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 1
R. F. 쿠앙 지음, 이재경 옮김 / 문학사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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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단어에는 수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요.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조차도 각자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르더라고요. 그 미묘한 차이들이 오해와 다툼을 낳는 것 같아요.

어쩌면 인간이 완벽하게 소통할 수 없는 원인 중 하나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차라리 말하지 못했다면 눈빛으로 손짓으로, 온몸으로 진심을 전하려고 애썼을 테니 말이에요. 내뱉는 말들은 거짓일 수 있어도, 행동은 가짜로 꾸며내기가 어렵잖아요. 물론 행동에도 숨은 의도가 있을 수 있으나 천천히 지켜보면서 기다리면 되니까 성급하게 판단해서 오해할 일은 없지 않을까요. 소설의 제목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쏟아졌네요. 구약 성서 창세기편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를 보면, 원래 세상은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낱말들을 쓰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이름을 날리고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려고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우기 시작하자, 주님께서 온 땅의 말을 뒤섞어 놓으셨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버리셨다는 거예요. 그곳의 이름이 바벨이에요. 여기서 '이름을 날리자'는 말은 신보다 더 강력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고, '흩어지지 않게 하자'는 건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 강제와 폭압으로 힘을 구축하자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요. 하늘까지 닿는 탑이란 신에게 가까이 갈수록 강하고 위대한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권력을 차지한 인간이 신이 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볼 수 있어요. 마치 강대국의 제국주의처럼 폭력과 압제에 의한 일치가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가져오는가를 경고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바로 그 지점을 주목하여 놀랍고도 흥미로운 소설로 탄생시킨 장본인이 R.F. 쿠앙 작가님이네요.

《바벨》은 R.F. 쿠앙의 대표작이자 세계 3대 SF 문학상 중 네뷸러상과 로커스상을 석권한 대체역사판타지 장편소설이에요. 2022년 출간된 이 작품의 원제는 《Babel : Or the Necessity of Violence , 바벨 : 또는 폭력의 필연성》 이며, 2023년 휴고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작이었으나 행사가 개최된 중국측에서 정치적 이유를 내세워 후보 명단에 제외시켜서 더욱 세계적 이슈가 된 문제작이네요. 가상의 이야기일 뿐인데도 이토록 민감하게 대응했다는 것은, '도둑이 제 발 저린다'라는 속담을 떠올리게 하네요. 소설은 19세기 초반, 세계 최강대국이 된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를 무대로, 마법의 은막대라는 판타지 설정으로 실제 역사와 가상의 세계를 절묘하게 조합하여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첫 장면부터 강렬하네요. "리처드 러벌 교수가 광둥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 수첩에 적어둔 빛바랜 주소지에 도착했을 때, 그 집에 살아 있는 사람은 그 소년이 유일했다." (17p)라면서 주요 인물인 러벌 교수와 소년의 첫 만남을 보여주고 있어요. 역병이 덮친 마을에서 겨우 숨이 붙어있는 소년의 눈앞에 나타난 러벌 교수는, 마치 해리 포터 속 마법사처럼 얇은 은막대를 꺼내 주문 같은 말로 소년을 깨웠고, 하코트호에 태워서 영국으로 데려갔어요. 왜 자신을 선택했느냐는 소년의 질문에 교수는 은막대를 가리키며, "넌 저것을 할 수 있으니까." (29p)라고 답해주네요. 리처드 러벌 교수는 소년에게 스스로 이름을 짓도록 했고, 소년은 어릴 적 영어 동요집에서 골랐던 로빈이라는 이름과 <걸리버 여행기>를 떠올리며 스위프트라는 성을 정했네요. "로빈 스위프트. 넌 실버워크의 비밀을 아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학자가 될 거야. 그게 내가 너를 여기로 데려온 이유지." (45p)

낯선 나라의 이방인, 살아남기 위해 현지 언어를 배워야 했던 걸리버처럼 로빈 스위프트는 러벌 교수가 이끄는 대로 옥스퍼드대학교 왕립번역원(바벨)에 입학하여 언어학을 공부하며 실버워크의 비밀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네요. 왠지 작은 동양 소년 로빈의 모습에서 중국계 미국 이민자인 R.F. 쿠앙 작가가 겹쳐 보였네요. 중국 광저우에서 태어나 네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대학에서 중국사를 전공한 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과 옥스퍼드대학에서 중국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예일대학에서 동아시아 어문학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저자는 논문보다 더 강력한 소설을 통해 바벨이라는 폭력의 실체를 밝혀냈네요. 정의는 때로 더디고, 진실은 잠시 가려질 수 있으나 결국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만 해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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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운동 해부학 - 재활운동 지도자를 위한 해부학 입문서
송기연.장미리.백기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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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게 내 몸을 이해하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재활운동 해부학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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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운동 해부학 - 재활운동 지도자를 위한 해부학 입문서
송기연.장미리.백기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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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오랜만에 운동을 시작했다가 부상을 당하거나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있어요.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거죠. 아프고 후회하기 전에 미리 알아두면 유용한 책을 발견했네요.

《재활운동 해부학》은 재활운동 지도자를 위한 해부학 입문서예요.

