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심판과 구원 자끄 엘륄 총서 8
자끄 엘륄 지음, 신기호 옮김 / 대장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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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는 기이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천지창조 이야기에서부터 노아의 방주, 불 속에서 살아남은 다니엘의 세 친구, 물고기 뱃속의 요나, 그리고 예수님의 기적과 이사 등 실로 이해 할 수 없고, 과학적으로 해명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성경에는 상당히 많다. 기독교인들은 그것들을 사실이라고 믿지만, 일부 기독교들인을 비롯한 어떤 이들은 전설이나 거짓 등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진위 여부를 가리기 힘든 성경 속 이야기들은 논란과 논쟁의 대상이다. 앞에서 언급 했듯이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 할 수 없고, 오늘날 세상의 베일을 벗겨주는 과학으로도 설명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들을 설명하기 위한 각종 대답을 제시한다. 그러나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성경 속의 기이한 이야기들은 모두 논쟁의 대상이지만 그 중 다른 이야기들과 같이 단지 기적이나 전설로 치부하기 힘는, 그렇다고 사실로 인정 할 수도 없는 이야기의 대표는 아마 요나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과연 누가 물고기의 뱃 속에 들어가서 3일을 살다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의 상식으로 3일이면 위산에 의해 충분히 소화가 되었을 시간인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사회학자이자 신학자, 그리고 철학자인 프랑스의 자끄 엘륄은 이에 대해 한 의견을 제시한다.

 

 '요나의 심판과 구원'

 

 이 책에서 자끄 엘륄은 요나의 이야기에 담긴 신학적 메시지를 분석하고 독자에게 알려준다. 총 3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에서 엘륄은 성경의 순서에 따라 그 안에 담긴 신학적 메시지를 풀이한다.
 엘륄은 먼저 요나의 기이하고 신비한 이야기에 제기되는 의문과 그에 대한 답을 모색한다. 요나와 니느웨의 실존 여부, 그리고 기적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등 역사와 신학적 난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엘륄은 요나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답을 한다. "요나는 그리스도의 형상이며 원형이다. ... 요나가 처한 상황들은 메시아의 상황들이다." 따라서 그는 요나의 이야기가 역사적인지 전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더불어 요나서를 예언서로 보아야만 한다고 한다. 즉 엘륄은 요나서의 메시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 시킨다. 다시 말해서 요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따라서 그분은 요나서를 핵심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전제로 요나서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와 메시지가 무엇인지 차근히 밝혀 나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나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한다.

 

 요나는 왜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 했을까? 그는 패역한 이방인이 구원 받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 이야기에서 니느웨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대신 우리는 자끄 엘륄이 '요나의 심판과 구원'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은 그분이 선택한 자는 설령 그가 도망 할 지라도 그가 소명을 완수 할 수 있도록 모든 자연계를 움직이신다는 것. 교회는 세상을 지배하는 능력이 아니라 세상이 비극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순교자라는 것 등 요나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인지, 아니면 전설인지의 여부를 떠나 - 물론 그것을 밝히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 우리(그리스도인)는 요나서를 통해 귀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요나서를 통해 자신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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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도시 - 현대 문명과 세속화에 대한 신학적 전망
하비 콕스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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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비 콕스는 20세기에 대표적인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라인홀드 니버와 폴 틸리히의 영향을 받아 현실 속에서의 책임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1965년 이 책 '세속도시'를 출간하여 신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의 고백에 의하면 이 책이 그렇게 주목 받을 것이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이 책은 전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20세기 최고의 신학서적에 뽑힐 만큼 매우 큰 인기를 누렸다. 동시에 당대 미국 신학계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콕스는 '세속도시'에서 먼저 '소속화'와 '세속주의'를 구분한다. 그에 의하면

 

 "'세속화'는 사회와 문화가 종교적 지배와 폐쇄된 형이상학적 세계관의 감독을 벗어나는 거의 되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과정을 의미한다. ... 반면에 '세속주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 즉 신흥종교와 비슷한 기능을 매우 많이 하는 새로운 폐쇄적 세계관의 이름이다. '세속화'는 그 근거를 성서 신앙 자체에서 찾으며 어느 정도는 성서 신앙이 서양사에 끼친 영향의 진정한 결과인데 반해, 세속주의는 ... 세속화가 낳은 개방성과 자유를 위협한다. ... ..."(69p)

