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으로서의 자은은 하지 않을 일을, 관직에 있는 자은이라면 망설임 없이 할 것이었다. 거인의 손가락 중 하나이기에 어딘가 구름 속에 있는 머리가 시키는 대로 행했을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더 큰 힘에 종속되어버렸다. 그 힘을 끌어 쓸수 있는 대신 본연의 모습과는 멀어지고 있었다. 스스로만 느끼는 줄 알았더니 곁의 인곤도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래, 예전이면 몰라도 지금의 자네라면 그보다 나쁠 수있었음을 이해하겠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에는 위로도 아래로도 끝이 없네. 그 틈새에서 살아남은 것만 해도 나는 운을 충분히 누린 거야. 그러니 그저 햇빛에 매일 감사할뿐, 지나간 날들을 곱씹지 않아."
금성을 떠나지 않은 미은이라면 믿었을 말을, 자은은 믿지않았다.
"어떤 궤를 벗어난 일을 겪고 나면・・・・・・ 사람의 마음에 어둠이 남네. 이제 와선 자네 앞에서 세상 불행을 다 끌어안은 척했던 게 부끄럽지만, 나는 조금 굶었던 것만으로 안쪽에 어둠이 고였어. 음식을 삼키면 뱃속에서 그 그림자도 함께 흔들리지. 자네 안에 그런 게 남지 않았을 리가 없어. 자네의 늘 웃는얼굴은 일종의 마개인가보군." - P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