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회의 종말론
총회교육자원부 엮음 / 한국장로교출판사(한장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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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 대 초반. 국내가 한 사이비 종교로 인해 떠들썩 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특정 날짜에 세계가 종말 할 것이라고 떠들었다. 해당 사이비 종교의 신도들 중 일부는 가출을 하거나 전 재산을 해당 그 종교에 바쳤다. 급기야 자살 시도를 하는 신도도 있었다. 이 사건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몇 년 뒤인 90년 대 중반. 일본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 했다. 종말론을 믿는 한 사이비 중교에서 지하철에 독가스를 살포하였다. 이로 인해 십수명이 사망하고,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가스 중독자가 발생 했다. 그 사건으로 일본은 큰 중격에 빠졌다.
 2000년을 앞두고 이번에는 온 세계가 술렁였다. 1999년에 지구가 종말을 할 것이라고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했다는 설이 전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어떤 사람들은 식량을 사재기 하고, 구호물자를 비축했다. 또 어떤 이들은 사재로 대피소를 만드는 등 불안에 떨었다.
 이상에서 이야기한 사건들 외에도 세상은 여러 번 종말론으로 인해 광기를 일으키고,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매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이야기는 허위로 판명이 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종말’ 이야기만 나오면 불안해 한다. 그리고 또 다시 2012년 마야의 지구 종말 예언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사람들에게 종말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일 것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종말에 관심을 갖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 의해 종말 이야기가 악용 되고 있지만 기독교 교리에 근거하면 그것은 결코 가공의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분명히 일어날 일이다.
 신론부터 시작되는 기독교 조직신학에서 종말론은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다. 그것은 제일 나중에 다루어지는 주제이다. 몇몇 학자들에 의해 가장 먼저 다뤄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종말론을 마지막에 다룬다.종말은 단지 세상의 끝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 역사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개혁교회의 종말론'

 이 책은 개혁교회의 종말론을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서 개혁교회에서는 종말론을 어떻게 이해하고, 말하는지 담고 있다. 개혁교회의 종말론을보다 선명하게 보이기 위해 여러 신학자들의 종말론에 대한 이해를 소개한다. 교부들에서부터 중세와 종교개혁시대를 거쳐 17세기와 근대,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상가와 신학자들의 종말론에 대한 견해와 인식을 소개함으로 개혁교회의 그것과 비교시켜 준다.
 이 책을 통해 개혁교회 뿐만 아니라 여러 신학자들의 종말론에 대해 살펴 볼 수 있다. 종말론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늘날의 이해 뿐만 아니라 이전 시대의 이해와 그것의 발전 및 변화를 살펴 볼 수 있다. 교과서적인 내용이라 딱딱하고, 지루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종말론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날과 같이 정리되고, 주장 되었는지 그 스토리를 살펴 볼 수 있다. 따라서 상당히 흥미롭게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종말은 세상이 뒤집어지고,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는 사건이 아니다. 유(有)에서 무(無)로의 전환이 아니다. 그것은 유(有)에서 또다른 유(有)로의 변화이다. 문장의 마침표이자, 또다른 문장의 시작이다. 곧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 역사의 완성이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다른 세상으로의 변화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기대되는 날이요, 그분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두려움의 날이다.
 그때가 언제 이 세상에 임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알고 계신다. 종말은 도둑과 같이 임할 것이다. 그렇기에 뭇사람들의 자극에 요동 할 필요 없다. 세상의 격변을 보고 종말이 임한 것인지 겁먹을 필요 없다. 다만 믿는 이들은 하나님을 위해 오늘에 충실 하고, 그분을 믿지 않는 이들이라면 오늘을 즐기면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마침내 자신도 모르게 그날이 왔을 때 각자의 갈길로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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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이야기와 신학
권종선 지음 / 대장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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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성서고고학과 성서비평학(이하 비평학) 등이 있다. 이들은 성경을 학술적으로 연구한다. 특히 비평학에는 '문학비평', '본문비평', '양식비평', '역사비평', '자료비평', '편집비평', '서사비평' 등 다양한 연구 방법들이 있다. 이들 연구 방법은 과학적 연구 방법의 하나로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성경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이 연구 방법들은 성경의 내용을 보다 깊고,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성경의 원본은 오래 전에 소실 되었고, 이제는 사본만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내용을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복원 - 성경의 필사 과정에서 혹시 모를 필사가들의 오류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 하고, 그것을 통해 성경 내용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그 연구들의 노력과 가치를 높이 평가 할 만하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로 비평학은 많은 비판과 거부의 대상이 되었다.