 

고 말한다. '세속주의'는 경계를 하는 반면 '세속화'에는 긍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러한 세속화에 콕스는 '자연', '정치', '가치'를 포함시킨다. 세속도시의 형태로 '익명성', '이동성'을 들며 그것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콕스는 하나님의 활동을 세속도시 안에서 찾으며 그 도시 안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한다. 더불어 그는 교회, 그리고 하나님을 세속도시와 연관시킴으로 오늘날의 세속도시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기 어렵게 했다.

 

 콕스의 책 세속도시는 오늘날의 세속도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제거하고, 교회가 그 안에서 해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제시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할만하다. 비록 그 안에 담긴 여러 주장으로 인해 많은 논쟁이 일긴 했지만 그로 인해 세속도시와 세속화에 대한 문제를 취급하는 동기를 제공해 준 점은 높이 칭찬 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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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의 심리학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15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황 스데반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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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책 제목에 ’심리학’이라는 제목을 다는 게 유행한 적 있었다. ’무슨 심리학’, ’무슨 심리학’. 기발한 아이디어를 자랑하는 별의별 종류의 심리학이 제목에 붙여졌다. 물론 그러한 제목이 붙은 책은 대부분 교양/인문학 서적이었다. 정확하게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인간 심리와 행동을 다루는 책들이었다. 그것은 한때의 트렌드였음을 증명하듯이 요즘에는 ’무슨 심리학’이라는 제목의 책이 그때만큼 출간되지 않는다. 물론 아직도 그러한 책이 가끔 출간되긴 하지만. 

 ’구속의 심리학’

 앞서 말했듯이 ’무슨 심리학’이라는 제목의 책들은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다루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무엇을 다루고 있을까? 기독교의 구속과 관련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다루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저자인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의 말을 빌린다면 "인간의 속성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연구가 아니라 주님의 구속을 통해 우리 안에 태어난 새 생명에 대한 연구(p12)’를 담고 있다. 말이 상당히 거창하게 느껴진다. 내용이 상당히 궁금해진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주님에 대한 연구서이다.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본문에서는 주님의 사역, 즉 그분의 죽음과 부활, 승천과 우리의 관계 등을 다루고 있다. 주님의 행하심을 통해 우리가 어떠한 은혜를 입었는지, 그리고 그분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가장 마음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다. 그것은 아래와 같다.

 "우리의 십자가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거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세상 앞에서 보여 주는 일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권리를 영원히 내려놓았고, 우리가 지는 십자가는 하늘과 땅과 지옥 어느 곳에서든 우리는 주의 것이지 더 이상 내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자신의 권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주께 드려야 한다.(p154)" 

 이 책을 요약하면 - 꼭 맞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 위에 문단이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짧게 요약하면 위와 같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불어 위 구절은 이 책을 읽고, 우리가 해야 할 바를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는 주님과 같이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주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어 구속 이후 영원한 생명을 온전히 누리고, 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것과 일치하는 삶을 살고, 그분이 가신 길을 가야 한다! 

 챔버스 목사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 또한 메시지가 명료하다. 깔끔하다. 주님에 대한 귀중한 연구서인 이 책에 담긴 주님의 구속 사역의 모습과 과정을 통해 독자는 온전한 성도로서, 제자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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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받은 박사들의 3색 대화
정성욱.김인수.김동찬 지음 / (도서출판)이든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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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학문에는 많은 분야가 있다. 그리고 각 분야는 매우 세분화 되어 있다. 불과 100년 전과 비교하더라도 엄청나게 다양한 학문 분야가 생겨났고, 분화 되었다. 아마 그 모든 분야를 종이에 적는다면 한 두 페이지로는 부족 할 것이다.
 현재 학문 분야가 아무리 많더라도 중세, 아니 근대로만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대부분의 학문은 신학과 철학에 통합 된다. 바꾸어 말해서 거의 대부분의 학문은 신학과 철학에서 파생 되었다. 특히 철학 또한 '신학의 시녀'라 불렸듯이 신학에 종속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주요 학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자연과학, 의학 등도 신학의 한 분과였다.
 즉 신학은 물론이고, 과학, 미술, 음악, 역사, 철학 등 거의 대부분의 학문이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생겨났다. 다시 말해서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은, 정확히 말해서 신학과 과학, 그리고 철학은 서로 대치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서로를 보완해 주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원수인 듯 - 특히 신학 대 과학과 철학의 구도로 - 반목과 대립을 반복하고 있다. 서로 간에 온전한 대화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여기에 보기 좋은 모습이 있다.

