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오류 사전
조병일.이종완.남수진 지음 / 연암서가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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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서 배운 대략적인 세계사를 제외한 변두리 세계사 지식 중에는 간혹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다. 이 책은 세계사에 숨겨진 오류들을 찾아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역사 흐름에 따라 시대순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ㄱ,ㄴ,ㄷ 순으로 나열된 사전 형식으로 되어 있다. 세계사의 전반적인 맥락보다는 흥미로운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재발견을 할 수 있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마치 세계사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소재만을 골라 놓은 것 같다.

 

# 역사 속 위인에게 이런 면이 있었다니......

간디는 비폭력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위대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비종교주의, 종파 간 화합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아들이 이슬람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반대했다. 평화와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카스트 제도를 반대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민족을 억압하는 영국에 대항하여 영국인의 의학 치료를 거부한다는 원칙 때문에 아내가 죽었지만 자신이 학질에 걸렸을 때는 과감히 치료를 받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왠지 정치인들의 실체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갈릴레이의 유명한 재판 일화에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은 후대에 꾸며낸 이야기라고 한다. 그는 망원경을 최초로 발명하지도 않았고 피사의 사탑에서 낙하 실험을 한 적도 없다. 아마도 천재적인 물리학자를 더욱 빛낼 이야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과학적 소신보다는 현실의 안위를 선택했던 현실적인 과학자였다.

뉴턴에 관한 진실은 다소 충격이다. 그는 실험을 할 때 자신의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숫자를 조작했다고 한다. 너무나 정교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가 그의 사후 300여 년이 지난 후에 밝혀졌다. 또한 다른 학문적 경쟁자를 매장시키려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기도 했다. 뉴턴의 만유 인력 이론도 조작되었다고 하니 너무도 실망스럽다. 요즘 세계사 교과서에는 뉴턴이 어떻게 소개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아랍의 영웅이 아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영국인 장교 로렌스는 아랍인들의 독립을 위해 애쓴 영웅으로 묘사되지만 실제 그는 아랍 반란에 참여한 적도 없었다고 한다. 아랍인들은 전혀 모르는 로렌스의 존재는 어떻게 탄생된 것일까?  그의 입과 저서로만 알려진 활약상이 영화를 통해 더욱 미화되어 허구가 진실로 탈바꿈한 것이었다.

루소는 자신의 저서 <에밀>을 통해 교육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자식들을 버린 비정한 아버지였다. 이론과 실제가 명백하게 분리된 지식인의 이중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인물이다.

링컨은 노예 해방론자가 아니었다?  역시 정치인은 예나지금이나 믿을 게 못된다는 진리를 역사 속에서 배우게 된다. 그가 노예폐지를 주장한 것은 남북전쟁에서 유럽 열강을 배척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실제로는 노예 반란을 막기 위해 차별적으로 노예 해방을 했다. 결과적으로 링컨은 노예 해방론이 우세한 시대에 대통령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위대한 공로를 거저 얻은 것이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세계사 사상 최고의 사기극이다?  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그는 중국을 간 적도 없으면서 17년 간 중국 생활을 했던 루스티첼로에게 여행기를 쓰게 하여 자신의 동방견문록을 완성했다고 본다.  역사적 문헌일지라도 그 내용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니 점점 역사의 오류 속에 빠져드는 기분이다.

전구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에디슨이다?  이미 에디슨 이전에 전구를 발명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실용화에 성공한 것이 에디슨이었기 때문에 최초의 전구 발명자로 알려진 것이다. 묵묵히 발명에 전념했을 것 같은 에디슨이 실제로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가로채는데 탁월했다니 실망스럽다. 

# 역사적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니......

프랑스 혁명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단두대 '기요틴'을 발명한 기요탱 박사 자신이 결국 단두대에서 처형됐다는 얘기를 들어 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깨에 난 종기 때문에 사망했다고 한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7월 4일이 아니다? 실제는 7월 2일이었는데 제퍼슨의 독립선언이 7월 4일 발표되었기 때문에 독립기념일로 굳어진 것이란다. 채택하고 선언하고 널리 알려지기까지 시간 차가 있었던 것이다.

