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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에 안녕을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7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이 세상에 해피 엔드는 몇 퍼센트의 확률로 존재할까. 한 사람의 인생을 하나의 선으로 생각했을때 그 인생 전체를 두고 해피 엔드냐 아니냐를 결정해야 할까, 아니면 기간을 나눠서 각각의 기간에 따라 해피 엔드냐 아니냐를 결정해야 할까. 꽤나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같은 것이라면 그 결말이 해피 엔드이냐 아니냐를 결정하기는 쉬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한정된 기간의 이야기만을 두고 결말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해피 엔드로 끝이 난 후의 이야기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해피 엔드로 끝나는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는 정말 많다. 혹 가다가 새드 엔드로 끝나는 작품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배드 엔드이나 낫 배드 엔드는 거의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시뮬레이션 게임같은 경우 베스트 엔드, 굿 엔드, 배드 엔드, 워스트 엔드로 나눠지긴 하지만 그런 게임을 할 때조차 사람들은 베스트 엔드, 즉 해피 엔드를 보기를 열망한다.
해피 엔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삶이 고달픈데 그런 허구까지 고달픈 엔드로 끝나면 좋겠냐고. 물론 그 말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그렇게라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나 역시 그런 식으로 곧잘 위로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해피엔드 일색이면 지겹기도 하다. 현실의 인생이란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인데도 소설, 영화, 드라마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결국 그렇고 그런 결말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현실은 그렇지 못한데도 말이다. 우타노 쇼고의 『해피엔드에 안녕을』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는 총 11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첫번째 작품인 <언니>는 부모의 편애를 참지 못한 한 소녀가 부모와 자신의 언니를 살해하게 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도대체 어떤 부당한 대접을 받았기에 고등학교에 다니는 소녀가 자신의 가족을 살해하게 된 것일까. 소녀는 모르고, 소녀의 이모는 아는 비밀은?
<벚꽃지다>는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몸이 불편한데도 바지런히 일하는 아내와 일도 하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그리고 그들의 아들. 제 3자들의 선입견과 편견이 만들어낸 오해와 그 진실은?
<천국의 형에게>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편지 형식으로 씌어진 초단편이다. 형에게 동생은 어떤 편지를 보냈을까?
<지워진 15번>은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과도한 사랑이 불러온 비극을 소재로 한다. 고시엔과 연쇄살인범 뉴스의 관계는?
<죽은 자의 얼굴> 역시 어린 나이에 죽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집착으로 만든 데드 마스크가 불러온 의외의 결말.
<방역>은 조기 교육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자신의 딸과 자신을 동화시켜 생각하는 엄마의 비뚤어진 교육관은 요즘 부모들이 자식 교육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유치원부터 입시를 준비해야 했던 아이가 갑자기 변해버린 이유는 엄마의 단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조기 교육이 불러온 비극은 무엇일까.
<강위를 흐르는 것>은 가족조차 몰랐던 가족의 비밀이랄까. 가족이기 때문에 더 볼 수 없는 것, 그리고 가족이기에 모른체 하고 싶었던 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살인 휴가>는 스토커에 대항하는 한 여성의 고군분투기이다. 여기에 실린 작품 중에 결말에 가장 마음이 안쓰러웠던 작품이긴 하지만, 마지막 한 문장이 그 판도를 뒤집어 놓았다.
<영원한 약속>과 <in the lap of the mother>는 소재는 다르지만, 형식이 비슷하다. 둘 다 신문 기사로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문 기사를 보면서 난 무심코 푸흡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비극인데도 이렇게 웃기다니, 어쩌면 좋지?
<존엄과 죽음>은 한 노숙자의 이야기이다. 그냥 자신을 내버려뒀으면 하는데 자꾸만 참견해 오는 한 여성과 자신을 괴롭히는 중학생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이 단편집에 실린 소설들은 가족 문제에서 시작해서 사회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장르로 보면 미스터리, 호러, 추리 등의 다양한 느낌을 가진 작품들이 실려 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모두 해피 엔드가 아니다. 이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삶을 살아보지 않는 이상, 제 3자의 입장에서 이들이 느끼는 살의를 모두 이해하기란 좀 어려운 면이 있지만, 공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뭐, 그렇다고 여기에 실린 작품들이 죄다 누구를 죽이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연한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엔 의외성이 숨어 있다고 할까.
우리는 - 좀 비겁할지는 몰라도 - 다른 사람이 불행을 겪는 것을 보면 자신에게는 그런 불행이 닥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랄까. 하지만 저자 후기에서처럼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히죽거릴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안도는 하지만 히죽거리는 악취미는 없다. 물론 원수같은 사람에게 그런 일이 닥친다면 '그것 참 고소하다'라고 잠시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지는 않기에 대개는 안도로 끝난다. 하지만 이 단편집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는 독자 각각의 몫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의외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서술 트릭과 반전의 절묘한 조합이 주는 재미는 이 단편집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안티 해피 엔드의 세계, 마음껏 즐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