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회 성장운동 어떻게 볼 것인가 ㅣ 비교신학 시리즈 2
엘머 타운스 지음, 김석원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지금 한국 교회는 교회성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 세계에서 외형적으로 가장 큰 교회 10개 중에 6개가 한국에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물론 그 교회들이 지금과 같이 성장한 원인을 전적으로 교회성장에 매진한 결과라고 할 수만은 없다. 어떠한 모양과 방법으로 주님을 열심히 섬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리라. 어쨌든 명백한 사실은 많은 교회들이 양적 성장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크기가 곧 목회자의 능력 및 목회 성공 여부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교회의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및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소외와 허탈감이 심화되고 있다.
본래 교회성장은 선교를 목적으로 시작 되었다. 미국의 선교사인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은 1923년, 그리스도의 교회 연합선교회 선교사로 인도에 파송되었다. 인도 선교 중에 그는 자기 교단의 교회는 저성장을 보이는데 인도 내 다른 지역에서는 큰 부흥이 일어난 것을 보고, 어떻게 그러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지 궁금하게 여겼다. 이것을 계기로 시작된 연구가 교회성장 운동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교회성장 운동은 본래 선교에 적용시키기 위해 발흥 하였지만, 맥가브란의 교회성장 운동에 동참하게 된 풀러 신학교 세계 선교대학원의 피터 와그너(Peter Wagner) 등에 의해 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즉, 교회성장 운동은 종래의 국제 선교에 초점을 둔 부류와 함께 미국 내의 교회성장에 초점을 둔, 두 부류로 발전을 한다.
'교회성장 운동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책은 여전히 진행 중인 교회성장 운동에 대해 장점과 단점을 함께 논의하는 책이다. 5명의 논찬자가 서로 다른 관점으로 교회성장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다. '효과적인 전도 방법론적 관점', '복음과 문화 사이의 대화적 관점', '중도적 관점', '개혁주의적 관점', '갱신주의적 관점', 이렇게 5가지 관점에서 교회성장 운동의 이점과 문제는 뭐가 있는지 각각 주장을 하고, 서로 간에 피드백을 제공한다.
각각의 관점에 대해 (편집자의 말을 빌어)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효과적인 전도 방법론적 관점'은 "교회성장 운동을 복음을 가지고 실제적으로 문화 속으로 침투하는 전략이라고 본다." '복음과 문화 사이의 대화적 관점'은 "교회성장 운동이 교회론에 대한 문제 때문에 현대 문화를 효과적으로 상대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도적 관점'은 "교회성장 운동이 전도에 초점을 맞췄을 뿐 실제로는 선교학의 한 가지라고 보는 관점이다." '개혁주의적 관점'은 "교회성장 운동도 나름대로 신학 체계가 있지만, 문화를 분석하고 필요한 전략을 만들고 시대적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별로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갱신주의적 관점'은 "교회성장 운동이 바로 서려면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인 공동체로서 회복하라는 성경적 비전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이처럼 5가지 관점은 서로 그 의견이 다른데, 문제는 의견이 다르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얘기하는 대상과 초점이 다르다는 데 있다. 어느 논찬자는 주로 국제 선교 초점을 둔 교회성장 운동에, 그리고 또 어느 논찬자는 국내 교회성장 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의견을 제시한다. 이로 인해 독자는 일관된 흐름을 잡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 된다. (비록 교회성장 운동은 서두에서 개략적으로 말한 바와 같이 두 가지로 발전하였지만) 5명 모두가 둘 다를 다루거나 아니면 국제 혹은 국내 교회성장 운동 중 어느 한 가지에만 초점을 맞추어 의견을 나누었다면 독자들이 이해하고, 흐름을 잡기 더 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본인이 이해한 교회성장 운동은 이렇다. 먼저 교회성장 운동에 대한 오해가 크다. 일반적으로 '교회성장 운동' 하면 오직 수적 성장에만 매진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비판을 한다. 교회성장 운동에 대해 명확히 알고 그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드러난 모습을 보며 잘못되었다고 비판을 하곤 한다. 맥가브란이 구상한 교회성장 운동은 그렇지 않다. 그가 추구한 교회성장 운동의 기본은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한 보편적 원리를 찾아 그것을 선교에 적용하여 교회를 성장시키는데 있다. 성경적인 바른 원리가 적용된다면 교회는 성장하는 게 정상이라고 보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때문에 수적 성장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 뿐이지 그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교회성장을 비판하는 이들은 대개 신학자이다. 