이 책은 재활운동에 입문하는 모든 운동 전문가, 물리치료사, 대학 전공생들뿐 아니라 해부학적 지식과 이론을 근거로 체계적인 운동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전문 실용서네요. 의학지식을 기반으로 우리 몸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를 위한 해부학 입문서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증이나 기능저하와 같은 증상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물리치료와 재활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몸에 대해 집중하게 되잖아요.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고, 예방이 가장 중요한데 늘 아프고 나서야 신경쓰게 되더라고요.

이 책은 기초 의학 용어와 기초 해부학으로 시작해 관절 질환, 골근격계통의 기능 해부학 및 운동학을 알려주고, 재활운동에서 다루는 병적 움직임과 보상 패턴, 자세 평가 및 체형 분석, 자세 평가 실습까지 임상에서 널리 활용하는 공용 검사 방법을 중심으로 해부학 그림, 사진과 함께 자세히 나와 있어요. 다소 전문적인 내용이라서 어려울 수 있지만 움직임의 해석과 기능을 이해할 수 있어서 매우 유용하네요. 특히 각종 검사 방법들은 책에 나오는 설명대로 자가 검사를 해볼 수 있고, 판정 기준이 나와 있어서 자세 평가, 움직임 분석, 운동 처방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들을 익힐 수 있어요. 해부학을 기초로 한 운동과학을 통해 자세 유지와 균형 조절, 근육 협응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요. 재활운동 전문가들에겐 필수 교재, 일반인들에겐 자신의 몸을 이해하는 첫걸음 책이네요. 누구든지 재활운동 해부학 지식을 배우면 올바른 방식의 운동으로 부상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킬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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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워
폴라 호킨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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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된 예술가의 남겨진 작품 속 비밀,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내는가, 정말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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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워
폴라 호킨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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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지금은 고인이 된 위대한 은둔가 예술가,

베일에 싸여 있던 버네사 채프먼의 작품에 인간의 유골이 쓰인 게 밝혀져도 

언론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바람둥이로 악명 높았던 남편이 거의 20년 전에 실종됐는데?

그 시신이 여태 발견되지 않았는데?" (23p)


어쩜 똑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걸까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그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거예요.

자신을 법의인류학자라고 밝힌 관람객이 작품에 사용된 뼈가 사슴의 흉곽이 아니라 인간의 유골이라고 단정하는 메일을 보내면서, 전시 중이던 미술관이 발칵 뒤집어졌는데, 작품의 소유권을 가진 페어번 하우스의 누군가는 언론에서 떠들어댈 가십으로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네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사실에 대해 너무나 지나친 반응, 위험한 억측, 섣부른 판단을 하고 있어요. 애초에 그 메일이 아니었다면... 베일에 싸여 있던 예술가의 사생활, 더군다나 이미 고인이 된 예술가의 과거를 들추는 일은 없었겠지요.

《블루 아워》는 폴라 호킨스 작가의 심리스릴러 장편소설이에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예술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저자는 첫 장에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히포크라테스의 명언과 함께 영국 시인 딜런 토머스의 시를 들려주고 있어요. "그러니 죽음이 결코 지배하지 못하리라. / 죽어서 벌거숭이가 된 이들 모두 / 바람과 서쪽 달에 사는 이와 하나되리라. / 뼈가 말끔히 뜯기고 그 말끔한 뼈마저 사라지면, 팔꿈치와 발에 별들이 붙으리라. / 하여 미칠지라도 모두 온전할 것이며, / 바다에 가라앉더라도 다시 솟구치고, / 연인을 잃어도 사랑은 잃지 않으리라. / 그러니 죽음이 결코 지배하지 못하리라." (7p) 죽음이 결코 지배하지 못하는 그것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소설 속 논란이 된 버네사 채프먼의 작품 <분할 Ⅱ>은 채프먼이 사금파리와 파운드 오브젝트를 한데 결합해 만든 일곱 점의 작품 중 하나로, 도자기와 나무와 뼈를 채프먼이 직접 제작한 유리 케이스 안에 필라멘트로 동그랗게 매달려 있는데, 도자기와 뼈는 일란성쌍둥이 같아요. 가운데에 금이 가고 옻칠과 금박으로 한데 접합한, 새하얗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방추형의 조소 작품이라고 설명되어 있어요. 처음엔 버네사 채프먼의 일기를 읽으면서 그녀에 대해 탐색했고, 남편 줄리언의 실종이 그녀와 관련된 것은 아닌가를 의심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아, 이미 처음부터 다 보여줬다는 것을 말이에요.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것, 안타깝게도 바로 앞에 뭐가 있는지 보지 못할 때가 있어요. 블루 아워 Blue Hour 는 일출 직전이나 일몰 이후에 하늘이 어슴푸레한 푸른색으로 변하는 짧은 시간을 뜻한대요. 세상이 고요하게 물드는 시간, 모든 것이 잠들고 아무것도 없는 무의 세계와 같은 순간에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것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어요. 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가리워졌을 뿐이라고, 그러니 진짜 중요한 것이 뭔가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그걸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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