한 용서를 받고 그분의 부활하심으로 죄를 용서 받았음을 확증 받았다. 우리는 이러한 계획, 이 사실에 대해, 진정으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새로운 영적 생명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속에서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 될 그 나라의 천국 시민으로서 그 나라의 완성을 대망하며 이 세상을 살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복음의 일련의 사실을 '하나님, 인간, 그리스도, 반응'이라는 네 가지 요점을 중심으로 기술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복음에 관해 편중되지 않고 균형적으로, 명확히 알게 될 것이다. 복음에 대해 피상적인 이해가 난무하는 현재에 본서를 통해 복음에 대한 바르게 이해 얻게 될 것이다. 복음을 품고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바른 자세와 방향을 갖게 될 것이다.

 복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지 듣기 좋은 소식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편에서 무척 진노하실 사실이다. 그리고 인간 편에서는 매우 비참하고 두려운 소식이다. 복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무척 어두운 소식이다. 그러나 복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복음은 반대로 새생명의 기쁨을 전한다. 하나님과의 끊어진 교제의 회복이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그러한 정반대의 사실과 소식을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이 잇는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죄없으신 그분께서 대역죄인인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것이 확증 되었다. 그리고 그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로 인해 더럽혀진 하나님의 나라는 다시 완성될 것이다. 구원 받은 우리는 그 나라의 완성을 대망하며 하나님의 나라, 그분의 주권적 통치 가운데서 그 나라의 확장을 이루어 나가게 된다. 우리는 비록 복음을 전하며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순결한 그리스도인임으로 받게 될 핍박을 피할 수는 없지만, 고통 가운데서도 복음으로 인해 기뻐하며 최후의 날을 갈망함으로 모든 핍박을 감사로 견딜 수 있게 될 것이다. 복음은 이러한 의미에서 기쁜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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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부자 가난한 성자 - 성경에서 찾은 자족, 향유, 나눔의 원리
양낙홍 지음 / IVP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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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돈에 웃고, 돈에 운다. 돈을 통해 인생을 보다 여유롭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을 때 기뻐한다. 반대로 돈으로 인해 인생의 활동이 제약을 받을 때 괴로워 한다. 인생은 돈으로 평가 받고, 돈으로 가치가 매겨진다. 대개 돈이 많으면 성공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돈이 많으면 어딜 가든 상석에 앉는다. 돈은 인간에게 목적이자, 인생의 시금석이다.

 이 부분에 그리스도인들의 고민이 맞닿아 있다. 그리스도인도 세상 사람들처럼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물론 그 목적은 하늘에 두고 말이다. 하지만 목적이 어떻든 돈에 욕심을 내면 주위 사람들에게 세속적, 속물이라 손가락질 받을 것만 같다. 그래서 속으로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내색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돈에 욕심을 버리자니 생활에 제약을 받아 인생이 괴로워질까 염려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돈에 관하여 청부론을 취해야 할까? 청빈론을 취해야 할까?


 '깨끗한 부자 가난한 성자'


 본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돈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할지 알려준다. 돈을 어떻게 벌고 사용해야 할지 그 방법을 제시한다. 돈과 관련한 총제적 답을 성경을 살펴봄으로 제공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돈에 대한 입장을 취할 때 일반적으로 청부론 아니면 청빈론 중 한 가지 입장을 선택한다. 탐욕 없이 청렴하게 벌 수 있는한 최대한 많이 벌어서 하나님을 위해 좋게 사용하면 된다. 혹은 돈을 돌 같이 보며 욕심 내지 않고 벌리는 대로 벌어 잘 사용하면 된다는 관점을 갖는다. 이 양자 중 어느 한 가지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증을 보인다. 그렇다면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는 없을까? 저자는 성경은 청부론이나 금욕주의 중 어느 한 쪽 입장이 아니라 그 중간 노선을 보인다고 말한다. 즉 성경에서는 물질을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선물"이라고 보기 때문에 누림이 허용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 누림이 무한정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누림이 "무절제와 방종을 위한 핑계로 사용되는 것을 절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부'는 복의 상징이다. 자수성가하여 돈을 많이 벌었든 유산상속으로 많은 돈을 거머쥐었든, 착복을 하여 재물을 쌓았든 관계없다. 그것을 얻은 과정이야 어떠든 일단 돈이 많으면 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돈이 적으면 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돈은 만복의 근원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부를 어떻게 볼까? 저자는 성경을 살펴보고 먼저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는다.


 "구약 성경은 분명 물질적 부를 비롯한 혀세의 좋은 것들을 '복'으로 인정하지만 영적인 복에 대해서도 많이 언급한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 들어오면 물질적인 복에 대한 강조는 거의 사라지고 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복이 강조된다."(90p)

 

 그렇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경은 훨씬 높은 복을 추천한다고 마한다. 그것은 바로 "신령한 복이며 오는 세상에서의 복"이다.