그들은 교회성장 운동은 분명한 신학이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여기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 즉, 그들은 현장의 사정은 잘 모르는 이론가들이라는 데서 아쉬움이 있다. 교회성장 운동은 현장의 경험을 통해 개발 되었다. 신학이 먼저가 아니라 현장이 먼저이다. 다시 말해서 시시각각 변하고, 많은 난관이 상존하는 현장에 대응하기 위해 탄생하였다. 물론 신학을 기반으로 도출한 바른 원리를 현장에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신학 연구를 통해 바른 원리를 찾아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현장에 대한 발빠른 대응이 어렵다. 그렇기에 (본인이 이해한 것이 맞다면) 맥가브란은 성경을 기본으로 하되 현장 분석과 적용을 우선하여 교회성장 운동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교회성장 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가장 먼저 또 다시 기본을 지적 할 수밖에 없다. 교회성장 운동은 과학적 방법 즉,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원리를 사회과학적 분석 방법을 통해 현장으로부터 얻어낸다. 이는 신학자들이 지적하는 문제로, 기독교의 모든 활동의 기본은 성경 안에서 얻어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말하는 바를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예외가 있다면 성경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기 때문에 말해주지 않는 나머지는 다른 방법으로 얻는 것이 허용된다. 단, 이때에도 반드시 성경으로 검증 받아야 함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교회성장 운동은 성경을 살펴보되 단지 참고용으로만 이용하고 주된 수단으로 현장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여기에서 양자 간에 팽팽한 의견 대립이 이어진다.
이에 더하여 교회성장 운동은 현장에 대한 분석과 적용을 중시한다. 때문에 성경을 살펴보기는 하지만 바른 성경 해석을 통해 자신들의 방법을 검증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방법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성경을 오용하곤 한다. 이것은 마찬가지로 계속적으로 지적되는 현장 중시에 따른 신학 부재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문제는 교회성장 운동이 바르게 나아가기 위해 그 주창자들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국제 선교에 초점을 맞춘 교회성장과 국내에 초점을 맞춘 교회성장 모두에 해당되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를 풀지 않는다면 교회성장 운동은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바와 같이 수적 성장이라는 한 쪽으로 치우친, 오류가 있는 발전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것은 그 운동의 폐기와 교회에 상처를 남기는, 모두에게 이롭지 못한 결과만 낳을 것이다.
교회가 성경 말씀을 제대로 따른다면 '교회의 성장'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현실은 그와 양상이 다르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과 그 결과는 말씀을 잘 따랐기에 발생한 자연스러운 '교회의 성장'이 아니라, 어떠한 인위적인 방법을 통한 '교회성장'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에 대한 증거로 많은 교회들이 더욱 성경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대형교회의 성공 비법을 전수 받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소위 '잘 되는 교회'가 ‘이 프로그램’을 해서 '성장 했다'고 소문이 나면 그 프로그램을 배우기 위해 많은 교회가 앞 다투어 달려든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적용해서 그것을 시행한 원 교회만큼 잘 되고, 성장 했다는 교회는 보기 드물다. 아니 아예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그 프로그램이 성경적으로 옳고, 바른 프로그램이라면 다른 교회도 그것을 적용 했을 때 성장해야 정상이다. 그렇지 않고 그 프로그램을 처음 시행한, 단 한 교회만 성장 했다면 그것은 '성경적인 방법이 아니다'라고 속단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보편적으로 적용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교회들은 마치 상위 1%의 아이들의 공부 비법을 배워서 서울대에 자식을 보내겠다고 부산을 떠는 학부모들과 같이 처절하게 뛰어 다닌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안타까움은 금할 수 없다.
'교회의 성장'은 억지로 추구하지 않아도 성경적인 바른 삶을 살아갈 때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성경 말씀을 따라 교회와 성도 개개인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섰을 때 교회는 성장하게 되어 있다. 반대로 일부러 '교회성장'을 추구하면 당장은 성장할지 몰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성장은 결국 오늘날 대형 교회들이 보여주는 각종 비리와 지워지지 않는 얼룩과 같이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말씀 추구에 따른 내적인 성결이 없다면 그것이 아무리 커도 썩은 고목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 교회들은 도리어 썩은 고목이 좋다고 하니, 미국에서 들여온 곰팡이가 핀 썩은 빵을 사대주의에 빠져 마치 갓 구운 신선한 빵인 줄 알고 무조건 먹으려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