 '자료비평'의 경우 성경 본문의 맥락을 해체하고, 특정 구절 혹은 문단에 집중하였다. 성경의 내용보다는 출처를 문제 삼았기 때문에 성경의 메시지를 깨뜨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양식비평'과 '편집비평' 등의 경우에도 그 방식과 내용으로 인해 많은 비판에 직면 했다. 한때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었다. 비평학이 거부되는 듯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일부 보수적인 신학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신학교에서는 비평학을 가르칠 정도로 대부분 그것을 허용하고 있다. 과연 성경을 어디까지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분석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긴 하지만 비평학을 적절히 이용하면 성경을 더 알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복음서 이야기와 신학'

 

 이 책은 성서비평학 중 '서사비평' 방식으로 네 복음서를 살펴보고 있다. 1장 서론에서는 복음서 연구의 중요성과 복음서 장르와 성격, 그리고 복음서 해석 등 복음서와 관계된 기본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2 ~ 5장에서 네 복음서를 하나하나 연구하고 있다.


 이 책의 특이점이 있다면 본문 배열을 들 수 있다. 신약성경에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마가, 마태, 누가, 요한복음 순으로 연구한다. 그 이유는 최근 비평학에서는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 또한 그 순서를 따른 것이다. 그외에 눈에 띄는 점은 공관복음서를 세 복음서 - 저자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세 복음서라고 부르는 게 더 의미가 맞다고 본다. - 로 부르는 것 등이 있다.


 성서비평학을 조금이라도는 접해 본 이라면 이 책에서 사용하고 있는 '서사비평', 그것으로 인한 본문의 내용이 다소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른 연구 방법에 비해 거창하거나 무척 과심을 끄는 과학적 분석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이 책은 신앙서적에 담겨 있는 것과 같은, 복음서에서 교훈적인 신학적 메시지들을 끌어내고 있기 때문에 복음서를 면밀한 학문적 입장에서가 아닌 신앙적으로 읽기 위한 보조 자료로 삼으면 내용이 나름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과 함께 발전한 비평학은 물론 장점도 있지만 단점 또한 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그것의 다양한 연구 방법, 과학적인 분석은 일부 신학자들에 의해 악용 되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에 의해 성경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학은 비록 유용한 면도 있지만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다루어야 할 연구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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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하나님 나라
알렌 미츠오 와카바야시 지음, 이혜림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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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아마 하나님 나라, 흔히 말하는 천국일 것이다. 추측컨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비그리스도인들도)이 그곳은 아픔과 고통이 없는 평화의 세계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만연한 전쟁도, 분쟁도 없는 세계. 미움도, 손가락질도 없는 사랑과 평안만이 있는 세계 말이다. 천국이 과연 어떤 곳일지 지금으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신 후 얼마가 지난 뒤에야 그 세계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면 천국은 사람들(앞으로 특별한 구분이 없는 이상 사람들이라고 하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를 칭함)이 생각하는 그런 곳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천국에는 한 가지 결함이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천국은 피안의 세계에 가깝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한 후에 가는, 또 다른 삶이 펼쳐지는 세계 말이다. 대부분은 이 세상에서 겪은 고단함과 아픔들을 보상 받는 세계로 여길 것이다. 이것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많이 부족하다. 천국은, 물론 이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이긴 하지만 천국은 바로 우리 곁에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전파하셨다(마 4:17). 이 말에 사람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천국은 오지 않았는데 하물며 예수님 당시에 천국이 가까이 왔다니 참으로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바로 여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조금 다르다. 그분이 말씀하신 천국은 앞으로 도래 할 세계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통치와 그것이 미치는 모든 곳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미치는 모든 곳이 천국이다. 천국은 장소적 개념 뿐 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찬송가의 가사와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그 어디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파하신 것이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심과 동시에 천국이 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국은 아직 완성 되지 않았다. 천국은 예수님의 재림 후에 완성 될 것이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을 그저 죽은 후에 가는 곳의 대명사로 여긴다는데 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모든 것을 견디며 그곳에 가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마치 여기서 받은 고통과 손해를 그곳에 가서 모두 보상 받으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천국은 여기 이미 임했다. 단지 그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완성 되어 가는 중에 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의 자세와 행동의 방향이 담겨 있다.

 

 천국은 우리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완성 되어 가는 중에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에 동참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 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사는 날 동안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맡겨진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믿지 않는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자신이 거한 모든 곳에서 믿지 않는 이들과 믿는 지체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도와야 한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 하나님 사랑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 하나님 나라는 더욱 확장 되고, 천국은 차츰 완성 되어 갈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취할 자세이자, 사명이다.

