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주춤거리다 손에 든 이어폰을 제게 건넸습니다.
......?
형이 넘겨준 이어폰을 귀에 꽂았습니다. 커널형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어 끼고 우리는 등나무 아래 말없이 앉아있었습니다. 가사 없이 반복되던 멜로디와 코끝을 간지럽히던 은은한 등나무 향기, 앞머리를 쓸어올리던 바람.
말보다는 표정이나 분위기, 실루엣이 더 오래 기억에남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하 형이 제겐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안경 뒤에 숨겨진 표정이 늘 어두웠던 형. 나보다 두뼘정도 더 커서 늘 올려다봐야 했던 형. 변성기를 지나 목소리가 굵직했고, 가끔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다 내게 들키면 얼굴이 굳어졌던 형.
형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 P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