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을 읽다 보면 톨킨이 이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처럼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었습니다. 친구와 지인은 또 얼마나 잃었나 모릅니다. 그 어두운시기를 겪으며 어두운 작업실에 홀로 앉아 <반지의 제왕>을쓸 수밖에 없었던 톨킨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그토록 어둡지만 끝끝내 희망을 향해 전진하는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던 톨킨의 심경을 우리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희망이 있어서 희망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희망이 없어서, 희망의존재를 믿을 수가 없어서, 기어이 희망으로 나아가는 연약한존재들의 이야기를 써야만 겨우 희망을 희망할 수 있었던 것아닐까요? 이야기에 기대서라도 희망의 여린 잎을 틔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이야기가 아니라면 희망의 존재조차 상상하기 힘들었을 테니까요. 톨킨처럼, 아고타 크리스토프도이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 P177
이름을 빼앗아버리는 것. 이것은 우리에게 낯선 사건이아닙니다. 오래전 이 땅에서 벌어진 ‘창씨개명‘ 앞에서 사람들은 왜 그토록 저항했을까요. 그건 그냥 이름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의 이름, 나의 가족의 이름, 나의 뿌리, 그 모든 것이 지워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지키겠다는 건,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최소의 권리를 빼앗기지않겠다는 투쟁입니다. - P139
모든 사람이, 그들의 행동 양식이, 그들의 어려움과 고민이, 너무나도 현실적이라서요. 계속해서 현실의 저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어서요. 무엇이 정상일까요? 우리는 ‘다름‘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나요? 다름 앞에서 여성 (엄마)에게는어떤 역할이 요구되는가요? 그것이 정당한가요?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며 그를 고립시키고 있진 않나요? 그것이야말로 폭력 아닌가요? 지금도 다섯째 아이는 계속 태어나고 있지 않나요? 우리는 다섯째 아이를 사회에서 어떻게 배제하고 있나요? 다섯째 아이는 가해자일까요? 피해자일까요? - P100
한 사람에게 운명이 다른 사람에게 가면 우연이 됩니다. 누군가에게 정답이 누군가에게는 불완전한 진실이 됩니다. 조가 열여덟 살의 도카스를 사랑하기로 결정한 것도, 도카스가 50대 남자를 받아들이는 것도, 바이올렛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와 계속 사는 것도, 각자의 솔로 연주 안에서 비로소이해가 됩니다. 물론 독자인 우리가 동의하건 말건 소설 속 인물들은 자기 방식대로 살아버리니, 우리는 꼼짝없이 그들의연주에 붙들려 책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지요. - P69
한 번씩 알라딘에서 내가 보고 싶은 책을 구입할 때,
만 오천원이 넘지 않으면
정가 할인이 들어간 책들을 구입하곤 한다.
가벼운 에세이나 웹툰이 주로 당첨되는데,
스피츠 봄동이를 데리고 와서 키우는 일상이 특별하지는 않지만 따뜻하다.
20260418
p.s : 오늘 날씨가 좋아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데 나른하게 잠이 온다. 이런 느낌도 좋다. 도서관에서 한 숨 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