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고르겠는가? 양극단의 책 중에서. 하나는 먹을 것의 최대치 플렉스를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단 하나뿐인 지구를 위해 의미있게 우리의 식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당신이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맛집을 가 본 적이 없다.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의 저자 손기은은 곱창구이를 뒤늦게 먹어보았다고 아쉬워했지만 나는 아직도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전혀 억울하지 않다. 그냥 고기맛 아닐까? 그렇다고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있지도 않다. '우리가 날씨다'의 저자 조너선 사프란 포어처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보통 이 두 양극단의 어디 중간쯤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포어는 말한다. '아침 식사로 지구 구하기' 즉 적어도 아침, 점심만이라도 고기를 멀리한 식사를 하자고. '아무튼 비건'의 저자 김한민은 그렇게 하면 어영부영 다시 원래의 식사로 돌아간다고 채식주의를 실천하고자 한다면 단번에 무 자르듯 확 해버려야 한다고 한다. 요조처럼 일년에 하루 날잡아서 곱창을 먹는 사람은 비건이 아니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육식을 일년에 한 번 하는 사람과 매일 하는 사람은 다르지 않을까. 평생 쌓아온 지식습관을 단번에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포어의 제안이 더 와닿는 것일 수 있다. 음식 플렉스도, 철저한 금욕주의같은 채식주의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거리가 있어 보이고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아침, 점심부터 실천하자는 포어의 솔직한 제안이 더 실현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먹을 것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쫒아가는 것이나 먹을 때마다 동물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나 다 아닌 것 같고 그냥 최소한 내 건강을 위해서 소식하고, 최대한 붉은 고기를 적게 먹고, 최대한 환경에 해가 되지 않도록 -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예를 들면 운전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일회용품을 멀리하고 장바구니를 활용하고-행동해 나가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지구를 위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
'지구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지구는 하나뿐이다.' 라는 문구는 많이 들어봤다. 하지만 인간은 실제로 지금 지구가 4개 정도 있는 것처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환경 파괴로 인한 문제는 생각보다 더 심각하고 특유의 악순환을 일으켜 우리의 예상보다 더 빨리 우리의 삶을 와해시키고 있다. 과거에 읽었던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왔던 알약으로 식사를 대체하는 생활이 생각보다 우리 곁에 빨리 온 것인지 모른다. 채식주의자들이 관심을 갖는 베지 버거를 보면 이것이 그 알약의 초기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뭔가 원래 식재료와는 점점 멀어지는 먹거리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유발 하라리는 우리가 홀로코스트를 평가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후대의 평가를 받을 만한 것이 바로 '비인간적 공장형 동물 사육'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에는 눈을 딱 감고 김한민의 말 대로 세 치 혀의 감각만을 쫒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미각은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감각이라 우리는 '추억의 맛'을 잊지 못하고 사무치기도 하기 때문에 단순히 '세 치 혀'라고 치부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산하는 사람, 유통하는 사람, 소비하는 사람이 뚝뚝 끊어진 현 시점에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최소 그것의 기원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