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The Gorgon's Look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0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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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도대체 어떤 상황이 되면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범인은 타고난 살인자는 아니다. 그래서 그 동기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동기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때로는 그 동기가 너무 복잡해서 하나로 연결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노리즈키 린타로의『잘린 머리에게 물어봐』가 바로 그런 작품이었다.

가와시마 이사쿠는 살아있는 몸을 석고로 뜨는 라이프캐스팅에 의한 인체조각를 하는 전위조각가이다. 뛰어난 작품성으로 한때는 큰 이슈가 된 인물이었으나 일본의 시걸이란 말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한 작업이 평론가들의 혹독한 비판을 받으면서 작품 생활을 접고 조용히 은거하던 그가 10년만에 친딸인 에치카를 모델로 한 라이프캐스팅 석고상을 만든다. 그러나 작품이 완성되자마자 그는 쓰러지게 되고 결국 며칠만에 세상을 뜨고 만다. 

가와시마의 장례식이 끝난 후, 석고상의 머리가 깨끗하게 절단된 채 발견된다. 도대체 누가 석고상의 머리를 잘라간 것일까. 이것은 모델이 된 조각가의 딸 에치카에 대한 살인 예고인것일까. 가와시마 이사쿠의 동생 아쓰시는 이 문제를 추리작가이자 탐정인 노리즈키 린타로에게 의뢰하게 된다. 수사 초기부터 가와시마 이사쿠의 전시회를 담당한 큐레이터 우사미 쇼진이 사사건건 끼어들어 노리즈키 린타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만 우사미는 의외로 이 사건과 가와시마의 석고상에 대해 통찰력있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석고상의 머리를 잘린 범인이 밝혀질 때 즈음해서 조각가의 딸 에치카가 실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만 남은 사체로 발견된다. 도대체 에치카를 노린 것은 누구인가.

추리 소설에서 목이 잘린 사체라는 것은 일종의 트릭을 의미한다. 사체의 신원을 밝히기 어렵게 만들기 위한 전형적인 수법이랄까. 굳이 사체를 숨기고 싶으면 목을 자르지 않고 사체 자체를 파묻거나 수장시키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목을 잘라 머리만 들고 가게 된다. 잘린 머리는 작기도 하거니와 인간의 사체를 전부 옮기는 것보다 힘이 덜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다른 이유로 머리가 잘리기도 한다. 내가 전에 읽었던 다른 작품에서는 사체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머리를 잘랐던 경우도 있었다. 머리만 놔두고 몸통만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경우 사체의 신원이 밝혀지든 말든 상관없단 태도였달까.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체의 머리는 신원확인을 하기 어렵게 하기 위해 잘리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굉장히 미묘했던 것은 목이 잘린 석고상의 경우 머리가 발견되지 않았고, 에치카의 경우 머리만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에치카의 신원을 숨기고 싶었다면 머리를 숨겨야하는 것이 마땅한데 오히려 머리만이 발견되게끔 만들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그리고 석고상의 머리는 왜 발견되지 않은 것이며, 우사미는 몸통만 남은 석고상을 왜 빼돌린 것일까. 우사미의 경우 그가 큐레이터란 것을 생각해볼 때 몸통만 남은 석고상을 빼돌린 이유가 설명된다. 이 작품이 작가의 유작인만큼 그는 전시회란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니까. 이런 걸 보면 예술하는 사람들이란...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사건 수사의 단서가 될 수도 있는 증거품인데 몰래 빼돌리고 숨기기까지 하다니 말이다.

책을 펴들고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이 책의 미스터리에는 가족문제를 비롯해 상당히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나온 갈등이 포함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와시마의 가족관계는 꽤나 복잡했기 때문이고, 수사가 진행되면서 점차 드러나는 가족의 비밀은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할 정도로 복잡기묘하기 때문이다. 생각이상의 것이 숨어 있었달까. 또한 예술가와 그의 작품이 관련되어 있는 만큼 그쪽에 관한 이야기에도 집중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우사미 쇼진이 내놓은 메두사의 머리에 관한 의견이라든지 하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우사미 쇼진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인물중의 하나인데 처음에는 분명이 노리카즈에게 큰 도움을 주는 인물이지만, 결국 사건보다는 예술이란 것에 더 집착하는 사람이다 보니 사건을 더 꼬이게 하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그외에도 에치카를 스토킹하던 인물인 도모토도 에치카의 실종과 관련한 행적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그에게도 신경을 잔뜩 기울일 수 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우사미를 비롯해 노리카즈를 빼놓은 인물 모두가 수상쩍어지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현직 경찰, 아들은 추리소설가이자 명탐정이라는 노리즈키 부자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다. 아들 노리즈키는 처음에 아버지에게 이 사건에 대해 숨기고 독자적인 수사를 펼치지만 에치카가 실종된 후 목만 남은 사체로 발견됨에 따라 아버지와 공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노리즈키는 수없이 많은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고 수수께끼의 중심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명탐정이란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게(?) 많은 실패를 거듭한다고 할까. 하긴 노리즈키 역시 사람이니 실패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딱 보면 척이다 라는 천재도 아니다 보니 수많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하나하나 검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직접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증거를 찾기도 하는 등 노리즈키의 수사는 매우 인간적이다, 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밖에 없겠지만, 이 작품의 경우 살아있던 사람의 머리보다 잘린 석고상의 머리가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사미 쇼진의 해석도 흥미롭지만, 그 뒤에 감춰진 비밀이 더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는 후반부에서 충격적인 한마디로 정리되는데, 이는 이보다 앞선 노리즈키의 꿈이 복선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다. 노리즈키의 꿈은 예지몽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오, 이게 그런 의미였군, 이란 말이 저절로 나왔달까. 그외에도 무심코 넘기기 쉬운 것들이 모두 복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책의 결말부에서이다. 그렇게 보자면 작품 전체에 섬세하고 촘촘한 복선이 깔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반전도 준비되어 있다. 

오해가 만든 증오에서 나온 일그러진 관계, 그리고 그것이 과거로부터 이어져 되풀이되면서 또다른 참극의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사건의 범인은 이제까지 읽었던 작품들 중에 가장 흉학한 범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인간성이 결여되었다고 보여진다. 속물적이며 즉물적이라고 할까.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는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은 연쇄살인도 아니요, 단 한명의 희생자만 나오는데다가, 진행이 좀 느린 편이라 초반부는 약간 지루한 감이 있지만,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속속들이 밝혀지는 사건의 인과관계에 집중하다 보면 그 치밀한 구성에 감탄하게 되고 인간적인 탐정 노리즈키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논리적으로 증명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에 그 진실을 한꺼번에 떠뜨려내는 부분은 결말이 주는 속시원함과 더불어 사건 속에 감춰진 어둠을 직시하게함으로써 비뚤어진 인간관계와 구제할 수 없는 인간성에 대한 씁쓸한 마음도 함께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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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2-12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너무 무서운데... 스즈야님 리뷰 보니까 마구 읽고 싶어지네요. :)

스즈야 2011-02-12 23:56   좋아요 0 | URL
이 책 강추합니다. 약간 두꺼운 편이지만 금세 몰입해서 읽으실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