아문젠의 탐험지역은 남극이 아니라 북극이었다?  원래는 북극이 목표지였는데 '세계 최초'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남극으로 수정했던 것이다. 탐험가들이 순수한 모험 정신으로 도전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우리의 착각이었다.

이오지마 전투의 성조기 게양은 자작 연출극이었다?  55년만에 이오지마 사진의 진실이 밝혀졌다. 당시 국민적 영웅을 만들어내기 위한 조작이었다고 한다. 국민의 마음을 조롱한 사기였다.

다빈치의 자전거 스케치는 조작된 것이다?  다빈치 시대에는 자전거와 같은 발명품이 없었다고 한다. 다빈치의 그림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두 개의 원만 그려져 있었는데 누군가 나중에 페달과 바퀴살 등을 추가로 그린 것이다. 이럴 수가, 역사의 조작이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이 아니다?  헌법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은 워싱턴이지만 헌법 제정 전에 초대 대통령은 존 헨슨이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가 태어난 날이 아니다?  12월 25일로 정해진 건 역사적으로 공론에 의한 것이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의 탄생 날짜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12월 25일로 정한 최초의 인물은 3세기 초 로마의 신학자 히폴리투스라고 한다. 어찌됐건 역사적 진실이 무엇이든 크리스마스 날짜가 바뀔 일은 없을 것이다.

 

역사는 흐른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오류와 진실을 올바르게 가려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흥미로운 내용을 통해 역사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질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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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체들의 연애
어맨더 필리파치 지음, 이주연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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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기 보다는 기가 막힌 소설이다. 하긴 살아있지만 시체와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이 등장하니 절대 평범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삶의 열정, 욕망, 즐거움이 없어 투덜대는 그들이 내게는 철 없는 애송이로만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하기에는 안쓰러운 면도 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엉망진창 문제 투성이다.  미국 맨해튼, 잘 나가는 싱글들의 인생이 갑자기 꾜여 버린다. 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스토커'다. 

갤러리 대표인 린은 멋진 커리어우먼이지만 욕망상실증으로 괴로워한다. 매사 무기력해지고 의욕이 없으니 살 맛이 안 난다.  어느 날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스토킹한다는 걸 알게 된다.  스토커는 대머리에 땅딸보 남자 앨런이다.  그도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회계사인데 린에게 반해서 따라다니다 보니 스토커 중독이 생긴 것이다. 린은 스토커 앨런을 보면서 자신도 욕망을 되살리기 위해 스토커에 도전한다. 그녀에게 딱 걸린 남자는 프랑스인이며 검사인 롤랑이다. 앨런은 자신이 사랑하는 그녀가 다른 남자를 스토킹하는 것을 보고 롤랑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스토커의 스토커의 스토커. 황당하지만 이들 셋은 묘한 삼각 관계로 연결된다.  주말을 호텔에서 보내게 된 롤랑과 린은 지배인 맥스 덕분에 서로에게 끌린다. 롤랑과 린이 만나게 되면서 외톨이가 된 앨런은 아픔을 극복하고, 여자친구 제시카를 만나 삶의 활력을 찾는다. 하지만  롤랑과 린은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건방지고 못된 롤랑은 별 볼 일 없는 앨런의 행복을 시기하고, 린은 안정을 되찾은 앨런에게 끌린다.  그 때부터 린은 앨런을 스토킹하고, 롤랑은 린을 스토킹한다. 이들의 스토킹 행각은 너무나 뻔뻔스럽다. 귀찮을 정도로 어디든 대놓고 쫓아다니면서 앨런을 괴롭힌다. 스토커였던 앨런이 도리어 스토킹 당하면서 일상이 힘들어진다. 어쩔 수 없이 롤랑의 부탁대로 앨런은 주말을 호텔에서 린과 보내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앨런에게 린은 더 이상 매력적인 여자가 아니다. 그저 자신을 귀찮게 하는 스토커일 뿐이다. 사립탐정이자 섹스 중독자인 제시카는 앨런을 따라 호텔에 왔다가 지배인 맥스와 관계를 맺는다.

