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의 울림을 느낀 이후 시를 뒤적이다 최영미 시인의 작품들을 거슬러 읽게 되었다. 그러다가 읽게 된 책. '시를 읽는 오후.' 


오래된 어투로 해석이 난해한 영미시를 탁월하게 풀어낸 최영미 시인의 해석이 돋보였다. 최영미 시인의 산문도 좋았다. 역시 그는 범상치 않은 작가임에 틀림없다. 더불어 몰랐던 시인이나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유명 시인들의 보다 구체적인 일생도 알게 되어 좋았다. 특히나 여성 시인들. 내가 그들을 그저 사랑을 노래하거나 가스를 틀어놓고 죽었다는 정도의 피상적 사실만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이면에 그들의 뼈아픈 삶이 있었다. 여성으로서. 역시나. 


미국에서는 요즘 시 자체를 가르치지 않게 되었을 정도로 아무도 시를 안 쓰게 되었다는데 예전에는 참으로 좋은 시들이 많았구나 싶었다. 그러던 차에 미국 서점에서 많이 봤던 시집이 번역되어 나왔길래 읽게 되었다. 


인스타 시인으로 알려진 루피 카우르의 시집. 번역서로 읽었는데 왠지 알라딘에서는 원서로만 찾아진다. 쉬운 현대 영어로 쓰여있어 영어공부에도 좋을 듯한데 나는 전자책 번역서로 읽었다. 미국 서점에서 많이 봤을 때는 그저그런 인도 시인인가 보다 하고 지나쳤었다.ㅠㅠ


아무래도 깊이 면에서는 옛 시인의 그것을 따를 수 없으나 현대 특유의 솔직함과 구체성이 돋보였다. 특히나 여성으로서 느끼는 그 느낌들, 그 외침들은 통하는 바가 있다. 몇 백 년이 흐르고 흘러도 관통하는 공통의 느낌. 


일상에서 벗어나 시대를 관통하며 시를 읽어나가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나름 시로 시간 여행을 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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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오후 - 시인 최영미, 생의 길목에서 만난 마흔네 편의 시
최영미 지음 / 해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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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오후, 당신은 이미 이름답다.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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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하지 못한 말 - 최영미 산문집
최영미 지음 / 해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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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 책이 나온 줄도 몰랐다. 더이상 그가 문단의 왕따가 아니길 바란다. 일인출판사도 내고 활발히 작품활동하며 강연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최영미 시인 작품을 다시 찾아 읽어봐야할 것 같다. 멋지다. 그의 일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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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류의 글들"이라는 말이 있다. 불행은 다양하지만 행복은 뻔하다는 말처럼 '좋은 생각' 은 뻔한 이야기만 담겨 있다고들 한다. 그래서 마니아들도 있지만 아예 쳐다도 안 보는 부류가 있다. 나도 두번째 부류였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뭔가 매우 바쁜데 의미있는 일은 하지 못 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지쳐, 종이책을 들고다닐 힘도 시간도 없어 밀리의 서재에서 전자책을 뒤적이고 있다가 흘러흘러 '좋은 생각' 2021.1월호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 3,4월호 밖에 안 나와서 어쩔 수 없이 3월호로.ㅠ)

 

거기서 벼락같은 시를 봤다. 바로 박노해 시인의 '첫마음을 가졌는가'

 

첫마음을 가졌는가

 

박노해

 

첫인상을 남길 기회는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

첫사랑의 떨림은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

첫마음을 새길 시기는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

 

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좌우되지 않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무력한 일상 속에서도 나 살아있게 하는

그 첫마음을 가졌는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때나

화려한 빛에 휘청거릴 때나

눈물과 실패로 쓰러졌을 때나

나를 다시 서게 하고 나를 다시 살게 하는 힘

 

나의 시작이자 목적지인 첫마음의 빛

일생 동안 나를 이끌어가는 내 안의 별의 지도

떨리는 가슴에 새겨지는 그 첫마음을 가졌는가

 

  

 무력한 일상 속에서도 나 살아있게 하는 그 첫마음을 가졌는가는 부분이 특히나 내 마음을 두드렸다.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첫마음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던 차에 박노해 시인의 '첫마음을 가졌는가'는 읽으면 읽을수록 큰 울림을 주었다. 점점 더 울림이 크게 시를 써내려가는 능력이 돋보였다. '나를 다시 서게 하고 나를 다시 살게 하는 힘' 그 힘의 원천이 '첫마음'이라니 너무나 지당하신 말씀이다. 오뚝이처럼 우리는 일곱번 쓰려져도 여덟번 일어날 수 있는 그 힘을 '첫마음'에서 찾아야 한다.  일신우일신. 우리는 늘 똑같은 하루를 매일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누구나 갖고 있다. 그 비결은 바로 '첫마음'. '떨리는 가슴에 새겨지는 그 첫마음'을 늘 되새겨 볼 일이다.

 

어느 시집에 수록되었던 것인가 궁금해 다시 '좋은 생각'을 뒤져 보아도 그저 '박노해' 세 글자 뿐이다. 하긴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라. 그 이름 석자의 상징만으로 충분하다.

 

시간에 쫓길수록 더 단비같이 느껴지는 것이 '시'인 것 같다. 바쁠수록 돌아가라. 바쁠수록 짧은 시 한 편으로 차 한 잔의 여유를 느끼며 다가오는 이 봄의 순간순간을 붙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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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들을 이렇게 펼쳐 낼 수도 있구나 싶었다. 플롯을 골머리를 써서 짜내지 않고 이렇게 '경진'이 산책하듯이 여행하듯이 나다닐 때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이 '경진'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아서 어쩔 수 없이 듣게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마지막 김혼비의 추천의 글의 서두와 말미에 '산책이 책이라면 은모든의 소설 같을 것'이다라는 언급과 '꿈결 같은 산책'이었다는 언급이 내 마음과 같았다. 덕분에 전주 여행을 다녀온 것 같기도 하다. 엄마와 '경진'의 대화가 특히 '경진'이 엄마에게 하는 말투가 전혀 모녀 지간 같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이 책의 책장을 덮으며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을 떠올렸는데 정세랑 작가가 추천의 글을 써서 신기했다. 김혼비, 정세랑 작가 모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기에 추천이 더 빛났다. 


그러고 보면 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나본데 오랜만에 그런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대체 이 소설에는 몇 명의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로 행복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아무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려 하지 않게 된 이 시대에, 특히나 대면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져 버린 이 시대에 '모두 너와 (너를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어 해'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부럽기도 하고. 나도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거나 누군가에게 붙잡혀 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이런 소망 때문에 요즘 클럽하우스가 인기인가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역시나 대화는 대면으로 하는 것이 제 맛이지 하는 생각으로 돌아온다. 여행도, 대면 대화(대화라는 것이 대면을 포함하는 것인데 어쩌다 우리는 대면 대화라는 말을 써야하는 무서운 세상에 살게 되었단 말인가!) 도 불가능해져 버린 이 시점에 두 가지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보기 드문 책이었다. 참으로 '꿈결 같은 산책'이었다. 굿굿굿. 더 말이 필요없다. 


+ 요즘 일이 벅차서 사적으로 읽는 글의 글자 자체가 들어오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나는야 문자중독자) 은모든 작가 덕분에 잡념없이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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