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색 시각의 너희들은 - 제14회 야마다 후타로상 수상작
마에카와 호마레 지음, 안소현 옮김 / 뜰book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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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어요.

이 눈물의 의미는... 마음속 깊은 곳의 울림인 것 같아요.

밤으로 물들어가는 남색 하늘, 그 아래 남색 시각의 바다가, 끊임없이 다가왔다가 물러났다가를 되풀이하는 풍경이 머릿속에 펼쳐져 있어요. 모든 게 남색으로 물드는 시간 속에 쓸쓸함을 느꼈던 그 아이들 곁에 당신이 있었기에, 자그마한 날개는 꺾이지 않고 자랄 수 있었네요, 아오바 씨!

《남색 시각의 너희들은》은 마에카와 호마레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며, 2023년 제14회 야마다 후타로상 수상작이라고 하네요.

이 소설은 2010년 10월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는, 열일곱 살인 세 명의 아이들의 이야기로 시작되네요. 다정한 문학 소년 마츠나가 고헤이, 일등성처럼 밝은 아이 스미타 린코, 어디까지라도 날아갈 수 있는 아이 오리츠키 고하네는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네 친구라는 사실 외에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가족 돌봄 청소년'이라는 것.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가족을 보살피거나 어린 형제를 돌보는 18세 미만의 아이들을 일컫는 말인데, 고헤이는 양극성 장애를 앓는 할머니를, 린코는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와 다섯 살 남동생을, 고하네는 조현병을 앓는 어머니를 돌보고 있어요. 돌봄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 어른들을 대신해서 아픈 가족을 돌보고, 집안일까지 하느라 힘들지만 혼자 버텨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어요. 어느 날, 세 아이 곁에 슬며시 다가온 사람이 있었으니, 아사쿠라 아오바 씨예요. 그녀는 오하바 반점에서 새로 일하게 된 직원인데, 마치 날개 없는 천사처럼 곤경에 빠진 고하네를 도와주고, 나쁜 상상으로 괴로워하는 고헤이를 다독여주고, 엄마 때문에 속상해하는 린코를 위로해주면서 중요한 걸 알려줬어요. 가족 말고 나 자신의 인생이 있다는 걸, 본인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걸.


아오바 씨의 등 뒤로 남색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넋을 잃고 볼 정도로 맑은데 엄마만 생각한 탓에 지금에야 깨달았다.

"언젠가는 확실히 손을 놓아야 해."

바닷새가 우는 소리와 파도 소리에 지워질 것처럼 작은 목소리였다. 

나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두 손을 힐끗 바라보고 고개를 들었다.

"저기······ 무슨 의미인가요?"

"어머님 말이야. 언젠가 손을 놓고 누군가에게 맡겨야 해. 고하네에게는 고하네의 인생이 있으니까." (185-186p)


각자 아이들이 가정에서 겪고 있는 상황도 버거운데, 잔인하게도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쓰나미가 덮치고 말았어요. 끔찍한 재해 이후의 삶, 2022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과거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어요. 동일본대지진으로 세상을 떠난 수많은 분들과 남겨진 이들을 생각하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참사들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네요. 슬픔이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가슴 한 켠이 도려내진 듯이 텅 비어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혼자서는 견딜 수 없기에 서로가 서로를 붙잡아줘야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네요.

남색 시각은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과 바다인 동시에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희망이 아닐까 싶어요. 밤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밤바다에는 일렁이는 파도가 속삭이고 있네요. 힘껏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라고, 반짝반짝 빛나는 너의 인생을 살아가라고... 아이들 곁에는 든든하고 믿을 수 있는 어른들이 있어줘야 한다고, 우리는 그런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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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얼굴
이현종 지음 / 모모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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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누구나 남들에겐 숨기고 싶은 것들이 있을 거예요.

다들 멋지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법이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추악한 뭔가를 감추고 있는 거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어쩌면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를 가장 모를 수 있다는 사실, 그게 가장 끔찍한 진실인 것 같아요.

《숨겨진 얼굴》은 이현종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하네요.