이쯤 되면 정말 한심하단 생각 뿐이다. 섹스 중독, 스토커 중독, 강박증까지 미친 게 확실하다. 재미있는 건 이들 셋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홈리스  레이다. 그는 전직 정신과 의사였지만 과도한 호기심중독으로 자격을 박탈당한 처지다. 어처구니 없게도 이 책 속에서는 정상적인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레이까지 본격적으로 이들 세 명의 관계에 끼어들면서 점점 복잡해진다.  거절당해야 끌리는 린, 뭔가 잃어버려야만 속이 편한 롤랑, 착하다 못해 답답한 소심남 앨런,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는 모든 사람에게 집착하는 레이는 못난이 인형처럼 붙어다니면서 엉뚱한 짓을 벌인다.

왜 이들은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안달복달 삶을 망치고 있는 것일까?  남들 보기엔 모든 조건을 갖췄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기에 스토커가 된 것이다. 누군가의 삶을 훔쳐보고 흉내내면서 행복을 얻고 싶은 것이다. 왠지 나를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것 같아서, 그 사람의 행복을 뺏고 싶은 사악함이 스토킹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스토커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사랑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살아있는 시체들의 연애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현대인들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스토커들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완벽한 연애, 완벽한 사랑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자체가 불완전한데 어떻게 완벽을 바랄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의 삶은 완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들이 정신 나간 스토커를 그만두고 소울메이트를 만났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가. 비록 완벽한 소울메이트의 환상은 깨졌지만 말이다.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더 이상 스토커 짓은 그만 둬라. 스토커가 되려거든 자기 자신의 스토커가 되어라.

사랑도 행복도 다 내 마음 속에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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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은 언제 시작될까?
에이브러햄 J. 트워스키 지음, 최한림 옮김, 찰스 M.슐츠 그림 / 미래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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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브라운과 스누피는 어린 시절에 좋아하던 캐릭터다. 솔직히 만화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들이 주는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귀여운 소년과 개를 싫어할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그냥 좋은 친구들처럼.

"좋은 일은 언제 시작될까?"라는 제목의 노란 책을 보는 순간, 첫 눈에 반했다.  마치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가 나를 위해 오랜만에 찾아 온 것 같아 반가웠다.  꽁꽁 얼어붙은 눈을 녹이는 따사로운 봄볕처럼 내게도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유쾌함을 줬다.

이 책은 <피너츠> 만화와 함께 매우 유익한 인생 조언을 들려준다.  저자는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박사라고 한다. 실제 임상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피너츠> 만화의 효과를 톡톡히 본 모양이다.  의사가 하는 조언은 강압적인 느낌을 줄 수 있지만  만화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면서 나름의 교훈을 얻게 되는 모양이다.  저자는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인들에게도 <피너츠>가 지닌 참된 내면의 가치를 보여주고자 이 책을 쓴 것이다.  피너츠라는 제목 때문에 그저 심심풀이 땅콩 같은 만화로 여겼다면 이 책을 통해 슈퍼울트라 땅콩의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평범함 속에 진리가 있는 것 같다. 그 동안 짧은 네 칸의 만화가 주는 웃음만 알았지,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을 놓쳤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어쩌면 내가 찰리 브라운을 만날 당시에는 깊은 뜻을 이해할 정도의 인생 고민이 없었나 보다.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많은 걸 공감하게 된다.  정신과 상담을 받을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지만 혼자 해결하기에는 답답한 상황과 피너츠의 내용이 어찌나 닮아있는지.

