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란 무엇인가 건강한 교회 만들기 시리즈 4
그렉 길버트 지음, 김수미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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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뉴스 가운데가장 기쁜 소식이다. 어떠한 훈훈한 기사보다 더 따뜻하고 반가운 이야기이다. 그렇다. 복음은 인류 최고의 자랑이요, 희망적인 소식이다. 복음은 가히 축복 중의 축복이다. 불신자는 결코 이해 못할 희소식이다. 복음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진한 사랑의 표현이다. 복음은...

 복음은 이상과 같이 틀림없이 기쁜 소식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여 주신 사실을 말하는 복음은 분명 감격스럽고, 감사한 소식이다. 그러나 복음을 여기까지만 이해한다면 그 본질을 맛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매우 피상적인 이해에 머물게 된다. 복음이 기쁜 소식인 것은 불과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너무 한정적으로만 이해한다. 우리는 복음의 진실에 온전히 다가서지 못한 채 그저 인간 중심적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크다. 우리가 좋은대로 편향적으로 이해하곤 한다.그렇다면 복음이란 무엇일까?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일까?

 '복음이란 무엇일까?'

 본서는 복음에 대한 부족한 이해를 돕는다. 복음에 대한 무질서한 이해를 하나로 모아 복음의 중심에 이르도록 한다.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고, 그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복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도록 한다. 그러면 본서에서는 복음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몇 가지 부분을 통해 살펴보자.

 저자는 워싱턴에 있는 한 침례교회의 목사로, 복음에 대한 접근을 네 가지 구조로 시도한다. 저자는 신약 성경에 나타난, 특히 로마서 1~4장의 바울의 주장을 통해 복음 선포의 핵심과 관련한 네 가지 중요한 진리를 정리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인간, 그리스도, 반응'이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체계화한, 로마서를 비롯하여 신약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난핵심 진리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나쁜 소식 : 하나님이 당신의 심판자이며 당신은 그에게 죄를 범했다. 그런 뒤 복음 :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고 우리가 회개하고 그를 믿으면 죄사함을 받는다."(53p)

 저자는 이것을 골자로 내용을 전개해 나간다. 여기에는 분명한 사실이 담겨 있다. 저자가 정리한 '하나님, 인간, 그리스도, 반응'이라는 네 가지 핵심 사항을 따라가며 그 사실을 살펴보자.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창조자이시기에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할 권리가 있으시다. 그런데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그분의 말씀을 어겼다. 이는 창조자에 대한 반역이자 명백한 죄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는 그의 영원히 변하지 않을 완전한 의와 공의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반역으로 인해 어그러진 모든 것을 바로잡을 계획을 갖고 계셨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기 위해 오셨고,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 위해서 대신 죽어 그들의 죄의 용서를 확보하고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간은 죄에 대한 용서를 받고 그분의 부활하심으로 죄를 용서 받았음을 확증 받았다. 우리는 이러한 계획, 이 사실에 대해, 진정으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새로운 영적 생명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속에서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 될 그 나라의 천국 시민으로서 그 나라의 완성을 대망하며 이 세상을 살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복음의 일련의 사실을 '하나님, 인간, 그리스도, 반응'이라는 네 가지 요점을 중심으로 기술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복음에 관해 편중되지 않고 균형적으로, 명확히 알게 될 것이다. 복음에 대해 피상적인 이해가 난무하는 현재에 본서를 통해 복음에 대한 바르게 이해 얻게 될 것이다. 복음을 품고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바른 자세와 방향을 갖게 될 것이다.