 '성령 받은 박사들의 3색 대화'

 이 책에서는 신학과 인문학, 그리고 과학이 아름다운 대화를 나고 있다. 이 책이 저자는 정성욱, 김인수, 김동찬이다. 3인의 저자 중 정성욱은 신학 교수이고, 김인수는 영문학 교수이다. 그리고 김동찬은 (주)뉴로넥스 대표이사이다. 각각은 신학과 인문학, 그리고 과학을 대표한다. - '대표'라고 하여 3인의 저자가 각 학문 분야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서로 다른 학문의 영역과 색깔을 구분하기 위한 표현이다. - 세 저자를 언뜻 보면, 세 저자가 몸담고 있는 학문들 간의 오늘의 긴장 관계를 생각하면 대화가 불가능 할 것 같이 생각된다. 치열한 논쟁과 공방이 오고 갈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서로 간에 분명한 합의와 보완, 그리고 조화가 이루어진다.
 세 명의 저자는 총 10가지의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그 주제는 '유전자', '독소', '귀의 또 다른 기능', 'ATP 에너지', '마이코 플라즈마 병균', '단백질 결합의 버림과 선택', '술(alcohol)', '신호전달 폭포체계', '희생하는 단백질', '세포의 융합과 분열' 이다. 주제만 본다면 상당히 골치 아픈 과학 이야기가 진행 될 것 같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대화는 상당히 흥미롭게, 기독교 신앙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저자 중 한 명인 김동찬이 과학적 주제로 화두를 띄우면 나머지 두 사람이 그 주제에 대해 궁금증과 의문을 던진다. 그러면 다시 그가 그것에 대해 설명하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인문학을 거쳐 신학으로 이어진다. 과학으로 시작한 대화는 인문학을 거쳐 신학, 즉 신앙의 핵심으로 귀결된다. 대화가 이어지는 모양새와 내용이 참으로 재미있다. 주제만 보면 기독교 신앙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과학적 주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과 자세를 담고 있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세 학문을 동시에 맛 볼 수 있기 때문에, 특히 다양한 관점과 지식을 통해 신앙의 핵심을 배울 수 있는 까닭이다. 이 책을 굳이 말하자면 최근에 유행한 통섭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내용보다는 - 누군가 지적한 바 있는데 - 제목에 있다. '성령 받은 박사들의 3색 대화'라는 이 책의 제목은 언뜻 보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조금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성령 받은 것과 박사가 무슨 관계라는 말인가? 제목을 '매우 심하게' 곡해하면 박사만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성령은 박사에게만 임하신다는 말인가? 이것은 억지로 제목을 비틀은 것이기에 말이 안 되긴 한다. 문제는 제목이 상당히 상업적이라는 데 있다. 제목에서 '성령'보다는 '박사'가 더 눈에 띌 것이다. 성령님보다는 인간적인 관심과 가치를 더 강조하고 있음을 - 혹 그럴 의도가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 엿볼 수 있다. 저자들이 박사라는 것을 강조하여 성령님의 권위보다는 은근히 인간의 학식과 권위에 더 우위를 두고, 신뢰하도록 유도하도록 - 물론 또한 이런 의도가 전혀 없다 하더라도 - 한다. 이점이 참으로 아쉽다. 제목을 - 앞서 언급한 누군가가 제시한 것처럼 - '성령받은 성도들의 3색 대화'라고 했으면 더 궁금증을 자아 내지 않았을까 싶다. 차라리 덜 눈에 띄더라도 그게 더 낫지 않았나 싶다. 다름 아닌 기독교 서적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책임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내용은 참 좋지만 제목에 못내 아쉬움을 느낀다.

