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어쩌면 파티를 위해 꽃을 사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쟁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일 같은 것이기도 할 테고. 등과 같이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다. 리뷰라서 기대를 안 했는데 내가 읽은 김정선 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궁금해하고 물어 주는 것, 테레즈가 남편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바랐던 유일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그 마음 상태에 대해 물어뭐하겠는가, 제대로 답하지도 못할 거면서. 아니다. 중요한건 답해 주는 것이 아니라 물어 주는 것이다. 남에게 감히 하지 못할 말들을 서로 나누며 정체 모를 그 마음을 함께 헤아려 볼 수 있는 상대가 남편이고 가족일 수 없다는 게 비극의시작 아니었을까. 베르나르는 그 시작이 두려웠으리라. - P101
그나저나 궁금하다. 파리에서 테레즈가 어떻게 살아갔울지, 제발이지 어떤 형태의 결혼이든 모두 거부하고 새로운가족도 만들지 않았길 바랄 뿐이다.생각해 보니 외진 곳에서 장기 투숙하는 사람처럼 산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철들면서부터 줄곧 그랬던 기억이다. 엉뚱한 곳에 불시착한 영혼처럼, 마치 남의 인생을 살 듯 할 때 가장 곤혹스러운 건 매번역할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것이다 싶은 게 없으니모든 게 연기가 돼버리니까. - P102
조예은은 천재였구나. 최근작들을 먼저 읽고 처녀작을 제일 늦게 읽었는데 역시 최초의 작품이 제일 인상깊었다. 바로 ‘오버랩 나이프,나이프‘! 타임 리프 이야기를 잘 안 읽어봐서 그런가 나에게는 정말 천재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로 읽혔다. 천재작가 탄생이다. 여기에 가독성까지 갖추었다. 장르물을 잘 못 읽는 편인데 조예은 작품은 잘 읽힌다. 왤까. 이런 작품집이 만원이라니 제대로 만원의 행복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