 복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지 듣기 좋은 소식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편에서 무척 진노하실 사실이다. 그리고 인간 편에서는 매우 비참하고 두려운 소식이다. 복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무척 어두운 소식이다. 그러나 복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복음은 반대로 새생명의 기쁨을 전한다. 하나님과의 끊어진 교제의 회복이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그러한 정반대의 사실과 소식을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이 잇는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죄없으신 그분께서 대역죄인인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것이 확증 되었다. 그리고 그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로 인해 더럽혀진 하나님의 나라는 다시 완성될 것이다. 구원 받은 우리는 그 나라의 완성을 대망하며 하나님의 나라, 그분의 주권적 통치 가운데서 그 나라의 확장을 이루어 나가게 된다. 우리는 비록 복음을 전하며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순결한 그리스도인임으로 받게 될 핍박을 피할 수는 없지만, 고통 가운데서도 복음으로 인해 기뻐하며 최후의 날을 갈망함으로 모든 핍박을 감사로 견딜 수 있게 될 것이다. 복음은 이러한 의미에서 기쁜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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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부자 가난한 성자 - 성경에서 찾은 자족, 향유, 나눔의 원리
양낙홍 지음 / IVP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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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돈에 웃고, 돈에 운다. 돈을 통해 인생을 보다 여유롭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을 때 기뻐한다. 반대로 돈으로 인해 인생의 활동이 제약을 받을 때 괴로워 한다. 인생은 돈으로 평가 받고, 돈으로 가치가 매겨진다. 대개 돈이 많으면 성공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돈이 많으면 어딜 가든 상석에 앉는다. 돈은 인간에게 목적이자, 인생의 시금석이다.

 이 부분에 그리스도인들의 고민이 맞닿아 있다. 그리스도인도 세상 사람들처럼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물론 그 목적은 하늘에 두고 말이다. 하지만 목적이 어떻든 돈에 욕심을 내면 주위 사람들에게 세속적, 속물이라 손가락질 받을 것만 같다. 그래서 속으로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내색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돈에 욕심을 버리자니 생활에 제약을 받아 인생이 괴로워질까 염려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돈에 관하여 청부론을 취해야 할까? 청빈론을 취해야 할까?


 '깨끗한 부자 가난한 성자'


 본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돈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할지 알려준다. 돈을 어떻게 벌고 사용해야 할지 그 방법을 제시한다. 돈과 관련한 총제적 답을 성경을 살펴봄으로 제공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돈에 대한 입장을 취할 때 일반적으로 청부론 아니면 청빈론 중 한 가지 입장을 선택한다. 탐욕 없이 청렴하게 벌 수 있는한 최대한 많이 벌어서 하나님을 위해 좋게 사용하면 된다. 혹은 돈을 돌 같이 보며 욕심 내지 않고 벌리는 대로 벌어 잘 사용하면 된다는 관점을 갖는다. 이 양자 중 어느 한 가지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증을 보인다. 그렇다면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는 없을까? 저자는 성경은 청부론이나 금욕주의 중 어느 한 쪽 입장이 아니라 그 중간 노선을 보인다고 말한다. 즉 성경에서는 물질을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선물"이라고 보기 때문에 누림이 허용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 누림이 무한정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누림이 "무절제와 방종을 위한 핑계로 사용되는 것을 절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부'는 복의 상징이다. 자수성가하여 돈을 많이 벌었든 유산상속으로 많은 돈을 거머쥐었든, 착복을 하여 재물을 쌓았든 관계없다. 그것을 얻은 과정이야 어떠든 일단 돈이 많으면 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돈이 적으면 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돈은 만복의 근원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부를 어떻게 볼까? 저자는 성경을 살펴보고 먼저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는다.


 "구약 성경은 분명 물질적 부를 비롯한 혀세의 좋은 것들을 '복'으로 인정하지만 영적인 복에 대해서도 많이 언급한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 들어오면 물질적인 복에 대한 강조는 거의 사라지고 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복이 강조된다."(90p)

 

 그렇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경은 훨씬 높은 복을 추천한다고 마한다. 그것은 바로 "신령한 복이며 오는 세상에서의 복"이다.

