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날들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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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정 봐주며 살아야지. 안 그래, 작가 선생?"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오지랖 넓은 것 또한 그는 이해할수가 없다. 땅을 닮아 넉넉한 품성을 가졌거든 없는 설움을애먼 남에게 풀지를 말든가, 마누라 동생을 건드리지 말든가. 기본적인 예의도 윤리도 없으면서 웬 돼먹지 않은 훈계란 말인가. 그러면서 그는 뭔가 억울하다. 내 사정은 누가봐주나.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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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날들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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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파도 파도 끝이 없다. 일을 하는 순간에는 끝이 없다는 생각을 지워야 한다. 농사일과는 다르다. 아무리 넓은논도 밭도 끝은 보인다. 끝까지 갈 일이 아득해도 하다 보면 어느 샌가 끝이 나 있곤 했다. 그는 고추 따기가 가장 싫었다. 계집처럼 쭈그려 앉아 고추를 따다 보면 허리가 끊어지거니와 무슨 놈의 고랑이 그렇게 긴지, 검푸른 고추 터널의 끝 부근에서 어룽거리는 빛 때문에 아득히 현기증이 일었다. 고추 딸 때가 다가오면 온종일 술에 취한 듯 세상이어지러워 차일피일 핑계거리를 만들었고, 꼭지가 말라들즈음에야 그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집을 나섰다. 벼룩처럼 들러붙어 등골을 뽑아먹는 자식들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지게를 내던지고 훌훌 세상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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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날들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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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너는 아는 것 많아 좋기도 하겠다. 예순 넘으면 잘난놈이나 못난 놈이나 똑같고, 일흔 넘으면 배운 놈이나 못배운 놈이나 똑같고, 여든 넘으면 산 놈이나 죽은 놈이나똑같다더라."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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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날들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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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사가 넉살 좋게 그의 말을 받는다. 언젠가 아들을 버스에 태우느라 고생하는 그와 아내를 본 뒤로 제가 자청하여 아침 첫 버스와 오후 3시, 이 노선을 다니는 맘 좋은 운전사다. 그는 그것도 괜히 민망하고 언짢다. 목구멍에 풀칠하기 어려울 때도 남 신세는 지지 않았던 그다. 그러나 이제는 별수 없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언 땅에서 아들휠체어를 밀기도 어렵고, 버스에 태우기도 힘든 몸이 되어버렸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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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날들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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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봉긋해진 후로 나는 언니와도 어머니와도 목욕을하지 않았다. 목욕탕 다닐 돈이 없어 내남없이 집에서 목욕을 하던 시절, 나는 행여 누가 볼 새라 부엌문을 꽁꽁 걸어잠갔다. 밖에서 어머니가 뜨거운 물을 더 부어주겠다고 해도 나는 절대 문을 열지 않았다. 워쩌믄 저런 것꺼정 빼닮았으까이 너무 깨끔을 떨어도 팔자가 외로운 법인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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