 이 책에서 신학자와 인문학자, 그리고 과학자가 아름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던 이유는 모두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다. - 그러한 면에서 아름다운 대화라는 지극히 기독교 관점에서의 표현이다. - 아마 신학자를 제외한 나머지 두 저자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면 서로 대화는 가능 했겠지만 의견 합일과 조화는 힘들었을 것이다.
 3인 3색 대화가 이 책이 처음은 아니다. '종교 전쟁'이라는 책에서 이미 3인 3색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동일하게 신학과 인문학, 과학이 말이다. 그러나 이 책과 그 책은 차이가 있다. '종교 전쟁'과 달리 이 책은 철저히 기독교를 중심으로, 신앙의 핵심을 다루며 대화가 진행 된다. 따라서 기독기인에게 이 책은 더욱 재미있고, 유익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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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주일 성수와 십일조
김홍만.아더 핑크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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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 성도들이 싫어하는 설교 주제는 지옥, 헌금, 회개 등이다. 이러한 주제로 설교가 시작 되면 아마 많은 이들이 속으로 인상을 찌푸릴 것이다. 왜 이 주제들을 싫어할까? 왜 이러한 주제들은 인기가 없을까? 그것은 성도들의 마음에 부담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회개하라는 메시지에 얼씨구나 회개해야지 기뻐하는 이는 적을 것이다. 아마 많은 성도들은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그 메시지에 괴로움을 느낄 것이다. 지옥에 관한 설교도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헌금에 대한 설교 또한 아무리 그것의 자발성과 적법성을 강조하더라도 자신이 가진 것 - 아무리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다시 그분께 드린다 할지라도 - 을 내어놓으라는 말에 기분 좋을 리 없을 것이다. 빼앗기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 한국 교회의 강단에서는 축복과 격려, 은혜의 설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한 설교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성도들을 지나치게 생각한 나머지 편중된 설교를 하는 게 문제이다. 한 쪽만 강조하면 신앙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삶의 양식은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많은 직장이 5일제 근무를 하고 있고, 대부분의 직장으로 확대 되어 가는 중이다. 그에 따라 직장인들은 여가 생활의 시간이 늘었다. 인터넷 웹서핑과 동호회 등을 통해 자신의 관심사를 충족시키기 위한 정보를 얻는다. 그것을 통해 자기계발을 한다.
 앞서 살펴본 설교에 대한 반응과 변화된 삶의 방식의 결과는 주일성수와 십일조에 대한 몰이해로 나타났다. 그 두 가지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고, 자신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대 되어 그 두 가지가 신앙생활에 있어 왜, 얼마나 중요한지 그 가치를 알지 못한다. 그 만큼 덜 중요하게 여긴다. 만약 설교 시간에 그것을 가르칠라 하면 거부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다.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관심 부족과 거부는 결국 기독교는 물론이고, 나아가 하나님께 대한 관심 부족과 거부라고 할 수 있다.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개혁주의 주일성수와 십일조’

 이 책은 교회에서 중요한 사항인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다루고 있다. 그것의 유래와 중요성을 말한다. 먼저 주일성수에 대해서는 김홍만 박사가 글을 썼고, 십일조에 대해서는 저명한 성경 연구가인 아더 핑크의 글을 번역 수록 하고 있다. 주일성수 부분에서는 주일과 안식일의 기원과 관계, 그리고 그 방법 등에 대해 다룬다. 십일조 부분에서는 신구약에 나타난 십일조의 기원과 원리 등이 정리 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교회의 귀한 영적 유산인 주일성수와 십일조의 성경적 근거를 살펴 볼 수 있다. 그것의 타당성과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의 두께가 얇아서 깊이 있게는 살펴 볼 수 없다는데 있다. 이러한 단점은 동시에 장점도 된다. 두 가지에 대해 핵심만 살펴보기에 좋다는 말이다. 따라서 주일성수와 십일조의 기원과 원래 등을 간략히, 그러나 성경적으로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주일성수와 십일조는 선택사항일까? 필수사항일까? 이것들은 기독교에서 단지 신념의 문제일까? 아니면 구속력이 있을까? 이 물음을 해결하기에 앞서 그 두 가지가 왜 중요한지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앞서의 물음에 대한 답은 자연히 해결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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