 저자는 물질에 대한 이상과 같은 답안을 제시하며 물질에 관하여 자족하며 누리고 나눌것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일터와 교회에서 어떻게 물질을 얻고 재산을 관리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나아가 가난과 부에 대한 바른 인식을 심어준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에 관하여 양극단적 입장 외에 다른 입장은 없다고 여기는 경향이 크다. 따라서 어느 한 입장을 취함으로 그에 따른 고민도 함께 얻어 신음한다. 본서는 양극단 사이에서 중용의 입장을 제시한다. 청부와 청빈 중 어느 한 쪽만 지지하지 않는다. 성경이 바라 본 물질을 어느 한 쪽 입장에 맞춰 편중되게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분석한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물질에 대한 입장은 어느 한 쪽이 아니라 양자 사이에서의 균형에 있음을 알려준다. 아니, 성경이 바라 본 물질 혹은 복은 단지 이 세상에서의 부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의 복에 있음을 말한다. 양극단적 입장에서 이러한 해석을 각각 보았을 때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보기에는 이 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눈을 들어 저너머를 보게 하는 본서의 해석이 성경이 말하는 물질과 복에 가장 근접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진정한 부, 진정한 복은 무엇인지 참으로 가치 있는 해석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물질과 복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이 혹은 한 쪽 입장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이에게 본서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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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람데오 - 시편 51편을 통해서 본 루터의 십자가의 신학 평신도를 위한 개혁주의 교리 시리즈 2
유해무 / 그라티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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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서 있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모두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 서 있다.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물인 까닭에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선 존재이다. 그 양자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구원의 여부이다. 믿는 자는 구원 받는 반면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차이 외에 양자 사이에 또 다른 차이가 있다. 바로 죄에 대한 민감성이다.

 믿는 자는 죄에 좀 더 민감하고, 믿지 않는 자는 죄에 덜 민감하다. 이것은 죄를 짓고, 안 짓고의 차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죄를 짓기 전에 하는 고민과 지은 후에 하는 후회와 회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에 대한 민감성은 곧 죄의 인식을 말한다.

 믿는 자는 죄와 하나님을 연결한다. 믿는 자는 죄를 지었을 경우 단지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죄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모든 죄를 하나님께 지은 것으로 여긴다. 반면 믿지 않는 자는 그저 자기 양심을 어기거나 혹은 타인에게 피해를 준 것으로 여긴다. 여기에 양자 간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 이는 죄의 뿌리가 어디에 있으며, 그 심각성은 어느 정도로 인식하느냐의 차이이다.

 '코람데오'

 본서는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라는 기독교 경구를 시편 51편을 통해 살펴본다. 인간의 죄와 의에 대하여 루터의 '십자가 신학', '이신칭의'로 알아본다. 그의 시편 51편 강해를 죄와 회개, 그리고 참된 믿음을 가르친다.

 본문은 총 3장으로 되어 있다. 1장에서는 인간의 죄인됨과 의인됨, 그리고 정직성을 알아본다. 저자는 인간은 죄인지만, 그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없다고 말한다. 죄는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계시되어야 알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죄는 "아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해야 하는 신앙의 문제"라고 말한다. 인간은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 앞에 서면 의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죄인인 인간은 정직할 수 없기 때문에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덧입을 때에만, 오직 은혜로만 의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2장에서는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다룬다. "루터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죄하고 징계하시는 의가 아니라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의임을 깨달았다"고 전한다. 루터에게 '코람데오'는 일차적으로 죄인인 인간을 뜻하고 그 코람데오 인간의 모습을 이신칭의의 진리로 해결하였다고 말한다.

 마지막 3장에서는 죄에 대하여 다룬다. 여기서, 죄의 뿌리는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부인함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사죄를 약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고백으로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한다.

 본서를 통해 독자는 죄와 의에 대하여 고민하는 계기를 얻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선 죄인인 인간은 자신이 짓는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깨닫고, 죄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참된 믿음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인간은 그 스스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 죄를 짓고 아무리 후회하고 회개한들 그 죄를 사함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선 존재인 까닭에 그 죄는 하나님께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그분께 회개해야만 죄 사함을 얻을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분의 십자가 달리심을 통한 인간의 죄 사함을 믿고 고백해야만 의를 덧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참된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만 죄인됨에서 의인됨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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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와 성경의 역사
찰스 F. 에일링 지음, 신득일.김백석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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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성경의 주요 배경은 지리적으로 고대근동에 속한다. 따라서 구약성경은 고대근동의 생활상을 일부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반대로 이는 고대근동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면 구약성경의 이해가 한결 쉬워진다는 말과도 같다.

