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브라운밀러와 영지 선생님의 말은, 마음대로누구를 때리라는 뜻이 아니다. 폭력을 옹호하고 선동하는 것도 아니다. 문명의 선을 지키며 살되, 저 선을 넘어버린 누군가가 폭력을 행사할 때, 공포와 억압에 가로막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지 말라는 뜻이다. 은희는 왜 맞서 싸우려 생각하지 못했을까? 또 나는 그전까지 왜 맞서 싸울 생각도 못 한 걸까? 큰소리 내면 안 돼,때리면 안 돼, 싸움은 나빠, 여자가 나대고 과격하면 못써, 여자는 어차피 지게 되어 있어, 같은 것들만 잔뜩 배우고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만 도가트느라, 고함치고 때리고 맞는 원초적 싸움에서 나를 주체로 놓아보지 못한 것이다. - P49
하지만 글 쓰는 일이란 결국 기억과 시간과 생각을 종이 위에 얼리는 일이어서 쓰면서 자주 시원했고 또한 고요했다. 2018년과2021년 사이에 쓴 글 중 나의 집에 꼭 들여놓고 싶은 글을 고르는 일은 즐거웠다. 어떤 글은 거의 그대로, 어떤글은 상당부분 고쳐서, 어떤 글은 아예 새로 써서 한데착착 모아 놓다 보니 ‘산문집‘이 정말 집처럼 느껴졌다.글들이 사는 집. 새집으로 무사히 이사를 끝마친 기분이다. - P8
쉽게 잘 읽히는 소설이다.
그러나, 다들 너무 극찬을 해서 그런지 내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조금 긴 단편 느낌으로
맡겨진 소녀와 그 소녀를 보살피는
에드나 아주머니와 킨셀라 아저씨의
따뜻하고 세심한 마음이 참 좋았다.
빨간0머리 앤의 마릴라 아주머니와 매튜 아저씨가 생각났다.
20230721
자갈 진입로에서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와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느새 나는 내가 제일 잘하는일을 하고 있다.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나는 선 자세에서 곧장 출발하여 진입로를 달려 내려간다. 심장이 가슴속이 아니라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마음을전하는 전령이 된 것처럼 그것을 들고 신속하게 달리고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마음속을 스친다. 벽지에 그려진 남자아이, 구스베리, 양동이가 나를 아래로 잡아당기던 그 순간, 길 잃은 어린 암소, 젖은 매트리스, 세번째빛. 나는 내여름을, 지금을, 그리고 대체로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한다. - P96
우리는 내 옷을 개서 그 안에 넣고 고리의 웹스 서점에서 산 책도 넣는다. 하이디』, 『다음으로 케이티가 한 일은What Katy Did Next 』, 『눈의 여왕』. 처음에는 약간 어려운 단어때문에 쩔쩔맸지만 킨셀라 아저씨가 단어를 하나하나 손톱으로 짚으면서 내가 짐작해서 맞추거나 비슷하게 맞출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이윽고 나는 짐작으로맞출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그런 식으로 계속 읽어나갔다.자전거를 배우는 것과 같았다. 출발하는 것이 느껴지고, 전에는 갈 수 없었던 곳들까지 자유롭게 가게 되었다가, 나중엔 정말 쉬워진 것처럼. - P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