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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받은 박사들의 3색 대화
정성욱.김인수.김동찬 지음 / (도서출판)이든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오늘날 학문에는 많은 분야가 있다. 그리고 각 분야는 매우 세분화 되어 있다. 불과 100년 전과 비교하더라도 엄청나게 다양한 학문 분야가 생겨났고, 분화 되었다. 아마 그 모든 분야를 종이에 적는다면 한 두 페이지로는 부족 할 것이다.
현재 학문 분야가 아무리 많더라도 중세, 아니 근대로만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대부분의 학문은 신학과 철학에 통합 된다. 바꾸어 말해서 거의 대부분의 학문은 신학과 철학에서 파생 되었다. 특히 철학 또한 '신학의 시녀'라 불렸듯이 신학에 종속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주요 학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자연과학, 의학 등도 신학의 한 분과였다.
즉 신학은 물론이고, 과학, 미술, 음악, 역사, 철학 등 거의 대부분의 학문이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생겨났다. 다시 말해서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은, 정확히 말해서 신학과 과학, 그리고 철학은 서로 대치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서로를 보완해 주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원수인 듯 - 특히 신학 대 과학과 철학의 구도로 - 반목과 대립을 반복하고 있다. 서로 간에 온전한 대화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여기에 보기 좋은 모습이 있다.
'성령 받은 박사들의 3색 대화'
이 책에서는 신학과 인문학, 그리고 과학이 아름다운 대화를 나고 있다. 이 책이 저자는 정성욱, 김인수, 김동찬이다. 3인의 저자 중 정성욱은 신학 교수이고, 김인수는 영문학 교수이다. 그리고 김동찬은 (주)뉴로넥스 대표이사이다. 각각은 신학과 인문학, 그리고 과학을 대표한다. - '대표'라고 하여 3인의 저자가 각 학문 분야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서로 다른 학문의 영역과 색깔을 구분하기 위한 표현이다. - 세 저자를 언뜻 보면, 세 저자가 몸담고 있는 학문들 간의 오늘의 긴장 관계를 생각하면 대화가 불가능 할 것 같이 생각된다. 치열한 논쟁과 공방이 오고 갈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서로 간에 분명한 합의와 보완, 그리고 조화가 이루어진다.
세 명의 저자는 총 10가지의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그 주제는 '유전자', '독소', '귀의 또 다른 기능', 'ATP 에너지', '마이코 플라즈마 병균', '단백질 결합의 버림과 선택', '술(alcohol)', '신호전달 폭포체계', '희생하는 단백질', '세포의 융합과 분열' 이다. 주제만 본다면 상당히 골치 아픈 과학 이야기가 진행 될 것 같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대화는 상당히 흥미롭게, 기독교 신앙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저자 중 한 명인 김동찬이 과학적 주제로 화두를 띄우면 나머지 두 사람이 그 주제에 대해 궁금증과 의문을 던진다. 그러면 다시 그가 그것에 대해 설명하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인문학을 거쳐 신학으로 이어진다. 과학으로 시작한 대화는 인문학을 거쳐 신학, 즉 신앙의 핵심으로 귀결된다. 대화가 이어지는 모양새와 내용이 참으로 재미있다. 주제만 보면 기독교 신앙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과학적 주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과 자세를 담고 있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세 학문을 동시에 맛 볼 수 있기 때문에, 특히 다양한 관점과 지식을 통해 신앙의 핵심을 배울 수 있는 까닭이다. 이 책을 굳이 말하자면 최근에 유행한 통섭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내용보다는 - 누군가 지적한 바 있는데 - 제목에 있다. '성령 받은 박사들의 3색 대화'라는 이 책의 제목은 언뜻 보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조금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성령 받은 것과 박사가 무슨 관계라는 말인가? 제목을 '매우 심하게' 곡해하면 박사만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성령은 박사에게만 임하신다는 말인가? 이것은 억지로 제목을 비틀은 것이기에 말이 안 되긴 한다. 문제는 제목이 상당히 상업적이라는 데 있다. 제목에서 '성령'보다는 '박사'가 더 눈에 띌 것이다. 성령님보다는 인간적인 관심과 가치를 더 강조하고 있음을 - 혹 그럴 의도가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 엿볼 수 있다. 저자들이 박사라는 것을 강조하여 성령님의 권위보다는 은근히 인간의 학식과 권위에 더 우위를 두고, 신뢰하도록 유도하도록 - 물론 또한 이런 의도가 전혀 없다 하더라도 - 한다. 이점이 참으로 아쉽다. 제목을 - 앞서 언급한 누군가가 제시한 것처럼 - '성령받은 성도들의 3색 대화'라고 했으면 더 궁금증을 자아 내지 않았을까 싶다. 차라리 덜 눈에 띄더라도 그게 더 낫지 않았나 싶다. 다름 아닌 기독교 서적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책임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내용은 참 좋지만 제목에 못내 아쉬움을 느낀다.
이 책에서 신학자와 인문학자, 그리고 과학자가 아름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던 이유는 모두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다. - 그러한 면에서 아름다운 대화라는 지극히 기독교 관점에서의 표현이다. - 아마 신학자를 제외한 나머지 두 저자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면 서로 대화는 가능 했겠지만 의견 합일과 조화는 힘들었을 것이다.
3인 3색 대화가 이 책이 처음은 아니다. '종교 전쟁'이라는 책에서 이미 3인 3색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동일하게 신학과 인문학, 과학이 말이다. 그러나 이 책과 그 책은 차이가 있다. '종교 전쟁'과 달리 이 책은 철저히 기독교를 중심으로, 신앙의 핵심을 다루며 대화가 진행 된다. 따라서 기독기인에게 이 책은 더욱 재미있고, 유익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