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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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주춤거리다 손에 든 이어폰을 제게 건넸습니다.
......?
형이 넘겨준 이어폰을 귀에 꽂았습니다. 커널형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어 끼고 우리는 등나무 아래 말없이 앉아있었습니다. 가사 없이 반복되던 멜로디와 코끝을 간지럽히던 은은한 등나무 향기, 앞머리를 쓸어올리던 바람.
말보다는 표정이나 분위기, 실루엣이 더 오래 기억에남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하 형이 제겐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안경 뒤에 숨겨진 표정이 늘 어두웠던 형. 나보다 두뼘정도 더 커서 늘 올려다봐야 했던 형. 변성기를 지나 목소리가 굵직했고, 가끔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다 내게 들키면 얼굴이 굳어졌던 형.
형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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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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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대면서도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셔츠의 깃을 올려보기도 하고, 단추를 두개쯤 풀었다가 끝까지 채워보기도 했다. 갑자기 가족이 될 수 있을 리 없다고, 인색하게 거리를벌리다가도 이런 순간이면, 차곡차곡 쌓아온 미움이 맥없이 허물어지고 마음이 부드럽게 기울었다. 언젠가는 저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품기도 했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을까 잠시 고민하다 결국 셔츠를 그대로 걸친 채 사진관으로 향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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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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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사는 동안 나는 사진관집 외아들로 통했다. 단골손님들이나 이웃들, 친구들까지도 모두 그렇게 불렀다.
한때는 사진관 쇼윈도에 내 사진이 걸려 있는 게 부끄러워 아버지에게 불평하거나 화를 낸 적도 있었다.
저것 좀 내려요. 학교에서 애들이 얼마나 놀리는데.
창피하냐?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아버지는 객쩍게 웃으며 말했다.
동창들 집에 놀러 가니 어느 집 거실 벽에는 자식들 상패가 걸려 있고, 어느 집 장식장에는 금두꺼비가 놓여 있더라. 누구나 가장 귀하고 남들에게 내보이고 싶은 것을눈에 띄는 곳에 두는 법이다. 그래도 네가 정 싫다면 내려주마.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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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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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정말 나랑 출신 성분 자체가 다르구나."
박유정은 그 말을 듣고 김상우가 감정에, 타인에 인색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춥고, 퍼석퍼석하고, 아무런 냄새도 풍기지않는 마음. 그 마음은 마치 냉동실에 오랫동안 넣어두었던 빵과 비슷했다. 이미 겉이나 속이나 꽝꽝 얼어버린 빵. 전자레인지에 돌린다고 해도 금세 허물어지고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그런 빵. 하지만 박유정은 그런 김상우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후회스럽고 원망스러운 날들도 많았지만, 박유정은 김상우가 안쓰러웠다. 김상우가 인색해진 것은 당연하다고, 김상우가인색해졌다고 느끼는 자신 또한 인색해진 것이라고 생각하려애썼다. 박유정이 생각하는 인색이란, 마음이나 생각이 오직 하나뿐인 것이었다. 종교인이 종교만 생각하고, 아이 엄마가 자기 아이만 생각하고, 고리대금업자가 이자만 생각하는 것. 그 외는아무것도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것.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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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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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번만큼은 정용의 편에 서고 싶었다. 이건 어쩔 수 없이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알면서도 속는 일,
그게 사랑의 일이니까.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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