만화 속에 등장하는 친구들을 보면 조금 과장될 수도 있지만 현실 속에 존재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착하긴 하지만 실수 투성이 찰리 브라운, 주인을 닮아 뭔가 엉성하지만 사랑스러운 개 스누피, 제대로 날지 못하는 새 우드스톡, 오빠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여동생 샐리 브라운, 똑똑하지만 엉뚱하고 소심한 마시, 왈가닥 페퍼민트 패티, 잘난척 공주병 루시 반 펠트, 루시의 조숙한 남동생 라이너스 반 펠트, 현실적인 슈로더, 그 밖에 찰리의 친구인 바이올릿, 프랭클린, 유드라를 보면서 공감하게 된다.  누가 자신을 좋아한다거나 자신을 칭찬하는 일이 어색한 찰리 브라운은 실패하고 좌절하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러니 좋은 일을 기대하기에는 늘 나쁜 일 투성인 것 같다. 과연 나쁜 일은 찰리 브라운에게만 생기는 걸까?  그럴리가. 누구나 야구를 하려고 정한 날에 비가 올 수도 있고 짝사랑 때문에 가슴앓이를 할 수도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성공에 대한 두려움이다. 실패에 익숙해져서 실패 자체가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되면 안 된다.  찰리 브라운을 보면서 공감만 할 것이 아니라 찰리 브라운을 닮은 자신을 격려하고 도전할 때다.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좋은 일은 언제 시작될까?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다. 긍정은 행복을 위한 열쇠다. 가다가 넘어지면 그 덕분에 쉬어가서 좋고, 천천히 걸으면 그 덕분에 주변을 둘러볼 수 있어 좋은 것이다. 

결국 뻔한 조언을 하는 거라고?  아니다, 내겐 특별하다.

우리 인생에서 힘든 순간은 있을 지언정 나쁜 순간은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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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의 여왕
김윤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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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의 여왕>이란 제목만 보면 마치 재테크 달인이 등장할 것 같다.  그 때문에 이 책이 끌릴 수도 있을 것이다. 뭐, 나 역시 아니라고는 말 못한다.  하지만 이 책은 재테크 성공담이 아니었다.  제목에서 말하는 내 집이란 대한민국 서민들이 열심히 땀흘려 모은 돈으로 마련하고 싶은 나만의 보금자리이며 여왕은 그것을 돕는 주인공을 뜻한다. 부동산으로 수익을 챙기는 강남아줌마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 송수빈이 딸 지니와 태국 꼬창에 머무는 장면이다. 태국에 여행 갈 정도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나보다 짐작하겠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사람만 믿고 보증을 서 줬다가 유일한 재산인 집 한 채가 넘어갈 상황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까지 실종 상태, 딸 애는 충격으로 실어증까지 생겼으니 절망 상태다. 그녀가 태국으로 간 것은 일종의 도피다. 막연한 희망을 꿈꿨는지도 모른다. 결혼 전 남편과 함께 손수 지었던 집이 있는 그 곳, 엉성해보이지만 사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그 집을 찾아간 것이다.  소울하우스라는 말은 처음 들었지만 어떤 의미인지는 알 것 같다. 아프고 속상하면 달려가 위안을 받는 엄마의 품처럼 마음으로 받아주는 공간이 아닐까.

몇 십 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 집이란 의미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보금자리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부자들에게는 재테크 수단이며 상대의 경제적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어버린 듯 하다. 아파트 광고에서도 당당하게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의 인격을 말해준다'고 떠들어대면서 위화감을 조성한다. 돈이 인격이며 능력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경제적으로 쪼들리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어깨는 축축 처질 수 밖에 없다. 더 마음이 아픈 건 아이들도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느냐가 친구의 조건이라는 씁쓸한 얘기를 들을 때다. 돈 때문에 울고 웃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 어디 이것 뿐이겠는가.

절망 끝에 선 수빈에게 정 사장은 특별한 제안을 한다. 그녀의 집을 찾아주는 대가로  정 사장이 시키는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작가인 줄 아니까 자서전 대필이나 시킬 줄 알았는데 그가 맡긴 임무는 의외다. 부동산, 경매 공부를 단시일에 마스터하도록 시키더니 상상력을 발휘하여 사람들이 원하는 집을 찾아주라고 한다. 집을 마련하는데 돈이 아닌 상상력이 필요하다니, 참 희한한 노릇이다.  돈 많은 부자 할아버지가 직접 나서면 될 일을 굳이 수빈에게 시킨 이유는 뭘까?

