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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진찰실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박수현 옮김 / 알토북스 / 2024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제목만 봤을 때는 철학책인가 싶었는데, 소설책이네요.
나쓰카와 소스케 장편소설인 《스피노자의 진찰실》은 주인공 데쓰로가 내과 의사로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상을 그려내고 있어요.
처음 만나는 작가라서 어떤 분인가 소개글을 보니, 실제로 나가노현에서 지역 의료에 종사하는 현역 내과 의사이자 밀리언셀러 작가라고 하네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의사의 입장에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지, 에세이가 아닌 소설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이유를 알겠어요.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재미와 진심을 담을 줄 아는 작가였네요. 나쓰카와 소스케라는 이름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합친 펜네임으로, 나쓰는 나쓰메 소세키, 카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스케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소는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 <풀베개>에서 따온 거래요.
주인공 데쓰로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자신만의 철학으로 진심을 전하고 있어요. "표현이 이상하지만, 버티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다고 너무 서두리지도 마세요. 저쪽 세계로 가는 길은 일방통행이거든요. 특별한 날 돌아올 수 있다고 해도 언제든지 왕래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러면 이 단아한 정원도 저 아름다운 히가시야마도 원할 때 바라볼 수 없어요. 그러니 너무 서두르면 아깝잖아요." (103p) 암 환자에게 힘을 내라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얘기 대신에 그저 서두르지 말라고만 당부하고 있어요.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지켜봐 온 데쓰로는 울부짖는 것만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엄격한 자세로 허무함을 떨쳐 버리는 내공을 보여주고 있어요. 또한 의사로서의 책임감과 과거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아키시카에게는, "저는 오히려 죽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환자분들의 마지막을 지킬 때마다 생각해요. 그들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더 알고 싶어요. 죽음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 최후의 시간이 다가온 환자에게 자신 있게 말하면서 안심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182p) 라고 담담하게 말해주네요. 본인의 자리를 잘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용사가 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살아 있는 우리 모두는 진정한 용사인 거예요. 우리의 삶은 고통의 바다라고 하잖아요. 끝까지 헤엄쳐 나아가야죠.
"나도 완전히 다 이해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것을 깊이 생각한 사상가가 있었어."
"그게 스피노자예요?"
"맞아. 그는 희망 없는 숙명론 같은 것을 제시하면서도 인간의 노력을 긍정했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면 노력하는 의미가 없을 텐데, 그는 이렇게 말했거든. '그렇기에' 노력이 필요하다고."
"어려워요."
"어렵지. 하지만 나는 그가 의외로 중요한 말을 한 거 같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도 노력하라고 말이야." (204p)
