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소감 -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
김혼비 지음 / 안온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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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술이 삶을 장식해주는 형용사라면 커피는삶을 움직여주는 동사다. 원두를 갈면 하루가 시작되고페달을 밟으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디카페인커피를 마시면 하루가 끝난다. 형용사는 소중하지만, 동사는 필요하다. 여행에서도 그랬다. 오로라를 보던 압도적인 순간이나 유빙에 둘러싸였던 꿈결 같은 순간에는 늘 한두 잔의 술이 함께하며 찬란한 빛을 더해주었지만, 그런 순간들 뒤에는 아침마다 마주하는 이국의 낯선 공기를 좀 더편안하고 친밀한 무엇으로 바꾸어주며 차분하게 하루의 모험을 계획하게 만들었던 한두 잔의 커피가 있었다.
아무리 엉망진창인 하루를 보냈더라도 아침에 마실 맛있는 커피를 생각하면 그래도 내일을 다시 살아볼 조그만 기대가 생기고, 여전히 엉망진창인 하루를 보내다가도 저녁에 자전거를 탄 뒤 마실 끝내주는 커피를 생각하면 아주 망한 날만은 아닐 것 같은 조그만 위안이 생긴다. 오늘도 이렇게 무사히 원두를 갈고 있는 한, 나는 괜찮을 것이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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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비 지음 / 안온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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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누군가 기숙사 방문을 두드렸다. 열어보니 K가 서 있었다. 박스에서 막 꺼낸 것 같은, 투명 비닐로 감싼 전자레인지를 들고서.
"나중에 나 주고 가면 되니까………… 석 달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서."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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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비 지음 / 안온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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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의 단계에 얼마나 오래 머무르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단계를 넘어 진짜 대범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모르겠지만, 뜻하지 않은 ‘위선 권장 영화들에서도 문제는 늘 위선을 벗었을 때 생기지 않는가. 영원한 위선은 결국 선으로 남을 테니까, 이 위선과 가식이 헐거워져서 쉽게 벗겨지지 않도록, 위선과 가식으로 아주 똘똘뭉쳐 살고 싶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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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비 지음 / 안온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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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브라운밀러와 영지 선생님의 말은, 마음대로누구를 때리라는 뜻이 아니다. 폭력을 옹호하고 선동하는 것도 아니다. 문명의 선을 지키며 살되, 저 선을 넘어버린 누군가가 폭력을 행사할 때, 공포와 억압에 가로막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지 말라는 뜻이다. 은희는 왜 맞서 싸우려 생각하지 못했을까? 또 나는 그전까지 왜 맞서 싸울 생각도 못 한 걸까? 큰소리 내면 안 돼,
때리면 안 돼, 싸움은 나빠, 여자가 나대고 과격하면 못써, 여자는 어차피 지게 되어 있어, 같은 것들만 잔뜩 배우고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만 도가트느라, 고함치고 때리고 맞는 원초적 싸움에서 나를 주체로 놓아보지 못한 것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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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소감 -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
김혼비 지음 / 안온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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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글 쓰는 일이란 결국 기억과 시간과 생각을 종이 위에 얼리는 일이어서 쓰면서 자주 시원했고 또한 고요했다. 2018년과2021년 사이에 쓴 글 중 나의 집에 꼭 들여놓고 싶은 글을 고르는 일은 즐거웠다. 어떤 글은 거의 그대로, 어떤글은 상당부분 고쳐서, 어떤 글은 아예 새로 써서 한데착착 모아 놓다 보니 ‘산문집‘이 정말 집처럼 느껴졌다.
글들이 사는 집. 새집으로 무사히 이사를 끝마친 기분이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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