주인공 이준혁은 부모님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어요. 범인은 왜 준혁의 부모님을 특정하여 잔인하게 죽인 걸까요. 준혁의 부모님은 아들이 첫 직장을 갖게 될 무렵부터 주변 이웃들을 챙기기 시작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본격적으로 돕기 위해 희망재단을 만들어 평생 선행을 해온 분들이기에, 아들인 준혁의 입장에서는 하늘이 원망스럽고 범인에 대한 분노가 클 수밖에 없는 거죠. 근데 부모님에 관한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선량한 부모님의 모습이 진짜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되고, 혼란에 빠지게 되네요. 부모님의 죽음 자체도 괴롭고 슬픈 일인데, 혹시나 부모님이 살아온 삶이 모두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너무 가혹한 일인 것 같아요. 그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평생 기부와 선행을 해온 부모님에게 거액의 재산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 무엇보다도 희망재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진승일과 그를 돕는 조대식이 썩 좋은 인간이 아니라는 거예요. 살아 생전에 부모님은 준혁에게 희망재단에 대해서는 일절 관심을 가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 말씀을 따랐던 건데, 예기치 못한 살인사건으로 봉인되어 있던 험한 것들이 나와버린 거죠. 충격과 혼란 속에서 준혁에게 접근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놀랍게도 타임머신 기술로 정신을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면서 거액의 돈을 요구하고 있어요. 어떻게 그들은 준혁이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을 줄 알았을까요. 깊이 파고들수록 위험한 이야기, 과연 준혁은 어떠한 진실을 마주하게 될까요.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과 그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이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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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두꺼비가 지키는 전통 사찰 이야기 - 천년을 지켜온 사찰 공간과 건축의 비밀
권오만 지음 / 밥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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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공간이 있어요.

종교는 다르지만 전통 사찰에 가면 특유의 분위기에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신선 두꺼비가 지키는 전통 사찰 이야기》는 우리 전통 사찰의 건축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에요. 목조건물은 천년을 넘게 견딘다고 하는데, 바로 그 천년을 지켜온 사찰이라는 공간을 건축학적으로 풀어내어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현대 건축물과 비교하면 전통 건축물은 규모도 작은 편이고 소박해보이는데,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네요. 이 책에서는 전통 사찰의 건축 원리와 그 안에 숨겨진 비밀들이 나와 있어서, 직접 구석구석 찾아보고 싶어졌어요. 이제껏 겉핥기식으로 둘러보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 책 덕분에 건축 예술의 세계에 눈을 뜬 느낌이네요. 월정사 천왕문 측면에 그려진 신선과 두꺼비 벽화는 그림 속 장면이 신기해요. 맨발의 더벅머리 선인이 한 발을 치켜든 채 세 발 달린 두꺼비를 희롱하고 있고, 그 옆에는 또 다른 선인이 두 손을 소매 안에 넣은 채 지켜보고 있어요. 이는 신선도의 한 장면인 유해가 세 발 두꺼비와 장난치는 모습을 표현한 유해희섬의 상황으로, 신선이 된 유해에게는 세상 어디든 데려다줄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갖춘 세 발 달린 두꺼비가 있는데, 이 녀석이 자꾸 물속으로 숨어버려서도 돈을 좋아하는 두꺼비를 잡기 위해 끈에 동전을 묶어 물속에서 건져냈다고 하네요. 사찰 출입문에 도가적 상징인 두꺼비와 신선 유해, 여덟 신선 중 한 명인 이철괴 등을 그려놓은 것은 불교가 도교적 상징을 수용하는 종교적 포용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한다고 하네요. 도교는 우리나라에서 유교나 불교처럼 교단을 형성하거나 큰 세력을 이루진 않았지만 문화와 잠재의식에 깊은 영향을 미쳤고, 무속과 민속, 유교와 불교에도 도교적 요소가 스며들어 있는데 민간 회화에서 심우도가 불교와 도교 사상이 융합된 작품이라고 하네요. 본성을 찾는 과정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심우도는 수행단계를 10단계로 하고 있어 십우도라고도 한대요. 곽암의 십우도에 관한 책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이 마음에 깊이 남더라고요. 전남 화엄사 구층암 모과나무 자연목 기둥 사진을 보면 못생기게 갈라지고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쓰고 있는데, 자연의 생김 그대로를 활용한다는 점이 참으로 놀라워요. 잘려진 나무일지언정 기둥의 용도로써 비틀어지고 구부러진 본연의 모습을 인정해주는 느낌이랄까요. 판에 박힌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질릴 수 있지만 개성 있는 자연스러움은 세월과 함께 멋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오래된 전통 사찰들이 자세히 보면 볼수록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다 이유가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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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밖의 이름들 - 법 테두리 바깥의 정의를 찾아서
서혜진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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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착각, 그걸 깨닫게 되면서 많이 괴로웠네요.