 


 '웰컴 투 하나님 나라'

 

 이 책의 간단한 요약을 통해 이 글을 마무리 하려 한다. 이 책은 위에서 장황하게 이야기 한  내용들이 더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하나님 나라의 정의,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행동 등을 쉽게 전하고 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을 전하는, 즉 전도를 크게 강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을 평가절하하거나 등한시 한다는 말이다. 좀 더 포괄적인 관점과 자세를 제시한다. "전도 사역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주변 세상을 돌아보고 도움이 필요한 곳을 기억" 할 것을 강조한다. 단지 전도만으로 모든 의무와 책임을 다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전도는 물론이고 동시에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것을 종용한다.

 

 이 책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어렵지 않게 잘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와 정리가 필요 할 때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단, 학술서가 아니기 때문에 장황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좀 더 깊고, 체계적으로 알고 싶다면 조지 래드의 '하나님 나라' 추천한다. 앞의 책과 마찬가지로 자세하지만 조금 덜 부담스럽게 하나님 나라를 배우고 싶다면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설교인 '하나님 나라'를 읽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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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수록 참 좋은 나 - 존 오웬의 영성키워드 24가지
존 오웬 지음, 이설.김성연 옮김 / 강같은평화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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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참 평안은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영혼의 자유 또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시작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데서 그것들을 찾으려 한다. 무지와 고집 등으로 인해 자신의 힘으로 그것들을 얻으려 한다.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힘으로는 그것들과 점점 더 멀어질 뿐 결코 가까워질 수 없다.
 오직 하나님과의 거룩한 사귐을 통해 인간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인생의 길을 찾을 수 있고, 모든 아픔과 고통으로부터 해방 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지속적인 교제를 통해 더욱 깊은 교제로 나아가 영원한 사랑 안에 거하면 참 인생을 살 수 있다.

 

 '사랑 할수록 참 좋은 나'

 

 이 책의 저자 존 오웬은 17세기 영국의 목사요, 신학자요, 설교가이다. 그는 교회의 신념을 지키며 그밖에 것과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그런 오웬은 당대 청교도 사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80 여권의 책을 저술하여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의 심오한 저서는 신자들의 신앙과 그들의 성경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게 한다.
 이 책에는 영성에 관한 존 오웬의 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본문은 작게는 '사귐', '친밀함', '은혜', '사랑', '지혜', '회복' 등 총 24가지 키워드로 구성 되어 있다. 그리고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두 키워드는 '성부 하나님', 나머지 부분의 반은 '성자 하나님', 그리고 또 나머지 반은 '성령 하나님'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존 오웬의 많은 저서는 내용이 워낙 깊어서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읽으며 깊게 생각해야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 책은 쉽게 읽을 수 있다. 내용이 잘 이해된다. 그런 이 책은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를 돕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지나치게 극을 달리고 있다. '사랑 할수록 참 좋은 나'에서 오웬이 이야기 한 것처럼 성경을 무시한 채 지나치게 영성만을 추구하거나 반대로 말씀만을 추구하며 영성을 무시한다. 둘 다 바르지 않다. 신자는 성경을 길잡이 삼아, 성경을 바탕으로 영성을 추구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도 결여 되면 안 된다. 한 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 그럼에도 한국 교회는 한 쪽에만 목을 맨다. 더욱 큰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교회는 자신에게만 몰두한 채 진정한 교회 다움에 신경은 쓰지 않는다. 자신들만을 위한 친목회로 전락 했다.
 교회와 마찬가지로,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 개개인 또한 잘못 되었다. - 물론 모든 교회와 성도가 그런 것은 아니다. - 성도들은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고 있다. 저 밖에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은 외면한 채 자신의 안위에만 몰두하고 있다. 자신의 삶이 좀 더 평안하고, 좀 더 풍성해지기만 바라며 그렇게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 분명히 잘못 되었다. 안으로는 자신의 영성을 깊게 하고, 그러한 내면의 성장을 기반으로 밖으로는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그럼에도 교회와 성도는 올바른 길이 아닌 엉뚱한 길을 가며 괜한 심통만 부리고 있다.
 교회는, 성도는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를 바탕으로한 참 인생을 살아야 한다. 성도의 참 인생의 궁극적인 모습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이다. 깊고 흔들림 없는 영성을 바탕으로한 전도야 말로 성도의 참 인생이다. 이것을 위해 성도는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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