세상에는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했다. 정 사장 자신이 점점 다가오는 죽음을 알고 있었고 뭔가 마지막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서민의 소박한 꿈인 내 집 마련을 도와주기 위해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그녀가 필요했던 거다. 냉철한 면을 지닌 정 사장이 마지막에 해낸 일은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내 집 마련의 여왕>을 통해 대한민국의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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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 근대 이후 서민들의 살림집 이야기
노익상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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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집에 이런 낯선 이름이 있었다는 걸 이 책을 보며 알게 됐다. 외주물집, 막살이집, 도끼집, 외딴집, 독가촌, 차부집, 여인숙, 미관주택, 시민아파트, 문화주택... 가난한 서민들의 삶은 그들이 거주하는 공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겨우 몇 십 년 전의 모습이지만 지금은 너무도 까마득한 옛날 같다. 근대 이후 서민들의 살림집, 거주 공간을 통해 그 동안 잊고 있던 과거의 역사를 들취 보는 느낌이다. 집필 기간이 길다고 해서 더 훌륭한 책일 수는 없겠지만 10년에 걸친 작업은 감탄할 만하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노익상 님의 취재 여정은 삶의 공간과 사람들이라는 소재를 차분하게 담아낸다. 뭔가 특별한 사연이나 엄청난 이야기 없이도 사람을 끄는 매력이 충분하다.

역사 속에서 늘 주변인이었던 이들, 소외된 가난한 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동네 어귀 혹은 길가에 마당도 없이 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보잘 것 없는 집이 외주물집이다. 편안한 휴식의 공간, 안식처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노변가옥은 뚜렷한 계층 간의 차별을 보여준다. 1970년대 중반 새마을 사업으로 개량되면서 부득이하게 안이 보이지 않도록 하려고 판 장벽을 둘렀던 '달방'은 절박한 현실의 상징물 같다.

산골 깊숙히 자리잡은 외딴집은 마을을 떠나 분가한 형태다. 강제적인 이주인 경우도 있고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마을과 떨어진 외딴집은 대대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근근히 삶을 유지할 뿐이다. 외딴집이나 독가촌은 과거 화전민들의 삶과 다를 바 없다.

가장 이색적인 곳은 바로 분교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만큼 독특한 학교 형태가 바로 분교란다. 교육열 하면 손에 꼽힐 만큼 대단한 우리나라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깊은 산간, 어촌, 섬 지역까지 사람 사는 곳이라면 설치된 분교는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겐 희망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여느 공간과는 달리 시멘트와 블록 벽돌로 지어져 제법 관공서 분위기를 내며 개구쟁이 아이들 덕분에 활기차다. 다만 역사적으로 볼 때 '분교'의 시작은 순수한 교육적 의미보다는 일본의 식민 정책의 도구로 쓰였다는 점이다. 해방 이후 본격적인 교육 현장이 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지만 끈끈하고 따뜻한 스승과 제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현재는 점점 폐교하는 곳이 늘고 있어 안타깝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간이역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덜컹덜컹 창 밖의 풍경을 보며 타고 다녔던 비둘기호도, 그 당시 특급으로 불리던 통일호도 사라졌지만 간이역이 주는 추억은 영원히 남을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간이역이 근대화 과정에서 주는 의미는 기존 가치체계의 붕괴였다. 가난하지만 천천히 느리게 살았던 그들에게 기차 속도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마지막에 소개된 문화 주택은 나의 어린 시절 동네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비슷한 형태의 단독주택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점점 세월이 흘러 다양한 형태로 개조되면서 그 때 나눴던 이웃 간의 정도 변한 것 같아 아쉽다. 

어디 하나 화려하고 멋진 곳은 없지만 시선을 멈추고 바라보게 되는 그 곳. 관심 밖의 대상들이 따스한 시선을 통해 새롭게 다가온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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