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날들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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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파도 파도 끝이 없다. 일을 하는 순간에는 끝이 없다는 생각을 지워야 한다. 농사일과는 다르다. 아무리 넓은논도 밭도 끝은 보인다. 끝까지 갈 일이 아득해도 하다 보면 어느 샌가 끝이 나 있곤 했다. 그는 고추 따기가 가장 싫었다. 계집처럼 쭈그려 앉아 고추를 따다 보면 허리가 끊어지거니와 무슨 놈의 고랑이 그렇게 긴지, 검푸른 고추 터널의 끝 부근에서 어룽거리는 빛 때문에 아득히 현기증이 일었다. 고추 딸 때가 다가오면 온종일 술에 취한 듯 세상이어지러워 차일피일 핑계거리를 만들었고, 꼭지가 말라들즈음에야 그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집을 나섰다. 벼룩처럼 들러붙어 등골을 뽑아먹는 자식들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지게를 내던지고 훌훌 세상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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