《법정 밖의 이름들》은 서혜진 변호사가 피해자 변호사로 겪었던 모든 것들을 담아낸 책이에요

저자는 15년 가까이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주로 사회적 발언권이 약한 젠더폭력 피해자들, 아동학대 사건 등의 범죄 피해자를 주로 변론해왔다고 해요. 어쩌다 피해자를 위한 변호사가 되었느냐는 질문에 저자는 그저 나의 일이었노라고 이야기하네요. 담담하게, 그러나 내면은 그 누구보다 들끓는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했던 이야기들이 여기에 실려 있어요. 피해자 보호를 위해 일부 사실 관계를 생략하거나 변경했다고 하는데 워낙 사건들이 참혹해서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났네요. 사회적 약자라서 목소리마저 작을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 법정 안팎에서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지, 감히 짐작할 수 없지만 누군가는 그 목소리에 힘을 더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고맙고 다행이라고 느꼈어요. 저자는 피해자들이 말하지 못한 감정과 억울한 상황들을 변론해주면서 그들의 존엄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네요. 수많은 사례들 중에서 변호사로서 처음 받아본 무죄 판결의 의뢰인이자 피고인의 경우는 뒷목을 잡게 하네요. 기껏 애써서 얻어낸 무죄인데 고마워하기는커녕 당연한듯 여기더니, 나중엔 연락두절에 수임료까지 떼먹는 작자라니 믿을 놈 하나 없네요. 사기가 분명하다는 피해자와 전혀 그렇지 않다는 피고인의 싸움에서는 사람들이 법에 막연히 기대하는 대단한 정의나 엄청난 실체적 진실이 작용한다는 느낌이 거의 없다는 것, 더군다나 사기범을 변호해 첫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기쁨도 잠시, 결국 그 사람의 또 다른 사기 피해자가 된 변호사가 되었으니, 이 일을 계기로 억울함을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보다 억울함을 드러낼 수조차 없는 사람의 편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자라게 되었고, 그 마음을 따라 지금까지 변호사 일을 계속해 오고 있다고 하니, 속은 쓰리지만 값진 교훈을 얻었네요.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대하는 마음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법정 안팎에서 저자가 해온 일들이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었다니 감동이네요.


"때때로 어떤 판결문은 피해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된다.

세상으로 나가는 작은 문이 되기도 한다.

나는 법에도 마음이 있듯 판결문에도 마음이 있다고 믿는다.

마음이 있는 법률은 피해자를 혼자 두지 않는다." (2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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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희 최광희입니다
최광희 지음 / CRETA(크레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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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생을 살아오며 나는 물건을 곧잘 잃어버리긴 했지만, 잘 버리진 못했다.

뭐든 바리바리 쌓아두면 언젠가 쓸모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순례길 일정을 앞두고

내가 부지불식간에 버렸던 것들이 꽤나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 말해 인연들.

인연들 가운데 짐이 되는 인연도 있다. 그런 건 버려야 한다.

... 어떤 인연은 배낭이 아닌 몸에 지녀야 한다. 잃어버리면 내가,

내 정체성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인연이니까." (98p)


책을 고를 때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해요.

무심코 손에 들어온 것 같아도 곰곰이 돌아보면 다 나름의 끌림이 있더라고요.

영화평론가 최광희의 첫 에세이, 《미치광희 최광희입니다》가 내 손에 온 것은, 그러니까 우연이 아니란 거예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작가를 처음 알게 됐을 때는, 솔직히 비호감이었어요. 뭐든 삐딱하게 보는 것이 별로 좋아 보이진 않았는데, '최광희가 글은 잘 쓴다더라'는 말을 듣고는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과연 강렬한 첫인상을 뒤엎을 정도의 글빨이 있는가. 실제로 말보다 글이 더 수려한 경우가 있으니 말이에요. 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꽤나 솔직하고 반듯한 사람이라는 것, 좋은 생각이 글을 통해 엿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확실히 글로 만나니까 저자의 생각에 집중할 수 있어서 이전의 편견들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저자는 자신이 영화를 보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착하게 살고 싶어서요. 잘 살려고요. 그러기 위해 지구상의 숱한 고통과 그로 인한 감정을 더 많이 수집하려고요." (119p)

타인의 고통, 그로 인한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공감하면서 못되게 살기는 힘든 법이죠.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착하게' 살고 싶고,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이 참으로 멋진 것 같아요. 나와는 영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여러 모로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많아서 신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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