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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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대면서도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셔츠의 깃을 올려보기도 하고, 단추를 두개쯤 풀었다가 끝까지 채워보기도 했다. 갑자기 가족이 될 수 있을 리 없다고, 인색하게 거리를벌리다가도 이런 순간이면, 차곡차곡 쌓아온 미움이 맥없이 허물어지고 마음이 부드럽게 기울었다. 언젠가는 저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품기도 했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을까 잠시 고민하다 결국 셔츠를 그대로 걸친 채 사진관으로 향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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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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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사는 동안 나는 사진관집 외아들로 통했다. 단골손님들이나 이웃들, 친구들까지도 모두 그렇게 불렀다.
한때는 사진관 쇼윈도에 내 사진이 걸려 있는 게 부끄러워 아버지에게 불평하거나 화를 낸 적도 있었다.
저것 좀 내려요. 학교에서 애들이 얼마나 놀리는데.
창피하냐?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아버지는 객쩍게 웃으며 말했다.
동창들 집에 놀러 가니 어느 집 거실 벽에는 자식들 상패가 걸려 있고, 어느 집 장식장에는 금두꺼비가 놓여 있더라. 누구나 가장 귀하고 남들에게 내보이고 싶은 것을눈에 띄는 곳에 두는 법이다. 그래도 네가 정 싫다면 내려주마.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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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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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정말 나랑 출신 성분 자체가 다르구나."
박유정은 그 말을 듣고 김상우가 감정에, 타인에 인색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춥고, 퍼석퍼석하고, 아무런 냄새도 풍기지않는 마음. 그 마음은 마치 냉동실에 오랫동안 넣어두었던 빵과 비슷했다. 이미 겉이나 속이나 꽝꽝 얼어버린 빵. 전자레인지에 돌린다고 해도 금세 허물어지고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그런 빵. 하지만 박유정은 그런 김상우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후회스럽고 원망스러운 날들도 많았지만, 박유정은 김상우가 안쓰러웠다. 김상우가 인색해진 것은 당연하다고, 김상우가인색해졌다고 느끼는 자신 또한 인색해진 것이라고 생각하려애썼다. 박유정이 생각하는 인색이란, 마음이나 생각이 오직 하나뿐인 것이었다. 종교인이 종교만 생각하고, 아이 엄마가 자기 아이만 생각하고, 고리대금업자가 이자만 생각하는 것. 그 외는아무것도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것.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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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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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번만큼은 정용의 편에 서고 싶었다. 이건 어쩔 수 없이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알면서도 속는 일,
그게 사랑의 일이니까.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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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할머니가 통화를 끝내자 비로소 훌쩍훌쩍울기 시작했는데, 쫑이에 대한 미안함이나 안쓰러움보다는 자신의 실수와 잘못이, 그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가 더 컸다고다. 나는 그때 왜 미안해하지 않고 억울해했을까? 아빠는 살면서 그 말을 자주 떠올렸다고 한다. 미안한 것과 억울한 것을 뒤섞지 말 것. 나와 시현을 키울 때도, 공장에서 동료들과 일하고투쟁할 때도, 아빠는 자주 그 말을 생각했고, 또 주문처럼 입안에서 중얼거리기도 했다. 아빠에겐 그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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