 성경을 좀더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는 고대근동의 문화와 역사 등을 알 필요가 있다. 이중 이집트는 모세와 출애굽의 배경이 되기에 출애굽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집트의 문화와 역사 등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집트와 성경 역사'

 본서는 고대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관계, 그 접촉점을 보여준다. 아브라함과 요셉, 그리고 모세와 창세기 및 출애굽의 사건들을 조명하기 위해 이집트의 역사를 추적한다. 히브리 민족과 이집트의 접촉점, 성경 속 사건이 발생한 연대를 추정하고 당시의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함으로 사건들의 실제성과 개연성을 보여준다. 성경 이해의 배경지식을 제공한다. 물론 학계에 구약의 연대와 관련된 일치된 하나의 견해는 아직 없다. 학자들마다 성경 속 인물 및 사건과 관련된 이집트의 연대 등에 있어 이견을 보인다. 어느 견해가 정확한지 아직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현재 국내에는 그 관계를 보여주는 단권의 서적이 없다시피 한 것을 생각하면 본서의 출간은 반길만하다. 본서가 제공하는 문헌학적, 역사학적 자료는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관계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만 열심히 읽으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인은 단언하는 바 성경만 읽으면 결코 안 된다. 성경만 읽으면 자칫 이단이 될 수도 있다. 성경의 맥락과 상관 없이 자기만의 지식과 눈으로 성경을 보면 오독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성경은 다양한 시대에 씌어졌기 때문에 그 시대에만 통용 되던 언어와 문화가 상당히 많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 속 고대 국가들의 문화와 역사를 일정량 알 필요가 있다. 성경의 세부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국가들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성도가 그것을 일일이 공부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교회에서 설교 시간에 성경공부 시간에 조금씩 가르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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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
피터 엔즈 지음, 김구원 옮김, 손석태 추천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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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66권의 저자는 다르다. 각기 다른 저자가 다른 시대에 다른 상황에서 성경을 기술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점은, 서로 다른 저자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썼음에도 하나님과 이 세상에 관한 진술이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성경의 저자는 인간임을 말하는 동시에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씌어 졌음을 알려준다.

  성경은 비록 각각의 인간 저자가 쓴 것이지만, 그 인간 저자는 하나님이 영감으로 기록을 하였다. 따라서 성경은 저자마다 그 필치 등이 다르지만, 내용은 통일성을 갖는다. 그런데 이 영감성에 문제가 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라고 고백한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오류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그러데 성경의 내용 중 상호 부조화를 이루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어떠한 부분은 신화인지, 주관적 혹은 객관적 역사 서술인지 접근하기 곤란한 부분들이 있다. 이처럼 성경은 무오성을 의심 할 만한 부분들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

 본서는 개혁신학의 산실인 필라델피아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구약학 교수였던 피터 엔즈가 쓴 책이다. 그는 본서를 쓴 이후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마침내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왜 이 책이 논란이 되었을까?

 엔즈는 본서를 통해 성경에 나타난 인간적 특징들에 주목한다. 저자는 크게 세 부분에 집중한다. 첫째, 구약성경과 고대근동 문학과의 유사성. 둘째, 구약성경 내에서의 동이한 사안에 대한 상반된 이야기. 셋째, 신약성경 저자들이 구약성경을 인용하는 방식. 저자는 이 세 주제에 집중하며 내용을 전개해 나간다.

 저자는 세 주제를 풀어나감에 있어 기본적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역동적이고 긍정적인 성경관을 견지"(19p) 한다. 그의 논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음에도 본서가 논란이 되었던 이유는 내용상의 문제보다는 정치적 문제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어쨌든 본서를 통해 독자는 성경 영감, 그 무오성과 관련하여 생길 수밖에 없는 고민들을 어떻게 해결 할 수 있고, 또한 성경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서로 다른 관점과 해석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 견해에 따라, 성경은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그 내용에 있어 한치의 오차도 없어야 할 것이다. 누가 봐도 동일한 해석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해석자에 따라, 그리고 내용에 있어 몇몇 부분은 상반 된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먼저 인간 해석자의 무지와 오류 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동일한 것을 보더라도 그 지식과 경험 등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 해석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용에 있어 상반되는 부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우리는 성경 해석의 토대를 우리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 두면 될 것이다. 엔즈의 말처럼 비록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한다면 그러한 부조화는 해석과 이해에 있어 그리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해결은 해석학이라는 학문적 견지에서는 무책임한 답이다. 그러나 성경은 학문적 방법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이해를 해야 하는 책이 아니다.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데 있어 해석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다. 즉 우리는 성경을 읽고 이해할 때에도 그 저자이신 하나님의 인도함을 따라야 한다. 그럴 때에 우리의 의문들은 자연스럽게 해결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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