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시리즈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2쇄를 찍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 취미에 몰입하는 이야기라는 것. 이러한 내 편견을 깨 준 책이 바로 '아무튼, 비건'이다. 내가 읽은 이 책은 무려 8쇄였다. (아무튼 시리즈로는 정혜윤의 '아무튼 메모'가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나오던데 그럼 아무튼 메모는 몇 쇄?) 그리고 단순히 몰입하는 즐거움, 덕질이 우리를 살게 한다 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 지구를 위한, 전인류를 위한 이야기 아니 처절한 호소였다. 비거니즘에 대한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가 어떤 심정으로 이 글을 한 자 한 자 써내려갔을 지 상상이 됐다.
앞서 읽은 '우리가 날씨다'는 이렇게 처절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참으로 처절하고 그러면서도 철두철미하다.
'비건이 되는 것은 산업과, 국가와, 영혼 없는 전문가들이 단절시킨 풍부한 관계성을, 어린아이였을 때 누구나 갖고 있던 직관적 연결 고리를, 시민들이 스스로의 깨우침과 힘으로 회복하는 하나으 사회운동이다.' 그래서 책 표지에 '당신도 연결되었나요?'라는 질문이 있다. 유명한 구절처럼 We are all connected. 이므로.
저자는 동물성 식품에 관한 일곱 가지 대표적인 악 혹은 진실을
-잔인함: 눈 뜨고 못 볼 잔인한 동물 학대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오염: 물과 토양이 심각하게 오염된다.
-탄소 배출: 지구 온난화에 크게 기여한다.
-훼손: 숲과 밀림을 무참히 파괴한다.
-리스크: 발암물질 등 위험 요소가 인체에 유입된다.
-병: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양심 마비: 대량 살처분이 일상화되었다...로 언급하며 조목조목 설명해 나간다.
또 '반응들'에서 일반 사람들의 채식주의에 대한 반응을 하나하나 언급하면서 그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채식주의에 대한 모든 편견을 볼 수 있고 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접할 수 있다. 그는 참으로 논리적이었다. 반박할 여지가 없는 주장에도 근거를 들어 반박해 주기도 한다.
더불어 유럽에서는 향후 몇 년 내에 육류세를 책정할 분위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locavore 지역먹거리주의자라는 멋진 단어도 보게 되었다.
우리 나라는 비건에 대한 걸음마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을 모두에게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선물하기에도 좋은 크기이고 이 책은 적어도 소장해야 하는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의 열정과 행동력에 경의를 표한다. 감사하다.
또 하나 공감이 가는 부분은 한국인의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지적. 저자는 어린 시절 이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꽤 긴데 이를 통해 타자의 시선으로 한국인을 바라보는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남을 대하는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하는데 정말 공감이 갔다. 본인에게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이익이 오지 않으면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그 태도, 그 '이해 관계 지향적인' 태도를 나도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나 사람이 사람에게 무례할 수 있는지도 많이 알게 되었다. 서구에서는 매일 마주쳐도 매일 Hi만 해서 친해지기가 정말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무례하거나 대놓고 무시를 하지는 않는데 한국은 오랜만에 오니 너무나 정반대여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아니 아직도 적응 중인 것 같다. 동방예의지국이 더이상 아니라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기도 했었다.
어린 시절 문화 충격에 저자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서 이렇게 큰 마음을 갖고 의미있는 일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멋진 사람, 멋진 행동력을 봤다. 나도 뭔가 해야겠다. 대세는 비건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