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이방인 - 드라마 <안나> 원작 소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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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교회 안에서 인기가 좋았어요.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주변에 늘 사람들이 많았지요. 작가라서 그런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했어요. 특히 러시아에 대한 이야기가 참 흥미로웠지요.
유년 시절 백야의 밤에 자작나무숲에서 길을 잃었던 이야기, 바이칼 호수에 출몰한 괴물을 목격한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기억이 나요. 정말 생생하게, 바로 이자리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이야기를하는 재주가 있었어요. 그가 이야기할 때면 특히 한권사의 손자가무척 즐거워했지요.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는 그 아이를 보니 과거의 수줍음이 외로움 때문이었던 걸 알겠더군요.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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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이방인 - 드라마 <안나> 원작 소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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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과 마주칠 확률이란 얼마나 될까. 이유미의 경우 통상 일주일에 한 번꼴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갔다가, 우편물을 찾으러 갔다가,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다가, 주차장에서, 이유미는 종종 강미리와 마주쳤다. 임재필이 누구냐고물으면, 새로 알게 된 이웃이라고만 둘러댔다. 어쩌다 세 사람이엘리베이터에 함께 오를 때에는 긴장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강미리는 이유미와 마주칠 때마다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치 뭔가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사람 같았다. 이유미는 악보 파일책, 출석부를 모두 가방에 넣어 다녔고, 나중에는 아예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다녔다. 십칠층까지 계단을 올라오면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고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었다. 이유미는 임재필에게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근방에서 일어난 살인강도 사건을 들먹이면서 무서워 집을 나가기가 겁이 난다고 했다. 임재필은 태어나자란 그 동네를 떠나는 데 반감이 있었고, 또 손꼽히는 부촌인 그지역의 경호시설이 그리 허술하지는 않다고 반박했다. 그들은 이문제로 얼마 동안 냉전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유미의 고집에 임재필이 두 손을 들었다. 그들은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집을내놓았고, 이사 날짜를 잡았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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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이방인 - 드라마 <안나> 원작 소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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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후에 연습실에서 나와보니 저녁시간이 다 되었더라고요.
교수님은 저를 데리고 학교 근처 분식집으로 갔어요. 떡볶이랑 김밥, 라면을 잔뜩 먹고 헤어져 집에 왔죠. 그렇게 일주일에 한두 차례 수업 후에 교수님하고 레슨을 했어요. 알고 보니 저 말고도 교수님과 분식집에 같이 다니는 아이들이 꽤 있었죠. 교수님은 학생들한테 시간을 나눠주는 걸 아까워하지 않았어요. 예술가는 아닐지 몰라도, 진짜 선생님이었던 거예요.
그때까지 저는 피아노에 딱히 품은 꿈이 없었어요. 피아노를 선택한 것은 그저 그게 늘 목구멍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죠. 어린 시절 아빠 손을 잡고 피아노학원에 갔던 그날이 제게는 언제나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연주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죠.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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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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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는 홀로 호숫가에 앉아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모든 게 다 거짓은 아니었다고, 함께했던 시간 동안,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었다고. 하지만 이제 그녀도 의심스러웠다. 그들이 나눈 게 진짜 사랑이었다면, 어떻게 이토록 간단히 깨질 수 있단 말인가. 그를 정말 화나게 하는 것은 그녀의 거짓말이 아니라, 그녀가 번듯한 양복 체인의 상속녀가 아니라는 사실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는 이제 더이상 그녀를 원하지않았다. 너무나 간단한 심경의 변화였다. 마침내 해가 지고 호숫가가 어둑어둑해졌을 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숙집에 다닿았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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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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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끔찍한 침묵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남편도 나도 끝내 헤어지자는 말을 내뱉지 않았다. 우리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듯 서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십 년간의 결혼생활, 함께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서로를 반씩 닮은 얼굴로 자라고 있었다. 헤어진다는것은 몸의 한 부분을 잘라내는 것과 같았다. 비록 곪아가고 있는부분이라고 해도, 그것을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우리는 그 부분이 저절로 괴사하여 떨어져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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