 저자는 물질에 대한 이상과 같은 답안을 제시하며 물질에 관하여 자족하며 누리고 나눌것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일터와 교회에서 어떻게 물질을 얻고 재산을 관리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나아가 가난과 부에 대한 바른 인식을 심어준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에 관하여 양극단적 입장 외에 다른 입장은 없다고 여기는 경향이 크다. 따라서 어느 한 입장을 취함으로 그에 따른 고민도 함께 얻어 신음한다. 본서는 양극단 사이에서 중용의 입장을 제시한다. 청부와 청빈 중 어느 한 쪽만 지지하지 않는다. 성경이 바라 본 물질을 어느 한 쪽 입장에 맞춰 편중되게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분석한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물질에 대한 입장은 어느 한 쪽이 아니라 양자 사이에서의 균형에 있음을 알려준다. 아니, 성경이 바라 본 물질 혹은 복은 단지 이 세상에서의 부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의 복에 있음을 말한다. 양극단적 입장에서 이러한 해석을 각각 보았을 때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보기에는 이 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눈을 들어 저너머를 보게 하는 본서의 해석이 성경이 말하는 물질과 복에 가장 근접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진정한 부, 진정한 복은 무엇인지 참으로 가치 있는 해석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물질과 복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이 혹은 한 쪽 입장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이에게 본서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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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람데오 - 시편 51편을 통해서 본 루터의 십자가의 신학 ㅣ 평신도를 위한 개혁주의 교리 시리즈 2
유해무 / 그라티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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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서 있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모두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 서 있다.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물인 까닭에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선 존재이다. 그 양자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구원의 여부이다. 믿는 자는 구원 받는 반면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차이 외에 양자 사이에 또 다른 차이가 있다. 바로 죄에 대한 민감성이다.

 믿는 자는 죄에 좀 더 민감하고, 믿지 않는 자는 죄에 덜 민감하다. 이것은 죄를 짓고, 안 짓고의 차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죄를 짓기 전에 하는 고민과 지은 후에 하는 후회와 회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에 대한 민감성은 곧 죄의 인식을 말한다.

 믿는 자는 죄와 하나님을 연결한다. 믿는 자는 죄를 지었을 경우 단지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죄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모든 죄를 하나님께 지은 것으로 여긴다. 반면 믿지 않는 자는 그저 자기 양심을 어기거나 혹은 타인에게 피해를 준 것으로 여긴다. 여기에 양자 간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 이는 죄의 뿌리가 어디에 있으며, 그 심각성은 어느 정도로 인식하느냐의 차이이다.

 '코람데오'

 본서는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라는 기독교 경구를 시편 51편을 통해 살펴본다. 인간의 죄와 의에 대하여 루터의 '십자가 신학', '이신칭의'로 알아본다. 그의 시편 51편 강해를 죄와 회개, 그리고 참된 믿음을 가르친다.

 본문은 총 3장으로 되어 있다. 1장에서는 인간의 죄인됨과 의인됨, 그리고 정직성을 알아본다. 저자는 인간은 죄인지만, 그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없다고 말한다. 죄는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계시되어야 알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죄는 "아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해야 하는 신앙의 문제"라고 말한다. 인간은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 앞에 서면 의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죄인인 인간은 정직할 수 없기 때문에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덧입을 때에만, 오직 은혜로만 의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2장에서는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다룬다. "루터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죄하고 징계하시는 의가 아니라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의임을 깨달았다"고 전한다. 루터에게 '코람데오'는 일차적으로 죄인인 인간을 뜻하고 그 코람데오 인간의 모습을 이신칭의의 진리로 해결하였다고 말한다.

 마지막 3장에서는 죄에 대하여 다룬다. 여기서, 죄의 뿌리는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부인함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사죄를 약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고백으로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한다.

 본서를 통해 독자는 죄와 의에 대하여 고민하는 계기를 얻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선 죄인인 인간은 자신이 짓는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깨닫고, 죄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참된 믿음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인간은 그 스스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 죄를 짓고 아무리 후회하고 회개한들 그 죄를 사함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선 존재인 까닭에 그 죄는 하나님께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그분께 회개해야만 죄 사함을 얻을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분의 십자가 달리심을 통한 인간의 죄 사함을 믿고 고백해야만 의를 덧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참된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만 죄인됨에서 의인됨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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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와 성경의 역사
찰스 F. 에일링 지음, 신득일.김백석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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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성경의 주요 배경은 지리적으로 고대근동에 속한다. 따라서 구약성경은 고대근동의 생활상을 일부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반대로 이는 고대근동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면 구약성경의 이해가 한결 쉬워진다는 말과도 같다.

 성경을 좀더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는 고대근동의 문화와 역사 등을 알 필요가 있다. 이중 이집트는 모세와 출애굽의 배경이 되기에 출애굽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집트의 문화와 역사 등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집트와 성경 역사'

 본서는 고대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관계, 그 접촉점을 보여준다. 아브라함과 요셉, 그리고 모세와 창세기 및 출애굽의 사건들을 조명하기 위해 이집트의 역사를 추적한다. 히브리 민족과 이집트의 접촉점, 성경 속 사건이 발생한 연대를 추정하고 당시의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함으로 사건들의 실제성과 개연성을 보여준다. 성경 이해의 배경지식을 제공한다. 물론 학계에 구약의 연대와 관련된 일치된 하나의 견해는 아직 없다. 학자들마다 성경 속 인물 및 사건과 관련된 이집트의 연대 등에 있어 이견을 보인다. 어느 견해가 정확한지 아직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현재 국내에는 그 관계를 보여주는 단권의 서적이 없다시피 한 것을 생각하면 본서의 출간은 반길만하다. 본서가 제공하는 문헌학적, 역사학적 자료는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관계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만 열심히 읽으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인은 단언하는 바 성경만 읽으면 결코 안 된다. 성경만 읽으면 자칫 이단이 될 수도 있다. 성경의 맥락과 상관 없이 자기만의 지식과 눈으로 성경을 보면 오독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성경은 다양한 시대에 씌어졌기 때문에 그 시대에만 통용 되던 언어와 문화가 상당히 많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 속 고대 국가들의 문화와 역사를 일정량 알 필요가 있다. 성경의 세부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국가들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성도가 그것을 일일이 공부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교회에서 설교 시간에 성경공부 시간에 조금씩 가르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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